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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삐딴 리 - 전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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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승환
댓글 0건 조회 7,283회 작성일 18-09-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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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꺼삐딴 리 > - 전광용

 

- 이 승 환 -

 

「흥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났는데, 양키라고 다를까…. 혁명이 일겠으면 일구,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구, 아직 이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 나보다 얼마든지 날뛰던 놈들도 있는데, 나쯤이야….」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외과 전문의이다. 일제강점기에 제국 대학을 졸업한 뒤 개인 병원을 개원했는데, 이인국 박사 특유의 결벽증 때문인지 그의 병원에서는 먼지를 찾아볼 수가 없고, ‘인의인술(仁義仁術)’보다는 ‘전의전술(錢義錢術)’의 신념 덕분에 치료비는 다른 병원과 비교해 몇 배나 비싼 특징이 있다. 그렇지만, 일류 대학 병원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환자들도 고치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서 그의 병원은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그였기에, 시대가 변해도 치료하는 대상은 늘 돈이 많거나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황국 신민’으로서 성심성의껏 일본인을 치료하는 반면 독립운동가는 적당한 사유를 들이대며 내쫓는다. 일제 패망 후 광복을 맞았을 때는 민족 반역자로 몰렸음에도 ‘친소파’로 전향하여 소련군 장교를 치료하며 영화를 누린다. 1.4 후퇴 때는 월남하여 미군이 주둔하는 남한의 미 대사관 직원에게 국무성 초청 자격을 얻어 도미(渡美) 길에 오른다.

 

 

 

민족의 시련을 외면한 이인국?

 

 

   소설에서 이인국 박사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묘사된다. 작가는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을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듯하지만, ‘인국’과 같은 이름으로 서술하지 않고 ‘그’, ‘이인국 박사’ 등으로 철저하게 거리를 두며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그러나, 소설 속의 이인국 박사의 개인적인 능력만을 따지고 보면, 동경 대학 병원의 의사도 거절한 수술을 해낸 실력 있는 의사인 동시에 일본어, 러시아어, 영어를 구사하는데,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이다.

   어쩌면 나라의 주권을 잃은 그 시절에는 이인국 박사처럼 이기적이고 카멜레온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어야 그 시대를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는 환자를 계속해서 받다 보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을뿐더러 독립투사를 치료해주면 자신 역시 ‘불령선인’이라는 낙인이 찍혀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조선인 이인국이 아닌 아버지 이인국은 민족의 윤리보다는 인간의 윤리를 추구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본인에게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민족의 지조를 지킬 것인가?’, ‘민족을 외면하며 부귀하게 살 것인가?’와 같은 양자택일을 강요받으면 후자를 택하는 사람이 상당수일 것이다. 돈이 없어서 수술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다고 의사를 비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며, 대형 병원의 병원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사람을 보면 경멸하는 시각보다는 경외하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현실이다.

 

 

 

기회주의자인가 현실주의자인가

 

 

   본래 큰 파도와 같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람’은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물이다. ‘사람 혼자’는 자신의 환경을 결정하지도 개척하지도 못한다. 아주 가끔 현실에 맞서거나 시류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곤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영웅’, ‘위인’ 등으로 불린다. 하지만 ‘영웅’, ‘위인’이라는 칭호는 정말 상대적인 개념이다. 시대 상황에 따라 이들은 긍정적인 측면이 강조되기도 하고 어느 날 갑자기 부정적인 측면이 드러나면서 모리배가 되기도 한다.

   사실 그들은 역사의 물줄기를 정면으로 맞선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물줄기를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역사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현실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선택에 신중을 가했고, 눈앞에 찾아온 기회를 움켜쥐면서 상황을 유리한 쪽으로 가져갔을 것이다.

   이승만은 조선 왕족의 후손으로 태어나 미국에서 유학을 마쳤다. 한때 독립운동을 했고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지냈으나, 정적(政敵)들과 갖은 갈등을 일으키다가 잠시 야인(野人)으로 지낸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사사오입(四捨五入)’과 같은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하다가 4·19 혁명으로 자리에서 내려온다. 제주 4.3 사건에서는 무고한 사람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학살하고, 한국 전쟁에서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서울은 안전합니다.”라는 거짓말을 하며 서울을 버리고 피난을 간 그가 이제는 ‘국부’로 재평가받고 있다.

   박정희 또한 일왕(日王)에게 견마지로(犬馬之勞)의 혈서를 쓰고 충성을 맹세하며 만주국 장교로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는 순간 광복군에 입대하였는데, 뒤이어 남로당에 가입한다. 남로당 군 총책이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자 동료를 밀고하여 형을 면제받는다. 이후 5·16쿠데타로 권력을 잡아 대통령이 되었고, 김재규의 총알이 그의 가슴을 뚫으며 18년의 유신정권의 막이 내릴 때까지 동안 독재정치를 한다. 그런 박정희도 ‘구국의 영웅’, ‘반인반신’ 등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인국 박사가 가상의 인물이긴 하지만 그가 실존하는 인물이라면 이승만, 박정희만큼은 아니지만,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을 것 같지는 않다. 이인국 박사가 아직 살아 있다면 의술의 대가로서 찬양받았을 것이며, 혹여나 누군가 역사의 격동기에 그가 했던 행적을 걸고넘어진다면, 일본인, 러시아인, 미국인을 위해 한국인을 말살하거나 직접 고문한 적은 없다고, 당시의 그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고, 현실에 맞추어 나름의 기회를 찾은 것이라고 두둔하며 그의 죄상을 희석하려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회주의자는 꺼림직하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잘 보고 그에 맞추어 행동하는 사람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 이런 사람은 재빠르게 시의적절한 행동을 해서 비난의 화살을 비껴갈 뿐만 아니라 어느 쪽으로 가야 유익한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이인국 박사도 그런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런데도 이인국 박사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실제로 이인국 박사를 가리키는 ‘꺼삐딴 리’는 기회주의자를 조롱할 때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의사로서 환자를 가려 받으며 환자를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니라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며 직업윤리를 지키지 않았다. 일본의 눈치를 보며 애국 투사를 치료하길 거부했고, 시대에 따라 가치관과 진영을 바꾸는 그의 약삭빠른 태도를 보면 속물근성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도 있는 현실에 놓인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살리기 위한 결정이었다고도 해도, 자신의 이익 앞에서 타인의 사정을 외면하는 아버지보다는 선행을 베푸는 아버지가 더 올바르다고 볼 수 있다. 이념이 불투명하고 욕망과 이해타산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성숙해 보이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인국 박사는 자신의 처세와 노력 덕분에 성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시대의 흐름을 잘 읽었다고 해도 결국에 그 시대의 흐름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든 더는 오를 곳이 없는 최고의 자리를 정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종종 ‘공허함’을 언급하곤 한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랐더니 부러워하는 사람만 있을 뿐 자기 주변을 함께하는 사람이 없어 성공 뒤에 오는 고독감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는 고백을 듣곤 한다.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경치에 눈이 휘둥그레지지만, 높이 올라간 정상일수록 바람이 거세다. 그래서 성공 이후 공허함을 견디지 못해 더 큰 성공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거나 성취감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쾌락을 좇다가 한순간에 무너진다.

   미국으로 넘어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인국 박사가 느끼는 고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라도 자신이 성공할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 준 사회에 환원하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 것은 어떨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다 보면 오히려 자신의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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