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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지 않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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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재
댓글 0건 조회 5,903회 작성일 18-09-1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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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지 않을 자유
 
피코 아이어

     같은 풍경 속에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해질 때, 생활의 피로에 지쳐갈 때, 가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이 넘칠 때 나는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한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 일상의 규칙을 깬다는 것은 또 다른 피로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행이 주는 활력이 여행의 고단함을 너끈히 상쇄하고도 남기에 나는 여전히 틈만 나면 여행을 꿈꾼다.  
     <여행하지 않을 자유>는 제목만 보고 섣부르게 내용을 추측해서는 안될 책이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일반적인 의미만으로 이해하면 책의 제목과 내용을 연관시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제 ‘The Art of Stillness’가 어떤 연고로 이런 식의 번역제목을 갖게 되었을까 의문스럽다. 어쩌면 저자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저자는 여행 작가이다. 젊은 나이에 뉴욕 중심가에서 살고 일하며 나름 성공을 누렸고, 전세계의 온갖 사건에 대해 ‘뉴욕타임’ 에 글을 썼다. 발리에서 엘살바도르까지 어디로든 휴가를 다녔고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매일매일 짜릿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늘 어딘가로 향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고 그 일을 직업으로 삼고자 여행작가가 된 사람이기도 하다. 
     세상 누구에 뒤지지 않을 만큼 지구촌 곳곳을 누볐던 그는 ‘앞만 보고 가다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행복한지 생각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사방을 종종거리고 다니며 만족을 찾는다는 것은 나름 멋진 삶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을 갖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는 마침내 대도시 뉴욕처럼 번화한 삶을 두고 멀리 교토의 뒷골목에 있는 작은 단칸방에서 살아보기로 한다. 단순하게 살며 인생의 균형과 내면으로 향하는 기쁨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또 종교는 없지만 명상과 참선, 수도원에서의 피정을 하면서 ‘아무데도 가지 않기’의 미학을 발견했다. 
     ‘아무데도 가지 않기’는 세상을 등지고 집안에 틀어박히는 것 아니라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보기를 의미한다. 복잡하고 정신 없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반드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 일상과는 또 다른 종류의 복잡함과 피로를 가져오는 여행보다는 오히려 아무데도 가지 않으면서 내면 속으로 여행할 것을 저자는 제안한다. (이와 같은 논리전개에 따르면 이 책의 제목은 ‘여행하지 않을 자유’라기 보다는 차라리 ‘아무데도 가지 않기’가 낫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우리의 일상은 갈수록 시간에 쫓기고 잠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가만히 있을 때 끝 모를 불안과 근거 없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바빠야만 안심이 되는 현대인, 저자는 이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에게 꼭 휴식시간을 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여기서 휴식은 아무데도 가지 않고 자신에게 고요를 누릴 기회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내면 여행의 다른 말이라고도 이해된다.   
     매일 몇 분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가만히 앉아있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며칠씩 일상을 떠나 조용히 지내거나 자연으로 나가 산책하기 등을 통해 우리는 내면 여행을 할 수 있다. 휴식을 위해 종교적 의미의 안식일이 아니라 ‘세속적인 안식일’을 지켜보는 방법도 있다. 세속적 안식일이란 현대인이 가장 하기 힘든 일인 ‘잠시 아무 일도 하지 않기’를 말한다. 그런가 하면 실리콘벨리에는 매주 ‘온라인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금요일 밤에 거의 모든 전자기기를 껐다가 월요일에 다시 온라인 상태가 되는 것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휴식을 휴식답게 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갖자면 필요한 일이라고 공감된다.
     저자는 결국 세상 곳곳을 수평적으로 다녀본 후에 그런 여행으로는 인간의 내면과 깊이에 관한 갈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이런 저자를 보며 앞만 보고 쉼 없이 달리는 인생을 살기 보다는 쉬어가며, 자신을 돌아보고, 때로는 멀리 떨어져 인생의 큰 그림을 보는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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