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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 존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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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5,464회 작성일 18-03-0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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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 존 윌리엄스

이규섭

 

 교훈을 주는 글은 좋은 글이지만, 좋은 글은 교훈을 주는 글이 아니라고 했다.

 소설 ‘스토너’는 한 남자의 일생을 덤덤하게 그린 일대기다. 농촌에서 태어나 기술을 배워오라고 대학을 보냈더니, 학문에 열정을 느껴 영문학 교수가 된다. 그가 죽을 때까지의 이야기다. 책은 윌리엄 스토너라는 사람을 형식적으로 소개하며 시작된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중략)...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상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특별히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 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 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을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별로 대단치 않은 한 남자의 삶을 정리한 글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지 않는다. 어떤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 주지도 않는다. 주인공의 성장을 통해 읽는 이에게 감동과 희열을 주지도 않는다. 그의 삶은 차라리 비극에 더 가깝지만, 그렇다고 처절한 비극이 되어 우리 안에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를 갖춘 것도 아니다. 잔잔하게 그리고 조금 울적하게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 그런 이야기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의 삶은 굳이 따지자면 불행한 편이다. 삶에 굴곡이 많아 그가 원하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온전히 손에 넣지 못했다. 아내 이디스는 그를 증오했고, 가정은 언제나 불안정했다. 이디스는 스토너의 삶이 행복해지는 꼴을 두고보지 못했고, 사랑하는 딸과의 관계도 그녀의 훼방으로 멀어져만 갔다. 교수로써의 삶도 순탄치 못했다. 동료교수 로맥스와 그의 제자인 찰스 워커는 자신들의 콤플렉스로 스토너에게 적의를 품는다. 그들은 스토너의 정상적인 교수생활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끝내는 스토너에게 찾아온 진정한 사랑 마저 앗아간다. 그가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사는 것으로 방해꾼들에게 한 방 먹여줄 때쯤 병마가 그를 쓰러지게 한다. 결국 스토너의 인생이라는 지구전에서 소설 내내 독자들을 괴롭히는 주적들(이디스, 로맥스, 찰스 워커)은 그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고달픈 인생이건만 꿋꿋이 살아가는 그의 굳건한 모습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걸까. 글쎄 잘 모르겠다.

 더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기에 좋은 글이 있다. 스토너의 삶은 평범하다. 크고 작은 굴곡이 여럿 있어 그리 성공하지도, 실패하지도 않은 그런 삶. 그런 삶이기에 더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다. 스토너는 죽음을 앞두고 반복하여 자문한다.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그의 인생이 여지껏 어때왔던지 그의 삶은 한 점으로 귀결된다.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그 한마디에 지금까지의 삶이 대답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어떤 삶이었든 간에 아름답지 않은가. 그것이 어떤 삶이었던 간에, 스토너처럼 손에 자신의 책을 쥔채 미소를 지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스토너의 삶은 여느 소설들처럼 뚜렷한 메시지를 던지지 않더라도 더 깊은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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