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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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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윤
댓글 0건 조회 7,285회 작성일 18-04-1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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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한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인 서른세 살, 하루키는 달리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작가인 그는 굉장한 달리기 매니아다. 매일 10 km를 뛰며, 매월 300 km를 뛰고, 매년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다. 한번은 100 km 코스의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는 왜 이렇게 달릴까? 운동을 좋아한다손 치더라도 수많은 운동 중에 왜 달리기를 선택했을까? 2018년 들어 달리기에 재미를 붙인 나는 좋아하는 작가이자 같은 취미를 가진 선배의 이야기를 쉽게 읽어 내릴 수 있었다. 이 글 또한 나의 경험에 기반하여 책의 제목처럼 달리기를 말할 때 하루키가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수필형식으로 적어보려고 한다.


소설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입니다.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은 주저 없이 집중력을 꼽습니다.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력입니다.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의식을 집중해서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해도, 일주일 동안 계속하니 피로에 지쳐버렸다고 해서는 긴 작품을 쓸 수 없습니다.


 작가가 책의 서문에서 말하듯이 이 책은 달리기라는 행위를 축으로 한 일종의 회고록이다. 그는 본업인 글쓰기를 잘하고 싶어서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고수의 반열에 오르려면 멀었지만 나는 8년 여간 꾸준히 여러 운동을 해오고 있다. 그러면서 나의 기준으로 운동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한 번 하는 것이 어려운 운동, 한 번 하는 것은 어려우나 지속적으로 해내기 어려운 운동이 그것들이다. 예를 들면, 전자는 100 kg의 무게를 드는 운동이 될 수 있고, 후자는 줄넘기, 팔굽혀펴기 와 같은 운동이 될 수 있다. 나의 분류로 보았을 때 달리기는 후자에 속한다. 누구나 달리기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목표 거리가 5 km, 10 km를 넘어 42.195 km의 풀코스가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한 발자국 내딛는 쉬운 행위가 힘들어지기 시작하며 결국에는 머리가 몸을 혹은 몸이 스스로 정지시킨다. ‘더 이상 죽어도 못 뛰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그러나 이 생각은 지친 몸을 달래주려는 자기 속임일 뿐, 그 사람은 한 발자국 정도는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스스로도 자각한다. 하루키는 장거리 달리기를 하며 스스로와의 약속을 이겨내는 강한 정신력을 길러냈다.


 글을 읽으며 잠시 얼마 되지 않은 나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직은 사회에도 진출하지 않은 서른 밖에 되지 않은 나이라 나의 인생은 아직 오르막길의 중간에 놓여있다. 그리고 여태까지 해왔던 이력들을 들쳐본다. 나름대로 꾸준하면서도 치열한 도전의 역사의 반복이다. 2년 여의 야간 학교 봉사활동, 총학생회/기숙사 자치회 활동, 국토대장정, 헬스로 잡지 출연, 동아리 창설, 몇몇 대외활동/공모전 그리고 현재의 연구. 치열하게 살아왔고 감사하게도 몇몇은 어디에 증빙자료도 제출할 수 있도록 증서를 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른 것도 있다. 그리고 점차 단조로워지며 스스로에게 강한 압박을 줄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고, 그것이 마라톤 풀코스 도전이다. 사실 연습할 때 하루키의 글을 읽었다면 흥미도 없었을 것이고 깊이 있는 이해도 불가했을 것이다. 마라톤은, 나의 분류상으로,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는 없는(?) 아이러니한 운동인데 이는 강한 정신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장거리 주자로서의 몸이 만들어지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렇다. 긴 시간동안 달리는 행동을 이어갈 때 사실 딱히 할 만한 생각이 없다. 그래서 자기를 돌아볼 수 있다. 하루키도 느꼈고 다른 장거리 주자들도 느꼈듯 마라톤은 놀랄 만큼 적절한 사색의 기회를 주었다.


달리는 것에는 몇 가지 큰 이점이 있었다. 우선 첫째로 동료나 상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별한 도구나 장비도 필요 없다. 특별한 장소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달리기에 적합한 운동화가 있고, 그럭저럭 도로가 있으면 마음 내킬 때 달리고 싶은 만큼 달릴 수 있다.


