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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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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5,913회 작성일 18-09-1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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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

앙드레 지드


  조용하고 학구적인 성격의 제롬은 어린시절 함께 지내던 외사촌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특히 언니인 알리사에게는 특별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알리사를 찾아가기 위해 외삼촌 집에 들른 제롬은 우연하게 외숙모의 외도를 목격하고 침대맡에 무릎을 꿇고 있는 알리사를 발견하게 된다. 울고 있는 알리사의 얼굴을 본 순간 제롬은 자신의 운명은 알리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이러한 생각에 도취되어 제롬의 인생의 모든 관심은 알리사에게 향하게 된다.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은 순탄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엄격한 청교도 집안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알리사에게 엄마의 외도는 단순한 충격 그 이상이었다. 세속적인 사랑을 쫓음으로 인해 가정에 파탄을 가져온 엄마의 존재는 알리사에게 세속적인 것들을 본능적으로 완전한 죄악으로 치부하게 만들고 결국은 극단적인 금욕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게 했다. 십 수 년 동안 알리사는 제롬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롬과의 세속적인 사랑을 본능적으로 죄 라고 의식하고, 여러 핑계를 대면서 제롬과의 결혼과 육체적인 결합을 부정해 버리고 종교적 삶을 함께 살아가기를 제롬에게 요구한다.


  제롬은 이러한 알리사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나이가 어렸을 때에는 알리사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이러한 실제적이지 않고 허상을 어루만지는 듯한 사랑이 완벽한 사랑이라고 자신을 이해시키며 만족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제롬은 이러한 알리사의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알리사 뿐이었지만, 둘 사이에 관계에 진전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음에도 자신을 밀어내려는 알리사를 그는 말리지 못했다. 결국 그는 알리사를 사랑했기에 모순적이지만 알리사에게서 멀어져야만 했다.


  알리사는 결국 제롬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고 그녀에 생각에 합당한 청교도적인 완전한 덕을 이루고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난한 사람에게 향하지만, 몸 상태가 악화되어 곧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삶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좁은 문' 을 열고 좁은 길을 걸어간 삶이었던 것일까?


  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성경구절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은 다음과 같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 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한국 기독교의 대표적인 설교자이며 목사님인 옥한흠 목사님의 좁은 문에 대한 설교를 들어보면, 여기서의 좁은 문이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구원자로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는 문이며, 좁은 문을 열고 걸어가는 좁은 길이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써 험하고 고되고 외로워도, 고통이 따를 지라도 바른 신앙생활을 하며 걸어가는 길을 뜻한다고 한다. 즉, 세상의 것들보다 하나님이 우선되는 길이며, 그것을 위해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길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바른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에 대한 우선순위의 문제이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철저하게 배제해 버리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님 안에서의 결혼과 정상적인 부부간에 사랑에 대해서 다양하고 아름답게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알리사가 생각하는 좁은 문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한다. 알리사에게 좁은 문이란 제롬과 함께 들어갈 수 없는, 오직 혼자서만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부정하여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이었다. 하지만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생각은 어쩌면 알리사가 가장 사랑했던 것은 제롬과 하나님도 아닌 자기 자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스스로의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단지 자신의 어렸을 때의 기억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모든 것들을 부정해 버리는 안타까운 모습들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이러한 둘의 비극적인 결말을 단지 알리사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가혹한 측면이 있다. 제롬 역시 자신만의 좁은 문을 만들어 그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에게 모든 것의 우선은 알리사였다. 이러한 사실은 두 사람이 생각하는 문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의 발길이 단지 알리사에게 끌려 알리사의 문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알리사의 문은 두 사람이 통과하지 못하는 문이었기 때문에 결국 그는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그는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방향을 함께 수정해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결국에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만다.


  지난 달에 읽었던 앙드레 지드의 전원교향악 과 마찬가지로 좁은 문 은 엄격한 청교도 집안에서 자란 지드의 자전적인 소설로 알려져 있다. 이 두 소설이 공통점은 인구의 많은 비율이 청교도 또는 카톨릭 신자였던 19 세기 후반부터 20 세기 초반 유럽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물음을 던져주었다는 것이다. 동기와 본질 없이 규칙을 위한 규칙과 금욕만을 강조하던 그 시대에 던진 지드의 삶의 형태에 대한 의문은 그 당시 뿐 만 아니라 현재에도 역시 유효하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바람직하다고 정해졌는지도 모르는 물질적 가치관과 형식에 따라 끌려가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분명히 인지하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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