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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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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4,819회 작성일 18-01-04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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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은 마치 한편의 동화를 읽은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였다. 강렬한 색감과 아기자기한 표현들, 흥겨운 노래와 판타지스러운 요소까지, 영화는 시청자들에게 마치 미술 작품과 뮤지컬, 동화책을 하나로 아우러 보여주는 듯하였다. 하지만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행복한 기분을 주는 것은 단순히 시각과 청각적인 예술성 때문은 아니다. 감독이 영화의 여러 요소들을 통해 주고자하는 메시등리 모여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칠게감동을 선사하고 있음을 나는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 폴은 한없이 무기력한 사람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충격에 실어증을 가지고 있고, 피아노에 재능이 있으나 열정이 없어 유망주를 전전하고 있으며, 강한 집착의 이모들의 완력에 휘둘리며 그저 하루하루 살아가기만 하는 사람이다. 그러한 폴에게 이웃집에 사는 프루스트 부인과의 만남은 엉성한 모래성을 무너트리는 파도와 같이 강렬하였다. 개성이 강한 옷차림과 여유있는 태도, 자신의 방 안에 밭을 만들어서 허브를 일구는 그녀의 자유로움에 폴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끌림을 느낀다. 그리고 폴은 프루스트 부인을 통해 자신의 잊고 있던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악몽과 같이 여겼던 부모님과의 추억이 왜곡된 기억이었음을 깨닿게 되면서 서서히 상처로부터의 치유를 경험한다.


영화를 보면서 폴의 인생이 한없이 불쌍하고 동정심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삶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과거의 상처들이 자신의 무기력한 삶의 밑거름이 되어버린 것도 모른채 그 과거의 기억을 무시하고, 집착이 강한 어른들이 이끄는데로 휘둘리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모르고 원하는 바도 말하지 못하는 폴의 모습은 흡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과 학생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기회를 빼앗긴 이 사회 속에서 열정 없이 무기력하게 하루하루 살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 말하지 못하고 침묵을 요구 받는 수 많은 청년들은 마치 실어증에 걸린 것 마냥 속마음을 열지 않은채 입을 닫고 살아간다. 


수 많은 어른들은 지난 일을 잊으라고 하였다. 잘한 것도 많으니 잘못을 저지른 지도자들의 과오를 잊으라 했고,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으니 정치인들의 비리를 잊으라 했고, 심지어는 우리나라가 당하였던 수탈과 치욕의 역사를 바로 잡고 그 보상을 받는 일도 잊으라 했다. 바다로 가라앉아 버린 배를 굳이 건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잊으면 시간이 회복해준다는 어른들의 말을 나는 믿었다. 하지만 꿰메어지지 않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곯아 썩어질 뿐이다.


다행히 시대는 변했다. 잘못된 행동을 한 지도자의 과오를 돌아보는 과정도, 우리나라 정치 경제계의 더러운 현실을 바라보는 과정도, 마음 속에 가라앉았던 슬픔의 배를 다시 건져올리는 과정도 모든 국민들을 힘들게했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회복할 힘들 얻게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상처를 꿰매었으니, 살은 곧 찰 것이다.


"난 천국 따위 안 믿어. 노력하면 이곳도 천국이거든"

-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중 -


프루스트 부인이 영화에서 말한 것과 달리 나는 천국의 존재를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노력하면 이곳이 천국이 된다는 부분에 나는 동의한다. 세상에서 사는 것이 어렵고 '헬조선'과 같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을 모아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 간다면, 시간을 많이 걸리겠지만 이 땅의 상처들을 하나씩 보듬고 잘못들을 하나씩 고쳐간다면, 결국은 이 땅이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늘 기도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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