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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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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의중
댓글 0건 조회 6,026회 작성일 18-09-1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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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 ‘비둘기’는 한 중년 남성 ‘조나단’이 자신의 원룸 앞 복도에 날아든 비둘기에 의해 인생의 위기를 겪게 되는 하루를 그려나간다. 은행의 경비원으로 20년 넘게 근무하며 더 이상 죽음 이외에는 자신에게 닥칠 큰 사건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조나단은 고작 비둘기가 자신의 방 앞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동요한다. 그것은 자신이 이제껏 지켜온 삶의 루틴과는 확연히 다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용 변소를 사용하는 단칸 원룸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20년간 이웃과 변소에서 마주치는 일이 단 한 번 있었을 정도로 폐쇄적인 사람이다. 그만큼 그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리고, “안녕하세요!” 와 같은 형식적인 대화조차 싫어한다. 이런 그의 성격은 그의 불행했던 유년시절이 만든 결과다.

 

 그의 과거는 행복하지 못했다. 불행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천둥 번개가 치던 어느 어린 날, 신발을 벗고 물웅덩이 속을 첨벙거리며 신나게 집으로 돌아온 조나단은 자신을 반겨줄 어머니와 음식이 있는 부엌으로 향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버지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어머니가 아주 먼 곳으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아버지마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혼란에 빠지기도 전 조나단은 얼떨결에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척 아저씨네 농가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어지냈다. 농사꾼으로 재미를 붙일 무렵 아저씨는 그를 군대에 입대시켰고 그렇게 3년간 성가신 집단생활을 하고 다리에는 총상을 남긴 채 돌아온다. 돌아온 그에게 아저씨는 곧장 결혼을 권했고, 심지어 처음 보는 상대를 직접 정해주었다.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마침내 아무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 후 불과 4개월 만에 그녀는 아이를 낳았고, 같은 해에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 줄행랑을 치고 만다. 모든 불행을 겪고 난 그가 결심한 것은 사람들과의 단절이었다. 모아둔 돈을 모두 찾아 파리로 떠났던 그의 행동은 인생에서 처음으로 했던 독자적인 선택이었다.

 

 그런 그에게 두 가지 큰 행운이 찾아왔는데, 은행 경비원으로 일을 시작했으며 조그마한 단칸방을 얻었던 것이다. 2평 남짓한 낡고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불안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안전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그 방에 대한 애착은 점점 커져갔고, 자신이 좋아하는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많아지면서 그 방 역시 제법 구색을 갖추게 된다. 이미 봉급으로 따지자면 개인 욕실이 딸린 집에 살 수 있었던 조나단이지만, 그는 이 단칸방을 완전히 매입하기로 한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자신의 삶을 나름대로 잘 구축해나가던 그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바로 비둘기가 그의 방 앞을 지키고 있던 것이다. 문을 열어보니 복도에 비둘기 한 마리가 그의 집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불안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비둘기가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참을 수 없이 혐오스러웠던 그는 방문을 다시 닫고 고민을 시작한다. 도저히 공용 변소를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아 방 안 싱크대에서 볼 일을 해결했으며, 복도에 새똥이며, 깃털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에 그는 당분간 이곳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좋아하는 물건들을 꾹꾹 가방에 눌러 담으며 흘리는 그의 눈물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매일 해오던 경비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고, 항상 혐오했었던 길거리의 노숙자를 바라보다가 문득 아무데서나 먹고 싸는 그들이 자유롭다고까지 생각한다. 조나단은 '오늘'을 기점으로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에 대한 반문을 시작한다. 행복하기 위해 세상과 단절을 선택했던 그가 오늘은 어쩐지 불행하기 위해 세상과 단절을 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사실은 비둘기 하나에 크게 동요되었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 싫어 사람들과 만남을 꺼렸지만, 결국 비둘기를 쫓기 위해선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견고했던 것일까? 그는 정말 이런 삶을 원했을까? 매일을 고독하게 보내며 자신의 단칸방을 애인이라고까지 여기는 그 말이다. 아니겠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의 과거에는 고집처럼 되어버린 것의 이유가 모두 담겨있었다. 그가 호텔 방에 들어가 쓸쓸히 포도주를 마시는 모습에서 그에 대한 애잔한 마음까지 일렁인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그는 천둥 번개 소리에 잠에서 깬다. 낯선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는 무심코 ‘다른 사람 없이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물웅덩이를 첨벙대며 그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어린 시절 불행의 시작이었던 그 날과 닮아있다. 그 트라우마를 극복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비둘기는 결국 그에게 불행일까 행운일까. 아직 비둘기가 자기 방 앞에 있을까 걱정하던 일시적인 불안함이 복도의 익숙한 냄새에 금세 누그러진 것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인생의 중간쯤, 죽음과도 비교할 수 있는 큰 사건이 고작 이 ‘비둘기 사건’이라는 것은 정말 우스꽝스럽지만, 그도 느꼈을 것이다. 평이했던 삶이 흔들린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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