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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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 톨스토이의 중단편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제 2장은 다음과 같은 짧고도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반 일리치의 과거사는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하면서도 극도로 끔찍한 것이기도 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바라보았을 때 이반 일리치의 삶은 열망의 대상이 되는 삶이다. 그는 공직에 있으면서 모범적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하였고, 너무 고지식하거나 분별력이 없지도 않았으며, 상류층의 사회에서 그에 걸맞은 여인을 만나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엘리트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유머감각을 가지고 대화하기를 좋아했으며,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여 뛰어난 일처리 능력을 보여주지도 않았는가? 물론, 삶 중간중간에 승진에 실패해서 고통을 겪는 일도 있었으나, 병에 걸리기 전 그의 삶을 차지한 것은 행복과 만족이었다. 대부분의 그의 삶의 모습들은 오늘날 현대인이 말하는 ‘성공’의 정의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 톨스토이는 이러한 이반 일리치의 삶을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나아가, 평범함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끔찍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반의 삶을 폄하하기에 이르렀으며, 평범함과 끔찍함의 강한 대비를 통해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지고 있다. 어째서 이반의 삶은 지극히 평범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며 어떠한 측면에서 끔찍한 삶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인가? 소설 각 장을 지날수록 톨스토이는 이 질문에 관한 단서를 하나 둘씩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면, 톨스토이는 왜 이반이라는 모범적인 사람에게 죽음을 ‘선고’한 것일까? 작가가 추구하는 삶은 어떤 모습이며, 이를 통해 작가가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질문들에 고민할 수 있도록 소설의 플롯을 짰는데, 이는 소설의 제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미리 ‘예고’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제목에서 이반의 죽음을 상상한 독자들은 소설이 시작한지 두 문단도 채 되지 않아 “이반 일리치가 사망했다는군요” 하고 말하는 표트르 이바노비치의 말에서 다시 한번 그의 죽음을 재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설정은 극히 드물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소설에 있어서 주인공의 죽음은 대개 사건의 대단원을 장식하거나, 매듭을 짓는 사건 중 하나이다. 어떻게 보면, 톨스토이의 이러한 설정은 독자들의 작품 몰입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될 수 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인 이반 일리치가 어떠한 결말을 맞게 되는지에 초점을 맞추기를 바라지 않고, 오히려 주인공 이반 일리치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고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설정을 통해서 독자 스스로가 어째서 주인공의 삶은 평범하고도 끔찍한 것인지, 왜 그에게 작가가 죽음을 부여했는지 등을 생각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소설 2장에서는 가정을 이루고 일에 몰두하게 되는 이반 일리치의 삶이 시간순서에 따라 나열되고 있다. 2장에서 서술된 다음 문장들을 통해 이반의 사고방식과, 이반이 추구하고자 했던 삶의 모습이 간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반 일리치가 결혼을 감행한 것은 두가지 이유에서였다. 우선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 같은 여자를 아내로 얻는 것이 기분이 좋았고, 동시에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이반 일리치의 삶은 전반적으로 ‘인생이란 으레 즐겁고 고상해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대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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