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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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 : 하다
조승연 저
나는 가끔 고양이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조그마하고 귀엽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아무 걱정 없이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도 되는, 그렇게 해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어질 때가 있단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자꾸만 그런 삶이 부러워 질 때가 있다는 게 참 씁쓸하다.
사실 외국인들이 보기에 우리나라는 정말 살기 편한 곳이다. 손가락 몇 번 까딱하면 집으로 음식이 배달되고, 낙서하나 없고 쾌적한 지하철을 이용하며 밤이 늦도록 마음 놓고 길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은 적어도 내 주변엔 그리 많지 않다. 신이 인류에게 부여한 지구 발전을 위한 모종의 책임감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두 어깨 가득히 짊어지고도 모자라 머리에 이고 힘들게 걸어간다. 성공과 행복을 동일시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서 일거다. 아니, 성공을 하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다고 여긴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맞을 거다.
행복에도 가성비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사실 늦은 밤 지친 몸을 겨우 침대에 뉘어 스마트폰으로 귀여운 고양이 동영상을 보며 키득댈 때가, 무더운 여름날 쫓기듯 샤워실로 들어가 찬물로 몸을 씻어낼 때 행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대게 사람들은 이런 행위로부터 오는 만족감 내지는 황홀감을 행복이라 생각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만화 영화, 동화책의 주인공들이 갖은 노력을 통해 숱한 역경을 이겨내고 뒤늦게 얻는 성취감을 행복이라 여겨왔고 또 부모님께 교육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말 악착같이 살려하게 된다. 슬프게도 현실은 동화 속 주인공과는 달리 결말이 없다. 내가 무럭무럭 자라 성공을 할지언정 역경과 노력의 순환은 내 자녀에게 대물림되고 또 대물림되어, 마치 불행의 고리 속에 갇히게 된다.
최근 들어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들은 이제 그 불행의 고리에서 탈피하려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인 이 단어는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이미 친숙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가족과 보내는 저녁식사 시간에 즐기는 맛있는 음식 한 점, 풍미가 좋은 와인 한잔에도 충분히 황홀감에 젖을 수 있는 그들은 어릴 때부터 미각 교육을 받는다. 생각해보면 맛을 표현하는 단어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드레스의 색을 보고 빨갛다, 푸르다 등의 표현을 즉각 할 수 있지만 음식의 맛을 디테일하게 즉각 표현하기는 힘들다. 대게 음식의 맛은 비유를 통해 표현되기 마련인데 프랑스의 아이들은 일찍이 부터 오롯이 음식에, 그리고 미각에 집중하여 즐기는 법을 배우고 오이의 맛을 ‘마치 시골의 숲 공기를 이빨로 굴리는 것 같다’라든지 토마토의 맛을 ‘태양과 대지의 맛을 믹서기에 갈아 넣은 것 같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첫 만남에서 어색함을 벗으면 대게 생년월일을 묻는다. 물론 상대의 탄신을 기리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자연스레 그가 손위인지 손아래인지를 파악하고 그 후 대할 태도, 언어, 매너를 결정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한국 사회생활의 기본 태도로 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이처럼 사람을 상하로 구분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상대를 원근으로 구분한다. 흔히 고슴도치 비유법으로 표현되는 이 같은 사회생활 방식은 고슴도치가 멀리 가려면 서로 찔리지 않을 정도의 간격, 서로 잊히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지키면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지혜를 담고 있다.
오랜 시간 축적되어온 한 나라의 문화에 옳고 그름이 어디 있겠냐마는 적어도 프랑스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소확행을 잘 실천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도 미각 교육을 어려서부터 받아 음식으로 행복감을 느끼거나 고슴도치 사회생활을 통해 인간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소소하지만 내 주변에 일어나는 가성비 높은 행복감에 충분히 젖어들 수 있게 내 자신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비가 내리는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험난한 출근길을 생각하며 화를 낼게 아니라 잠깐이나마 창문을 따라 흘러내리는 빗자국을 한 폭의 그림 삼아 감상하고,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한 곡절의 노래 삼아 흥얼거릴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삶이 될 수 있을까.
낯선 사람의 ‘봉주르’에는 대꾸하지 않아도 ‘보나페티’에는 밝은 얼굴로 화답하는 그들의 문화에서 배울 것은 비단 그들의 테루아 사상 뿐 아니라 시크한 삶의 태도다. 이 시크함은 삶에 대한 무심함, 환멸에서 비롯된 차가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배려는 물론 나아가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고민 끝에 나온 ‘뜨거운’ 시크함이다. 감히 자신의 처지를 고양이의 삶에 빗댄 내가 너무나도 부끄러워지지만 특히 우리와 같이 스트레스 관리에 만고를 기울여야 하는 연구직 종사자들 모두가 쓸데없는 마음을 아무데나 쓰지 않고 오로지 내 주변의 소소함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행복추구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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