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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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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재
댓글 0건 조회 6,166회 작성일 18-04-0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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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꽃
 
김영하 저

     글을 잘 쓰는 작가 중 한 명인 김영하의 책은 늘 기대를 갖고 읽게 된다. 그의 책은 손에 들면 놓을 수가 없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검은 꽃’도 마찬가지였다. 작가의 상상력이 많은 부분에 가미된 일종의 역사소설이지만 역사소설류가 주는 고답적인 면이 적었고 서술이 지루하지 않았다. 복잡한 심리와 얽힌 상황을 군더더기 없는 문장, 장황하지 않은 표현으로 풀어놓아 읽기에 수월했다.  
     이 책의 배경이 된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까지의 시대상은 역사책으로 보거나, 그 시대를 다룬 소설이나 드라마로 보거나 항상 암울하고 무겁고 고통스럽다. ‘검은 꽃’ 역시 1905년 을사조약 이후 멕시코 유카탄으로 팔려간 한인들의 삶, 비극적이고 고통스런 시대의 한 켠에서 온몸으로 비극과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 나라의 존속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민초들의 삶과는 괴리가 컸던 왕을 비롯한 지도층은 나라를 떠나야 할 정도로 팍팍하고 불안한 백성들의 삶을 헤아리기에는 너무 무력했고 무능했다. 독자적인 대외 정책을 수행할 수 없었던 정부는 천 여명이나 되는 인력의 해외송출에 대해 어떤 권한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러므로 멕시코 첫 이주 한인 노동자들이 어떤 조건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게 될 지 따지고 챙겨줄 여력이 없었다.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막연한 기대와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기어이 살아보겠다고 ‘겨울이 없고 땅은 넓으나 사람이 적어 사람이(노동력) 금값’이라는 말에 속아, 사실은 에네켄(에니깡)농장 노예로 팔려가는 줄도 모르고 1033명의 한인들은 멕시코로 떠났다. 
     제물포항을 떠나는 영국 기선 일포드호에는 몰락한 양반, 구한말 군인, 역관을 비롯 농부, 어부, 무당, 신부, 도둑, 부랑자, 고아 등 제각각 다른 삶의 자리에서 다르게 고통 받아온 사람들이 올랐다. 막다른 낭떠러지에 몰린 것 같은 현실보다는 어떻든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떠났지만 그들은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미지의 땅 멕시코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보겠다거나, 신분의 귀천이 없는 평등한 세상에서 살아보겠다거나, 지주의 착취에서 벗어날 내 땅을 가져보겠다거나, 여자이지만 학교에 다니고 어머니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거나.. 그들의 꿈은 유카탄 농장에서 생살을 찢기며 잘라야 했던 억센 에네켄과 함께 잘려나갔다. 
단지 고향으로 되돌아가기만을 고대하며 하루하루를 고된 강제노동과 핍박, 궁핍한 생활을 견디며 계약기간을 버텼다. 그러나 4년의 시간이 지나고 막상 농장을 벗어나게 되었을 때 노예 노동의 대가로는 고향에 돌아갈 여비도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에겐 되돌아갈 조국이 없어졌다. 보물처럼 간직했던 헤지고 빛 바랜 여권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결국 귀국의 꿈도 이루지 못한다. 처음부터 그들에게 허락된 꿈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검은 연기를 길게 남기고 수평선 너머로 가는 배의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어쩌면 이 소설이 하고 싶은 얘기는 ‘사라짐’, 또는 ‘상실’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배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1033명의 이주 노동자들을 싣고 가는 배가 내뿜는 검은 연기도 허공에서 사라졌다. 검은 연기와 함께 꿈, 희망도 사라졌고 마지막으로 되돌아갈 조국도 사라졌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난 여백에 상실과 공허함이 남는다. 십 여명 주인공들의 삶의 궤적을 따라 가다가 마침내 남는 감정도 상실감, 공허함에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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