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새로고침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정원묵
댓글 0건 조회 676회 작성일 25-12-23 17:07

본문

새로고침

김효인 작가의 책 '새로고침' 을 읽고


한 때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은 전 세계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으며 유행 그 자체였다. 오징어 게임과 관련된 유튜브 컨텐츠, 상하의, 식품 등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모두가 다음 시즌을 기대하곤 하였다.

우리는 왜 그렇게 오징어 게임에 몰두하였던 것일까? 당연히 작품성이 높고, 작품의 전개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없게 하기는 하였지만, 결국은 사람들의 ‘일확천금’ 의 심성이 자극된 것이 아닐까? 게임에서 우승만 한다면, 456 억이라는 큰 돈이 수중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와 같이 일확천금 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달콤할 것이다. 


'인생을 새로고침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누를 것인가?'


 '새로고침' 이라는 소설은 ‘인생을 새로고침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누를 것인가?’ 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며, 버튼을 누를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에 대해 조명한다. 새로 고침 버튼 하나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용감해질까, 아니면 더 비참해질까. 소설은 이 질문에 단정적인 답을 제공하지는 않고, 대신 각자의 이유로 버튼을 누른 사람들의 인생을 조명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태이는 태어날 때부터 사회의 바깥에 놓인 인물이다. 출생신고 조차 되지 않아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며, 불법 행위가 넘쳐나는 부둣가에서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며 살아간다. 그의 삶에는 사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거의 없다. 노력이나 성실함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출발선에 서는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은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태이에게 ‘새로고침 버튼’ 은 유혹이라기보다 마지막 남은 가능성, 일말의 희망에 가까울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새로고침 버튼이 이태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새로고침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여러 사람의 삶이 뒤섞기게 되기 때문이다. 새로고침 버튼을 누른 또 다른 인물인, 식물인간 상태의 유은희와 부패한 형사 표진노와 함께 인생이 뒤섞기게 된다. 이 때 이태이는 새로운 삶을 기대하지만, 눈을 뜬 순간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놓인다. 그는 낯선 남자의 몸에서 깨어나고, 곧바로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다. 새 출발을 꿈꾸며 선택한 버튼이, 오히려 더 위험하고 불안한 현실로 그를 밀어 넣었던 것이다.


 반면 식물인간 상태였던 유은희는 남편인 표진노의 몸에서 정신을 차린다. 움직일 수 없던 삶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는 분명 ‘회복’ 처럼 보이지만, 그 몸이 가진 과거는 결코 깨끗하지 않다. 부패한 형사였던 표진노의 삶, 그가 저질러온 일들, 그리고 그로 인해 형성된 관계와 책임이 모두 유은희에게 그대로 따라온다. 소설은 이러한 설정들을 통해, 인생이 바뀐다는 것이 단순히 상태가 좋아지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몸이 바뀌는 순간, 그 몸이 살아온 시간과 결과까지 함께 떠안게 되는 것이다.


 버튼을 누른 이후의 삶은 이전보다 나아졌다고도, 완전히 실패했다고도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인물들은 바뀐 삶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소설의 결말부에서 인생이 뒤바뀐 모든 인물들은 거창한 목표들에 대해 바라지 않는다. 대신 ‘지금, 하고 싶은 것’ 에 대해 고민하며, 하루하루 시간의 가치에 대해 자각한다. 새로고침 버튼이 그들에게 가져다준 것은, 성공한 인생이나 어떠한 결핍의 해결이 아니라, 사실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였다. 지금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가 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 것이었다.


 소설을 읽고 난 후, 요행이나 일확천금에 기대는 태도가 얼마나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묵묵히 해야할 일을 향해 나아가고,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없더라도 지금의 시간을 성실히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새로 버튼 없이도 삶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책 ‘새로고침’ 을 읽고 난 후 삶을 대하는 나의 시선을 새로고침할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나는 종종 더 빠른 길, 더 쉬운 선택들만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이후로는, 적어도 그런 생각 앞에서 한 번쯤은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될 것 같다. 내가 편하고자 해서 간사한 마음을 먹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말이다. 결국 현실에서 오징어 게임과 같은 요행은 없을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성실히 잘 살아가는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