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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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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6,073회 작성일 18-04-0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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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아파트

기욤 뮈소


유명한 극작가인 가스파르는 파리에서 태어났다. 예일대를 졸업한 변호사인 엄마와 파리의 토목회사의 한 노동자였던 아버지의 고작 삼 개월간의 사랑 속에서 태어난 그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어야만 했다. 엄마는 돈을 주고 친권을 포기하라고 종용했지만 아버지는 절대 친권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러한 아빠를 아이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워낙 바빴던 그의 엄마는 아이의 대부분의 시간을 베이비시터에게 맡겼고, 베이비시터는 엄마 몰래 아버지를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어느 날 가스파르는 실수로 엄마에게 엄마 몰래 아버지를 만났다는 사실을 말하게 되고 그러자 엄마는 아버지를 고소하고 법원은 아버지에게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린다. 아버지는 통사정이라도 해 볼 생각으로 판사를 찾아갔지만, 판사는 오히려 협박을 받았다며 경찰에 신고해 아버지는 유치장에 구금되고, 그 날 밤 목을 매어 자살한다. 

매들린 그린은 맨체스터 범죄수사대에서 근무했던 촉망받는 여형사였다.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그즈음 유부남인 조나단 랑프뢰로와 사랑에 빠지고 동거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그녀가 그토록 가지고 싶어했던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조나단은 특별한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그녀를 버리고 전처에게 돌아간다. 모든것에 지친 그녀는 영국으로 날아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려 하지만, 친구를 만나기로 한 날 우연하게 조나단과 함께있는 조나단의 아이를 보고 충격에 빠져 자살을 기도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된다.

모든 신경을 작품에 집중하기 위해 매년 자신이 지독히도 싫어하는 파리를 방문에 작품을 구상하는 가스파르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파리의 한 아파트를 임대하지만, 혼자만 오롯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공간에서 메들린 그린을 만나게 된다. 임대 회사의 실수로 같은 기간동안 같은 장소에서 머물게 된 그들은 처음에는 서로를 혐오감으로 대한다. 하지만, 둘은 그들의 주거 공간의 주인이었던 지금은 심장발작으로 죽은 천재 화가 숀 로렌츠의 유품들에 매료되고, 그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가 남긴 밝히지 않은 유작과 숀이 사랑했던 아들인 줄리안의 납치를 함께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래피티를 그리는 악동으로 시작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된 숀 로렌츠는 무명 시절 모델이었던 아네 페넬로페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페넬로페를 향한 사랑의 뜨거움을 그대로 간직한 그의 작품들은 점차 세간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결국 유명 화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러한 숀 로렌츠에게 또다른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준 존재는 페넬로페와의 아들 줄리안이었고, 그는 그런 줄리안을 끔직히도 사랑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고, 어느 날 아내와 줄리안은 누군가에게 납치된다. 페넬로페는 얼굴과 몸이 심하게 망가진 채로 풀려나지만, 아들 줄리안은 결국 실종된 채 발견되지 않는다. 수사는 진행되었지만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숀의 무명시절 옛 동료였던 여자가 자살하면서 별다른 성과 없이 종결되어 버린다.

숀의 집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쫓아 사건을 파헤치던 가스파르와 매들린 그린은, 점차 진실에 접근해 간다. 숀이 남긴 '줄리안은 살아있다' 라는 숨겨진 메세지를 발견한 그들은 점점 더 사건에 몰입해 가고, 여러 어려움과 반전 장치들을 뛰어넘어 결국 버려진 선박에 수 년간 감금되어 있던 줄리안을 찾아내게 된다. 그들은 또한 줄리안을 찾아헤매는 시간동안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갈망과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으로부터 비롯된 가스파르의 공허함과 사람으로부터의 씻지 못할 상처 속에서 간절히 아이를 가지고 싶어하는 매들린의 아이에 대한 간절함이 줄리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하나의 운명으로 묶여가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이 싹트게 된다.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은 고아가 될 운명에 처한 줄리안을 자신들의 아이로 받아들이면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파리의 아파트'는 '구해줘',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등에서 남녀간의 사랑 묘사를 통해 전세계 독자와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기욤 뮈소의 본격적인 스릴러 소설이다. 이 소설은 스릴러 소설의 기본적인 요소라고 생각하는 복선의 다양함과 반전, 그리고 인물들의 배경 묘사는 탄탄하게 갖추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스릴러적인 측면으로만 봤을 때에는 여느 다른 스릴러 소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만한 점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숨 쉬기 힘들 정도의 긴장감은, 아쉽지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 전체에 잔잔하게 깔려있는 부성애와 모성애, 그리고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감정 묘사의 측면에서는 역시 기욤 뮈소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소름이 돋았던 것은 사건 현장에서의 긴장감이나 반전이 풀어질 때의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줄리안을 발견한 직후 가스파르가 매들린에게 두 가지 선택지-줄리안을 보호소에 맡기고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 혹은 셋이 새로운 가족으로 출발하는 것-를 주고, 매들린은 가스파르와 줄리안과 함께 하는 것을 선택하는 장면이었다.

베일에 쌓여있던 범인이 밝혀지고 아이를 구출해 내면서 사건이 해결되는 장면보다 마지막 장면이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그 장면이 사건이 풀어져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그려졌던 가스파르와 메들렌의 상처들과 갈등들이 상징적으로 치유되는 장면 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설에는 함께 사건을 해결해 나가면서 점차 가까워지며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서로에 상처에 대해 깊히 공감하고 이해해 나가는 모습들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사람과 사랑으로부터 오는 진정한 회복이 무엇인지를 작가는 비추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시대는 이러한 회복이 정말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인 듯 싶다. 점점 더 개인주의가 팽배해져 가고, 상대방의 상처나 환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이익이나 기분만을 위해 순간순간의 선택들을 하는 것이 당연시 되어 버린 것만 같은 이 시대, 권위와 직위로 아랫사람들을 이해해야 할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자기의 소유물 취급하며 하는 묵혀져있던 위계적인 강압행위들이 표면으로 드러나버린 시대에, 상대방의 기분을 이해하려는 노력들과 자신의 왜곡된 모습들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이 조금 더 밝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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