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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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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5,977회 작성일 18-03-05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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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 헌법 제 11조 1항 -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다. 사람은 나서부터 타고난 것이 다르고, 부모의 재력과 가정환경이 다르고, 태어난 나라가 다르고, 살면서 경험하는 것이 다르고, 만나는 사람들이 다르고, 모두 다르다. 하지만 사람이 모두 평등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먼저는 죽음 앞에서 사람은 평등하고, 그리고 죄 앞에서 사람은 평등하다. 물론 현실에서는 무전유죄 유전무죄가 성행하지만, 공명정대하게 법이 집행되는 이상적인 사회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소설 '수족관'에는 세명에 남자가 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공부하며 좋은 대학 진학 후에 좋은 직장까지 잡은 '새우',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날나리로 살아오며 현재는 새우네 직장의 노동자로 바닥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넙치', 그리고 새우와 넙치 직장 내 카운터에서 일하는 순진한 청년 '개불'. 어린 시절 넙치와 새우의 관계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불평등한 관계였고, 나이가 들어서 새우가 직장 내에서 넙치보다 높은 위치에 있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넙치는 새우를 업신여기고 새우는 당하는 친구 아닌 친구 사이로 지낸다. 개불은 동갑인 새우와 넙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과 성격이 순하다는 이유만으로 둘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불평등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관계가 그러한 것처럼, 세 남자들은 서로간의 관계가 불평등하다.


  하지만 이들이 술자리에서 실수로 이들의 상사를 살인하게 되면서, 이 셋은 평등한 관계를 이루게 된다. 늘 지휘자 노릇을 하며 살던 넙치가 살인을 저지른 후 당황해 하는 사이 새우가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리더 역할을 하고, 넙치와의 의견 충돌 때는 그가 상사를 죽일 때의 기억을 떠올리고 용기를 얻어 넙치를 싸워서 이긴다. 늘 형들이 시키는데로 끌려다니던 개불은 시체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다투고 있는 형들에게 현실 파악을 하라 말하며 주도적으로 시체 처리를 진행한다. 살인자라는 신분 앞에서 이들 사이에는 나이도, 체격도, 사회적인 지휘도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살인이라는 범죄를 통해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등을 이룬다.


  사람은 죄와 벌 앞에서 평등하다. 이 말은 국가에서 집행하는 법 앞에서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의미이면서도, 전지전능한 신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서 평등한 위치에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은 죽음과 심판을 통해 평등해지기 때문에 신과 사후세계를 믿는 사람들에게 죽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인생이 끝이나는 부정적인 사건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희망이 담긴 사건이 될 수 있다. 특히, 불평등한 사회에서 고통 받는 약자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일수록, 내세를 통해 이루어질 진정한 평등을 더 꿈꾸고 소망하게 된다.


  그렇다고 우리는 이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모든 것에 손을 놓고 죽음 만을 바라며 살아야할까? 그것은 답이 아닐 것이다. 죄 앞에서야 평등한 관계를 이루었던 새우와, 넙치, 개불과 같이 신의 심판만을 기다리며 이 땅의 부조리함을 바라보는 것은 마치 수족관에 갇혀있는 물고기들 마냥 자신의 종교에 갇혀 사회를 방관하는 태도라 생각한다. 진짜로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 불평등한 사회라는 수족관을 깨고 공명정대하고 모두의 관계가 평등한 사회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바다를 헤엄치는 날쌘 물고기와 같이 파도를 거스르고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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