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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지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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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윤
댓글 0건 조회 5,181회 작성일 18-03-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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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정말기, 일찍이 부모를 여읜 지바고는 그로메크 가문에 양자로 자라고 되고, 가문의 딸 또냐와 결혼하게 된다. 결혼식 축하 파티에서, 힘겹게 양장 공장에서 자랐던 여주인공 라라는 자신의 정조를 빼앗아간 코마로프스키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나 실패한다. 예전에 시위 집합소에서 서로를 만난 경험이 있는 지바고는 라라에 묘한 감정을 느끼지만, 이미 라라는 왕성한 혁명 활동을 펼치고 있던 파샤의 아내였다. 파샤는 곧 자신의 아내와 코마로프스키간의 육체적 관계를 알게 되고 괴로워하며, 라라를 사랑한 마음을 품은 채 불합리한 현실의 개혁의지를 다지며 군대에 입대한다. 마침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시기였고, 라라는 그런 남편을 찾으러 간호사로 지원하게 된다. 지바고 또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군의관으로 참전하게 되었는데, 이 둘은 이 시기 서로 우연하게 만나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가 혁명으로 인해 전쟁 포기를 선언하고, 둘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성공한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지식인은 숙청과 멸시,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감시의 눈을 피해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로 피난을 간 지바고의 일가는, 그곳 도서관에서 일하는 라라와 재회하게 된다. 이 시기, 둘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으나, 곧 시작된 러시아 혁명 내전의 여파로 지바고는 사회주의 정부가 지휘하는 붉은 근대에 강제 징집되어 1년만에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다. 이미 자신의 가족은 망명했고, 라라의 집으로 찾아간 지바고는 줄곧 라라의 행적을 쫓아 다니던 코마로프스키와 재회하여 혁명을 통해 세상을 바꿈으로 자신의 부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려던 파샤의 일대기를 듣게 된다. 라라를 위해서 지바고는 라라를 코마로프스키와 함께 먼저 피난을 보내고, 자신은 시를 쓰고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다. 결과적으로 한 여자를 사랑했던 세 남자-코마로프스키, 지바고 그리고 파샤는 모두 쓸쓸하고 비참한 죽음을 맡게 된다. 이 작품은 시대의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방황과 혼란을 겪어야 했던 주인공 지바고의 인생과, 그의 인생을 지배한 한 여자를 둘러싼 여러 남자들의 일을 역사적 일대기와 함께 다루고 있다.

 어쩌면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기적 같은 사랑이 이루어질 때가 아닌가 싶다. 어느 로맨틱 영화에서나 사랑을 갈구하는 두 주인공의 입맞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으며, 그만큼 인간 개인의 인생도 자신이 원하던 사랑이 비로소 그 열매를 맺을 때 가장 아름답게 빛을 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때로는 스쳐 지나가는 사랑이 운명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운명이어야 하는 사랑이 스쳐 지나가는 사랑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랑을 만나던 간에, 이를 이룩하기 위해 수많은 고난과 기다림을 견뎌야 했다면, 역설적이게도 그 재회는 그만큼 더욱 달콤하고 애절하기 마련이다. 혹독하게 겨울내의 추위와 칼바람을 견딘 식물만이 이듬해 봄, 더없이 찬란한 꽃을 틔우듯이, 그 꽃이 고난을 침묵과 인내로 일관한 사랑의 증표이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것이다.    뮤지컬의 2막, 가까스로 붉은 군대에서 탈출에 성공하여 라라와 재회한 지바고. 피곤에 견디지 못하여 라라의 집에 당도하자마자 지쳐 쓰러진 지바고를 말없이 바라보는 라라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부분이다. 지바고는 자신이 가족을 버렸다는 죄책감, 또냐라는 부인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며,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분노하고 슬퍼한다. 그러나 라라는, 비록 파샤와 결혼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지바고를 이해하며, 질투하거나 미워하기 보다는 온몸으로 지바고를 감싸주려 한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가 마치 불륜을 아름답게 그려내려 하고 있다고. 부양해야 할 가족을 버린 남자 주인공과, 자신의 정조를 더럽힌 것을 만회하고자 순수한 청년과의 결혼을 서둘렀던 여자 주인공이 결국 자신의 남편을 버리다 못해 파멸의 길까지 만든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어찌 이 두 남녀의 사랑을 아릅답다고 표현할 수 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소 거친 표현일지는 모르나, 사랑은 항상 순수한 것만은 아니다. 보통 우리는 사랑을 순수함, 고결함 그 자체로 표현할지 모르지만, 가장 단순한 논리로 사랑은 상대를 쟁취하는 것이기에, 쟁취하는 자가 있다면 동시에 잃는 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또한,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과 가지고 있는 공통점에 이끌려 사랑을 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보다 우리는 자신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면을 가진 상대방에 매혹 당하는 경우가 많다.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은 소설에서 나올 법한 완벽하고 순결무지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 소설이 아닌 진짜 ‘소설’같은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이 둘의 사랑은 문자 그대로 온갖 역경과 소용돌이의 연속 끝에 빛나는 사랑이기에, 우리가 실제로 마주하고 사는 사랑의 테마이기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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