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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더 – 마리사 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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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6,036회 작성일 18-09-1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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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더 - 마리사 마이어

이규섭

 신데렐라(Cinderella)의 그 신더가 맞다. 신데렐라를 모티브로 쓰여진 이 소설은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여 천애고아인 사이보그 소녀 신더의 고난과 사랑 그리고 그녀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신더는 아기 때 린 가란이라는 남자에게 입양되었지만 정작 그가 레투모시스라는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는 바람에 고아원 신세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된다. 그녀를 입양한 아버지가 사라지자 그녀는 가족의 애물단지로 전락하여 구박과 차별을 받으며 가족의 생활비를 버는 정비공으로 살아가게 된다. 어린 시절 사고로 인해 신체와 뇌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사이보그가 된 것은 그녀의 최대 약점이 되어 그녀의 삶을 더 힘겹게 만든다.

 그런 그녀에게 삶의 전환점이 될만한 일이 일어난다. 동방제국의 황태자 카이토가 안드로이드의 수리를 맡겨온 것이다. 소녀들의 로망인 황태자는 적국인 달나라 루나 왕국 여왕의 정치적 계략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애쓰던 중, 고장난 자신의 안드로이드가 그 결정적 단서를 쥐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성 내부의 감시를 피해 수리를 하기 위해 시장바닥에서 골동품을 정비하는 루나를 찾아냈고, 여러 사건을 거치며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안드로이드의 수리를 마치고 신더는 루나여왕이 황태자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전달하기 위해 무도회장으로 향하지만, 오히려 역으로 신더 자신이 지구인이 아닌 루나인이라는 사실과 동시에 사이보그라는 사실(그리고 그것을 감추었다는 사실)을 황태자에게 들키고 만다. 신더는 계모와 언니의 괴롭힘, 사랑하는 여동생의 죽음, 사이보그라는 결점 등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겠다는 목표를 이루었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황태자와 사랑에 빠지지는 못했지만,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자신이 루나의 공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의 정체를 아는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삶을 위해 아프리카로 떠난다. 이야기는 ‘루나 크로니클’이라는 4부작 장편소설의 포문을 열며 이후 빨간망토, 라푼젤, 백설공주를 모티브로 한 후속작으로 이어진다. 금세기 소녀들이 열광하는 최고의 베스트 셀러라나 뭐라나.


 어느 책에서 말하길 일반적으로 소설은 3막 구조로 되어 있어, 3개의 막은 ‘돌이킬 수 없는 관문’을 통해 연결된다고 했다. 주인공이 현재 상태에 머무를 수 없게 만드는 방해요소로부터 1막이 시작되고, 다시는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돌이킬 수 없는 관문’을 하나씩 통과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신더는 황태자를 만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였고, 이윽고 황태자의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하는 것으로 각종 사건에 휘말려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두 번째 관문은 수리된 안드로이드의 메시지를 듣고 황태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러 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더는 황태자의 위기를 인지하고는, 사랑하는 그를 위해 여왕을 만날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무도회에 난입하게 된다.

 이야기의 흐름은 인물의 판단과 행동이 결정하지만, 극적인 요소는 결국 인물의 계획과 실행, 노력보다는 우연에 더 많이 의존한다. 갈등의 발생과 해소로 이어지는 소설의 구조상 갈등의 정도가 심화할수록 결말에 와서 간단히 해소하기는 어렵다. 그때 결국 우연이라는 장치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감사한 일들이 쉬이 일어난다. 사실은 공주님이 었다던지, 사람의 심리를 조작하는 초능력이 있다든지. 장르가 판타지 정도가 되면 독자는 굳이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통쾌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예전부터 전해오는 수많은 이야기를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통쾌한 이야기란 결국 정말 어려운 갈등, 우리가 현실에서 해소하기 어려울 것 같은 갈등을 단번에 해결하는 것이다.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라 본다. 히어로 영화가 다시 인기를 끌게 된 지도 벌써 10년가량이 되었다. 이전과 달리 주인공의 고뇌와 갈등에 더 집중하여 더욱 현대적인 형태로 변모하였다고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히어로 영화만이 아니라 여타 드라마나 영화도 마찬가지다. 더 입체적인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고뇌와 갈등이 더 현실적이고 더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더라도, 결국 그 이야기의 마무리는 우연한 요소에 의해 결정될 뿐이다.


 모두가 소설과 같은 삶을 꿈꾼다. 우리 삶에는 갈등이 있고, 우리는 그 갈등의 해소를 바란다. 그리고 그 갈등과 해소의 주체가 자신이기를 바란다. 뒷맛이 찝찝한 소설은 싫은 법이니, 통쾌한 결말을 꿈꾼다. 결국 우리는 상업소설과 같은 3막 구조의 삶을 희망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돌이킬 수 없는 두 개의 관문’이 필요하다.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주인공의 의지이지만, 관문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비범한 인물은 한순간에 어중이떠중이가 되어 버린다.

 안타깝게도 우리네 삶에는 그다지 극적인 요소가 그렇게 많지 않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정말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그렇다고 본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 않나. 그래서 가끔 일생에 몇 번 있는 극적인 요소들은 무용담의 형태로 기억되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삶은 소설이 아니다. 더욱 정확하게는 결말이 예정된 하나의 소설이 아니다. 그러니 돌이켜 보면 어떤 것이 그 사건을 소설로 만드는 두 개의 관문들이 보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무엇이 관문인지 알 수가 없다. 결말을 모르는데, 지금의 이 기회가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 관문인지 애초에 관문의 역할은 할 수 있는지 알 리가 있겠는가. 우리의 삶을 마치 예정된 결말이 있는 소설처럼 여기다 보면 우리는 관문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을 넘어 관문을 갈망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당장 내 인생에는 전환점이 필요해.’라고 말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언가 행동하기보다 그저 전능한 소설가의 손놀림을 기다리게 된다. 지금의 고난이 사라질 절호의 기회가 그저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만을 바란다. 그러면 마치 소설처럼 손쉽게 행복한 결말에 다다를 수 있을 테니까. 열 페이지 남짓이면 모든 갈등은 사라져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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