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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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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5,631회 작성일 18-03-05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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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


- 사이먼 사이넥

 

   익숙했던 예술가와 시인, 그리고 연예인들의 이름이 심심찮게 뉴스와 텔레비전에서 나온다. 물론 좋은 소식은 아니다. 성추행과 성폭력 범죄의 특성상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보다 상처를 입은 피해자에게 더 큰 낙인이 찍힌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숨겼던 많은 사건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대못같이 박혔던 많은 성적인 사건이 최근 미투운동의 시작으로 많은 사람이 용기를 얻어 자신들이 당했던 행위들을 폭로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용기에 힘입어 온갖 추악한 형태의 행동들이 하나하나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미투운동의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매우 폐쇄적이고 남성 중심의 사회인 검찰 내에서 서지현 검사의 용감하고 대담한 폭로로 인해 시작되었고, 현재 기름에 불이 붙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입에 담기도 싫은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그 사건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밀양연극촌의 감독이었던 이윤택의 더러운 욕망과 온갖 추악한 행동들이었다. 그는 중세시대의 왕처럼 자신만의 견고한 왕국을 건설하고 자기 자신이 곧 법인 것처럼 행동했다. 자신이 만든 왕국에서 그는 모든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에 대한 거역은 곧 극단에 대한 반역이라고 여겨졌으리라. 추악하다 못해 추잡한 그의 왕국 속에서 수많은 단원이 성추행과 성폭행을 당하고 심지어는 임신과 낙태까지 이루어졌다. 이렇게 끔찍한 일들을 저질러놓고 기자회견 때에 나와서 뻔뻔스럽게 사과하는 그의 얼굴을 보니 속에서 구역질이 났다. '연극은 공간과 시간과 인간의 결합이다'라는 그의 말에 과연 그동안의 연극에 '인간'이 존재했는지 의문이다. 그동안 연극단원이 열정을 쏟아부었던 연극들은 그의 추악한 행위로 인해 모두 보잘것없는 것들이 되어버린 것 같아 마음이 쓰라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용기 있게 자신이 당한 일들을 고백한다고 할지라도 아마 수면 아래에 존재하는 온갖 형태의 성추행과 성폭력들은 아직도 만연해 있을 것이다. 모든 사건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미투운동 덕분에 누군가를 이끌어가야 하는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많은 본보기가 되었으리라. 그러면서 자신만의 왕국들에서 자신들이 곧 법인 것처럼 행동했던 많은 사람에게 경각심을 줬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람의 지위가 곧 권력이고 권위이기에 눈치 보지 않고 살아왔던 많은 왕국의 지도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을 것이다.

 

  사이먼 사이넥의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는 리더의 자질에 대한 기본적이지만 필수적인 요소들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이끌어가는 어떠한 집단 속에서 어떻게 하면 구성원 개개인의 능력들을 충분히 이끌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예시를 들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그는 리더와 지배자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말한다. 가령 지금 전쟁터의 한중간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수많은 총알과 폭탄이 오가는 중간에서 리더라면 어떤 자세를 취해야하는가. 내 병사의 뒤통수가 보이는 위치에서 총알과 폭탄이 닿지 않는 곳에서 명령하는 상관과 그러한 와중에도 우리 병사 중 누가 다쳤는지, 고립된 병사가 있다면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나가는 상관이 있다면 어떤 상관 밑에 있는 병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면서 싸울까.

 

   사실 초등학생도 대답할 수 있는 매우 쉬운 질문이지만 현실에서는 정답에 가까운 리더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돈과 관련된 직장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군대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한 사람에게 훈장을 수여하지만, 모순적이게도 회사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킨 사람에게 승진과 보너스를 준다. 모든 결정권은 나보다 직책이 높은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내 밑에 있는 사람의 평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에 아랫사람들에게 성과를 강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한다. 사람이 아니라 숫자와 수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을 따라가 보면 결국 대부분 원인은 회사의 최고결정권자에게 있다. 회사의 이익이 나지 않으면 해고를 하고 명예퇴직을 강요한다. 리더는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일진대 많은 회사는 단지 일정 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아랫사람부터 희생시킨다. 사내유보금은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말이다. 리더가 조직 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안락함과 이익을 희생할 때 조직 내 사람들은 안정감을 느끼고 조직에 소속되었다고 느낀다. 그런 안정감 속에 존재할 때 자신이 가진 대부분의 에너지를 리더의 비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조직 안의 관계가 틀어지고 리더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우리는 혹시나 해고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그리고 서로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하므로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한다. 50대가 되기 이전에 명예퇴직이라는 명목으로 회사에서 쫓아내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회사와 조직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3월이 시작되고 새 학기가 오면서 어느덧 나도 선배보다 후배의 수가 많아졌다. 대학원에 들어오고 나서 줄곧 누군가가 부탁하거나 시키는 일을 했던 것이 엊그제인데 이제는 반대의 위치에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조금 복잡해졌다. 이와 더불어 미투운동의 확산 덕분에 리더의 자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가 생겼다. 내가 지금까지 선배라는 명목으로 후배에게 내가 해야할 일이나 부당한 일을 시킨 적이 있는가, 혹은 지위를 이용해서 내 편리함을 추구한 적이 있는가.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가 보는 어른 중 상당수는 이미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생활에 젖어있다. 우리끼리 하는 농담으로 회사에서 임원이 되려면 소위 말하는 ‘꼰대’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한다. 나 자신의 영광과 안전을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그러한 상사를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내 신념과 올바른 사회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옳은 사람을 따라야 하는지는 나의 선택에 그리고 우리 세대의 선택에 달렸다. 물리학에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있는 것처럼 사회에서도 변화가 있으면 그에 대한 반발이 존재한다. 우리 세대가 이러한 반발을 이겨내어 우리의 아랫세대 사람들을 위해 사회를 바꿀 것인지, 혹은 추악하고 추잡한 일들이 수면 아래서 일어나는 사회를 방치할 것인지는 결국 우리의 손에 달린 것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다시 묻는다. 나는 이익에 속지 않고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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