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섬 - 주제 사라마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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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불확실한 항해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
니카라과에 살던 고등학교 시절, 온가족이 니카라과 호수를 배를 타서 건너본 적이 있다. 바다 같이 넓다는 갈릴리 호수보다도 50배가 넘는 광활한 면적을 가진 니카라과 호수는 호수라는 명칭이 어울리지 않게 넓은 수평선이 보이고, 호수에서 세찬 파도가 치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민물상어가 사는 신기한 호수이다. 가족과 함께 낡은 모터보트를 타고 니카라과 호수를 건너던 도중, 예상치 못한 폭풍우를 만났다. 거센 비바람과 모진 파도 속에서 배는 길을 잃고 헤메었고, 우리는 한동안 흔들리는 배에서 균형조차 잡기 힘들었다. 어머니는 두눈을 질끈 감고 기도하셨고,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한쪽 팔로 안아주시며 걱정스레 날씨를 살피셨다. 앞이 보이지 않고 방향도 잡히지 않았지만 우리는 움직여야 했다. 우리는 가야만 하는 목적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사투를 벌인지 십여분이 지나자 바다는 다시 평온함을 되찾았고, 우리는 무사히 항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들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고는 한다. 망망대해 한가운데 홀로 외로이 떠다니는 배 한척 위에서, 때에 따라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기어 때로는 순항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폭풍우를 만나 흔들리기도 하는 항해자의 모습은 늘 예상치 못하는 사건들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과 항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배가 항구를 떠나 바다로 항해하는 순간부터, 배는 뚜렷하게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해 항해를 나아간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인생에는 정해진 항로도 없고, 참고할 지도도 없으며, 항해를 돌이킬 수도 없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아가는 것이기에, 인생은 그 누구도 가본적이 없는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섬을 향해 가는 것이다.
소설 '미지의 섬'에 나오는 주인공 '사내'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섬'을 찾아 항해를 떠난다. 사내가 왕에게 배를 받아내면서 말했던 것처럼 미지의 섬은 그 존재조차 모르는 것이기에 미지의 섬이 된다. 즉, 사내는 자신이 가야할 길이 어디있는지도, 어떤 곳인지도, 심지어는 그 존재성조차 모른채 항해를 떠난다. 사내가 왕으로부터 배를 받아내는 그날, '청소부 여인'은 왕 앞에서 당당한 사내의 모습에 깨닳음을 얻고 그의 배에 합류한다. 그리고 사내의 항해의 모든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 그가 배를 정비하고 선원을 모을 때, 미지의 섬에 심을 각종 식물들을 준비할 때, 선원들이 항해를 포기하고 사내를 떠나가버린 후에도 청소부 여인은 꿋꿋히 사내 곁에 있었다. 사내는 결국 미지의 섬을 청소부 여인 속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새로운 미지의 섬을 찾는 항해를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미지의 섬은 부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사람이었다. 어두운 바다와 같이 앞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항해길 가운데 사내는 청소부 여인이라는 사람을 얻었다. 자신이 꾸는 꿈을 같이 꿀 수 있고, 삶의 역경 가운데 힘이 되어주며, 서로 의지하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얻었기에, 사내의 첫 항해는 성공적이었다 말할 수 있다. 작가가 두 주인공들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은 것은, 이들의 이야기가 이들만의 이야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 생각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우리 인생의 항해가 도달하는 목적지가 부와 명에와 권력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마치 자신의 쾌락과 영달뿐이라 여기며 이 둘을 쫓아 앞만 보며 달려가는 경주마 같은 인생을 살고 있지 않는가? 자신의 돈과 명예와 행복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이기적인 경쟁을 반복하는 현대의 사람들에게 사라마구는 인생의 항해의 끝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나는 과연 25년의 항해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얻었을까? 그리고 나의 항해의 종점에 도달하는 그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줄까?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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