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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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이유 – 노엄 촘스키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부동산에 대한 고강도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이를 비웃듯이 부동산 가격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특히, 강남 3구를 비롯한 수도권 전체 집값이 들썩이고 있으니 사람들은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부동산”이라고 생각하면서 집값을 올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이런 집값 상승을 버블이라고 우려하면서 안간힘을 쓰며 막으려고 하지만, 일관성 없는 부동산 정책에다가 서울시장의 신중하지 못한 발언으로 도리어 투기 욕구만 자극하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불을 지피고 있다. 그리고 이 부동산은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에만 집중되는 양극화 현상을 보이면서, 빈익빈 부익부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리고 고착화된 계급사회에서, 계층간에 이동을 확실하고 빠르게 보장하는 수단은 부동산 밖에 없다는 심리,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재화는 점점 재평가 되는 사회에서 부동산 투기는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친구가 부자가 되는 모습을 볼 때 행복과 판단력이 가장 혼란스러워 진다.” - 찰스 킨들버거
그리고 주변에서 부동산 투기로 재산을 불렸다는 소리를 들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부동산에 투자를 하고 이익을 남기기 위하여 가격 담합이라는 질 나쁜 수단까지 동원하고 있으니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투자를 위하여 빚까지 지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있고 부풀려진 주택 가격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은 미래를 위한 밑천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거품이 꺼지면 빚을 내서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은 빚을 갚지 못하고, 금융권은 빚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경기가 침체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 아닌가? 바로, 2009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재림하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이 부동산에 목을 매는 이유는 재산 증식의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계층간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계층이동이 어려워진 사회적 구조에 있다. 저자 노엄 촘스키는 이런 불평등이 심화되는 원인을 10가지로 정의하였는데, 그중 가장 핵심적인 3가지는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를 축소하라
하층민을 통제하라
동의를 조작하라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금융자본으로 이루어진 권력이 자본주의 체제 대부분을 잠식하고 주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들이 뭉쳐서 부자들에게 대항하였을 때, 메디슨은 민주주의를 축소하여 부유층에게 권력을 주었고 국민들을 분열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복지국가를 주장하면서 불평등 축소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민주주의 축소는 점점 성공을 거두고 있어서 경제정책이 소수의 대기업과 자산가 위주로 펼쳐질 수 있게 만들었고, 더하여 대중들에게 이상한 가치를 심어주었다. 바로 ‘타인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연대를 파괴하는 관념을 심어주는 것이다. 사회 보장 제도를 확대하려고 하면, “당신의 세금이 엉뚱한데 쓰이고 있다.” “시장 원리에 역행하는 행위이다.”라고 선동을 하면서, 대중들에게 경제적인 판단을 유도하기 보다는 개인의 정치적-사회적 가치에만 호소하여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착 이 경제 권력들은 자본주의에 대하여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시장의 원리’로 사회보장제도를 반대하면서 정착 본인들에게는 ‘시장의 원리’를 들이대려고 하지 않는다. 정부는 기업이 도산 직전에 몰리면 ‘실업자 및 경제 침체 방치’라는 허울 좋은 명분아래 세금을 동원해서라도 기업이 도산 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다. 개인과 사회제도에는 ‘시장의 원리’를 엄격하게 들이대면서, 정작 ‘시장’의 선봉에 있는 기업은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웃기는 상황인 것이다. 무서운 것은 국민의 손으로 뽑은 정부가 국민의 혈세를 빨아먹는 기업의 편이라는 것이고, 더 무서운 것은 이렇게 당하고도 기업이 살아야 경제가 산다는 투철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런 횡포와 부조리에 맞서는 세력은 노동조합이나 사회적 운동인데, 문제는 이런 세력들도 결국 자기 이권 확대에만 골몰하면서 대중들과 괴리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더하여 언론들은 대중들에게 노조나 사회적 운동의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치 저들이 성과를 거두면 나라 경제가 절단날 것 같다는 불안감을 심어준다. 부자 권력자들의 하층민 통제와 동의가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이고, 연대하지 못한 대중들은 부자들이 던져주는 빵과 서커스에만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하여 연대를 회복하고 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구조를 개편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부를 잃을까봐 갖은 견제와 로비를 펼치는 부자 권력들이 첫 번째 장애물이고, 두 번째는 장애물은 경제적인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저 사회적 문화적 불평등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입만 살아있는 진보들이다. 먹고 살기 팍팍한 세상에서 인종차별하지 말아라, 소수자를 우대해라, 종교나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적인 표현을 없애야 한다는 나름 고차원적인 사고는 통하지 않는다. 개인이 무한대로 경쟁하고 살아남는 시스템에서 성, 종교 같은 정체성은 의미가 없다. 오직 경제적으로 부유한자, 부유하지 않은 자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입만 살아있는 진보들은 대중이 원하는 것과 괴리감을 가진채로 진보진영에 녹아들어가 있어서 국가 정책을 수립하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유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비판하면 권위적이니, 배타적이니, 시대착오적이니 하는 태도로 일관하면서 대중들의 혐오만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들은 진보진영이 위선적이라 인식하면서 투표로 심판하려고 한다. 적나라한 예시가 힐러리 vs 트럼프로 압축된 미국 대선이다. 연대를 해도 부자 권력에 맞서기 힘든 시점에서 분열을 초래하는 진보의 태도는 미래를 생각하면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진보진영이 그렇게 생각하는 대중들을 위해서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며, 이를 토대로 연대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여야 한다. 여기서 경제의 본래 뜻인 경세제민(經世濟民)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경세제민(經世濟民) -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
“곳간에서 인심, 명예, 예절이 나온다.” - 관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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