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남아 있어야 이후를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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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남아 있어야 이후를 말할 수 있는가
―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를 읽고
어느 날 세계 각지의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열린다. 그 안에서 괴수들이 쏟아져 나오고, 도시는 무너지고, 일상은 단번에 붕괴된다. 일부 인간은 각성자가 되어 괴수와 싸울 수 있게 되지만, 그것이 곧 질서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전투의 긴박함보다 그 이후에 남겨진 결정을 오래 바라본다. 누군가는 싸우고, 누군가는 지키고, 그리고 누군가는 계산한다.
한승문은 그 계산의 자리에 선 인물이다.
임기 첫날, 국회의사당에서 괴물이 떨어진 순간부터 그는 이상을 말할 여유를 잃는다.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정치인으로서 무엇을 먼저 지켜야 하는지를 판단해야 했다.
초기 대응은 분명했다. 충청권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전략적 거점을 유지하며 무너진 행정 체계를 복구한다. 자원이 부족하면 우선순위를 세운다. 구조 가능한 인원, 방어 가능한 지역, 유지 가능한 인프라. 그는 감정을 억누르고 숫자를 본다. 체계가 무너지면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여러 번 포기했다.
충청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밀려오는 괴수를 북으로 돌리는 선택. 국가를 위해 헌터들을 후퇴시키는 선택. 그 결정들은 합리적이었다. 그 대가로 수십만 명이 죽고 일부 지역을 포기해야 했지만, 당시로서는 차선이었다. 전체를 지키기 위해 일부를 버리는 판단. 그는 그것이 정치인의 자리라고 믿었다.
게이트 이후 세계의 질서는 그렇게 재편되어 갔다. 괴수의 체내에서 추출되는 마석은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었다. 각성자를 강화하고 무기와 장비의 동력으로 쓰이며, 붕괴된 산업 구조를 대신하는 새로운 자원이 되었다. 마석은 곧 군사력이자 경제력이었다. 그 위에 각성제가 놓였다.
각성제는 정부 붕괴 직후 군을 장악했던 차재균 사령관이 비밀리에 진행한 생체 실험의 결과물이었다. 그는 자식을 괴수에게 잃은 사람이었지만, 복수심보다 앞선 것은 군인의 사고방식이었다. 총으로도 괴수를 죽일 수 있지만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마석을 기반으로 한 각성자 중심의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논리 끝에서 일반인을 강제로 각성시키는 실험이 이루어졌다. 효율은 확보되었고 윤리는 밀려났다. 생체 실험이 폭로되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차재균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판단은 사라지지 않는다. 개량된 각성제는 한국이 쥔 전략 자산이 된다. 다른 국가들도 기술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지만, 정치적 부담과 실패 위험을 감수하지 못했다. 그 사이 한국은 각성제를 외교 카드로 활용하며 균형을 유지한다. 마석과 각성제는 재난 이후 한국을 버티게 한 힘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정적인 각성제를 완성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실험대에 올렸던 사람 역시 한승문이었다. 차재균을 제거한 장본인이었지만, 결단의 끝에 설 때마다 그는 그를 떠올린다. 효율을 위해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 체계를 위해 무엇을 감내할 수 있는가. 그는 그 방식을 거부했지만, 그 자리에 섰던 사람이 감당해야 할 무게를 이해하게 된다.
만주 탈환 작전은 상황을 완전히 뒤틀어놓는다. 전선을 밀어붙이던 중 예측하지 못한 감염형 괴수가 발생하고 후방이 무너진다. 북한 지역에서 대규모 난민이 남하하고, 서울 북부 역시 붕괴된다. 군은 전력을 재정비해야 하고, 충청권의 피난민들은 부산으로 향한다.
이미 부산권과 남부 지역의 수용 능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피난 캠프는 과밀 상태이고 식량과 의약품은 빠르게 고갈된다. 난민 유입은 치안을 흔들고 지역 간 갈등을 키운다. 더 수용하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계산, 제한하면 감염과 폭동, 식량 붕괴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
한승문은 익숙한 판단의 길을 알고 있다.
수용 인원을 제한하고 일부를 통제선 밖에 남겨두는 것.
그것이 체계를 유지하는 선택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 선택을 여러 번 해본 사람이다.
보고서 위에는 숫자가 적혀 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얼굴이 떠오른다. 철수 명령 뒤에 남아 있던 전우, 북으로 밀어 넣었던 괴수, 그 결과 사라진 60만의 삶. 체계를 지켰지만, 무엇이 사라졌는지도 알고 있다.
경제는 다시 일으킬 수 있고, 외교는 다시 협상할 수 있으며, 체계는 복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서울을 전면 개방한다.
각성제를 배포한다.
혼란은 늘어나고 치안은 흔들리며, 부담은 사라지지 않는다. 각성제는 기적이 아니고, 난민 수용은 즉각적인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는 남는다.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 선택이 옳았는지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무엇이 남아 있어야 이후를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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