 달리기는 몇 가지 큰 이점이 있다. 전문적인 러너가 아니기에 비싼 신발이 필요 없다. 운동화와 운동복만 있으면 어디든 달릴 수 있다. 또한 다년간의 경험상 건강을 위해서 달리기만한 운동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 달리기는 흥미를 유발하는 매력이 없었기에 같이 달릴 수 있는 동료가 꼭 필요했다. 그러던 중 2017년 9월 쯤, 문정민 선배의 달콤한(?) 속삭임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는 운동을 꾸준히 하기는 했지만 장거리 달리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달려본 경험이 있다면, 훈련소에서 체력 검정 시에 달려봤던 3 km 정도가 전부다. 그 당시 내가 생각하는 장거리는 약 5 km 수준이다. 두려운 마음과 함께 나의 첫 달리기는 시작되었고, 곧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첫 달리기는 정민 선배가 속한 17년 10월 쯤 있을 하프 마라톤 준비 팀의 마지막 야외 훈련 날이었고 목표거리는 16 km 였다. 힘들었지만 끝까지 따라서 뛰었다. 따라가면서 지금 따라가지 못하면 갑천에 버려질 것이라는 생각에 이 악물고 따라갔고, 이후 3일 동안 발바닥이 아파 잘 걷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달리기를 그만두었다. 이 운동은 ‘역시 재미없고 힘들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사람이, 아니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가 하면, 17년 12월 말에 나는 그렇게 힘들었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준비하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스포츠 컴플렉스의 김석희 교수님의 지도 아래 신민철 교수님, 정민 선배, 의중, 규섭 등 몇몇 카이스트 학생들과 함께 달리기 연습을 했다. 중간에 정민 선배는 졸업을 하고, 규섭이는 부상을 당했지만 남은 사람들끼리 마지막까지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18년 3월 18일, 제 89회 서울국제마라톤(동아마라톤)의 풀코스를 뛰었다. 수 시간 뒤 다 같이 완주를 하는 기쁨과 함께 3개월로는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일주일간의 부상을 얻었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는 달리기지만 누구나 할 수 있지는 않은 거리를 완주했다는 성취감은 상상보다 조금 더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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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좋아한다. 어느 유명한 이가 말한 것처럼 좋은 글이나 스피치는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으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하루키의 글은 이 기조를 지킨다. 그리고 세밀한 숫자를 다루는 엔지니어처럼 꼼꼼한 묘사가 글을 완성시킨다. 지난달에 하루키의 단편집인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해 글을 썼다. 글을 읽으며, 쓰며 나와 비슷한 철학관을 가진 하루키의 모습을 두 번 느끼고 하루키의 글 뿐 아니라 하루키 자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것에 또 한 번 전율하였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는 말은 참 멋있었다. 단순 달리기뿐만 아니라 그의 글쓰기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집중력과 지속력이 고스란히 녹아있음이 느껴진다.


 작가는 아니지만 건설적 미래를 위해서 나 또한 재능과 집중력, 지속력이 필수적일 거라 생각한다. 하루키처럼 나의 달리기는 이제 시작이 될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는 앞으로 남은 나의 나날들이 결정해 줄 것이다. 너무 산발적으로 여러 가지 취미를 갖지 않고 점차 개수를 줄여 한, 두 가지 정도를 전문적인 평생 취미로 삼으며 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가 적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말을 할 때 내가 하루키에게 느낀 (과장하자면) 존경의 마음을 내가 느끼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나의 인생을 근거로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남으로부터의 인정욕구 충족의 차원을 넘어서 인생의 목표를 이뤘다는 자아실현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고 육체적, 정신적 건강한 삶을 위한 것이다.


어제의 자신이 지닌 약점을 조금이라도 극복해 가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위 문구는 삶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태도를 잘 반영한다. 인간이기에 평생 노력해도 부족한 부분 투성이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나아야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그러나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보다 성장하기 위한 과정에 노력을 실제로 집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적어도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의 수는 많지 않다고 느낀다. 성장하는 방향으로의 나의 태도를 만드는데 장거리 달리기는 꽤나 도움이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나도 더 달려볼 동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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