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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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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현준
댓글 0건 조회 4,570회 작성일 18-01-0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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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채사장 저


 얼마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으로 ‘세계’에 대한 실전 인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해주어 인상깊었던, 이제는 밀리언셀러가 된 작가 채사장이 그 ‘세계’와 ‘자아’를 관계의 인문학으로 엮은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항상 인문학에 대해 배고픈 공학도로서 출출할 때의 간식처럼 구미가 당기기에 충분했다. 특히, 접하는 ‘세계’ 라 할만한 것은 인터넷 기사와 SNS 로 전달되는 누군가의 주관으로 물든 ‘소설’들 속에서 마음 편한 한 끼 식사로는 ‘타인’을 떼어놓고 혼밥(혼자하는 식사)을 해야 비로소 소화가 잘되는 나. 그리고 그러한 삶이 반복될수록 자아를 지키기 위해서는 타인, 세계와 거리를 두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



 “우리는 인생의 여정 중에 반드시, 관계에 대해 말해야만 한다. 내가 타인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내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서. 왜냐하면 타인과 세계의 심연을 들여다봄으로써 거기에 비친 자아의 진정한 의미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 중에서 과연 저자가 진단하는 대로 나는 자아의 진정한 의미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 나란히 지금 베스트셀러에 놓여있는 <신경 끄기의 기술>,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의 저자들이 말하듯이 세상사 이리저리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피곤한 삶을 사는 것은 한 물 간 삶의 전략 아니었던가?



 “화장실 세면대를 붙잡고 거울 속에서 울고 있는 자신을 대면한 적이 있는가? 그 불쌍한 사람은 고독하고 적막한 공간에 던져져 혼자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아무래도 세상은 녹록치 않다. 내 마음 같은 걸 신경 써주는 사람은 없다. 나라는 존재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다. 회사와 학교와 사회와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 속 하나의 구성원일 뿐. 나는 언제나 그 주변부에서 대중의 무리를 따라 발맞춰 걸어가야한다. 그렇게 사회는 우리를 다그친다. 대중으로 남아있으라. TV 속의 주인공들에게 열광하고, 직장 내 높으신 분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시장의 고객들에게 고개를 숙여라.” 별에 대하여 중에서



 저자가 진단하는 삶 속에서 세면대를 붙잡고 울어보지는 못했지만 공교롭게도 답답한 현실을 외면하며 ‘신경 끄고’, ‘나로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던가. 애초에 국가, 사회, 회사로 연결되는 복잡한 구조물 속에서 하나의 ‘기어’일 뿐인 내가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버텨봐야 고장 난 ‘기어’ 취급을 받을 뿐이다. 이런 부품같은 내 삶이 어떻게 빛날 수 있을까? 혹시 더 열심히 일해서 ‘모터’ 정도 중요한 부품이 되면 더 이상 TV 속의 주인공에게 열광하지 않고 내 삶 오롯이 행복할까?



 “그래서다. 연애를 한다는 것이 놀라운 까닭은. 가슴이 무너진 날, 그 사람에게로 가자. 그의 얼굴과 맑은 눈동자와 나를 반기는 미소를 보자.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이 밤을 보내는 거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세상의 주인공이 된다. 세계는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일상의 하찮음은 주변부로 사라진다. 사랑하는 이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그래서 그렇게도 놀라운 일이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주인공이고, 함께하는 순간 작은 세상의 중심이 된다. 누군가 힘들고 지쳐 나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 받고 싶어할 때, 나는 그에게 한걸음에 달려가 소주 한 잔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빛나지 않는가? 행복한 순간 진심 어린 축하를 건내 주는 친구들로 인해 빛나지 않았던가? 가족들과 식사자리에서 서로 따스한 눈빛을 나눌 때 그 자리 모두가 주인공이 되지 않는가? 나는 그럴 때 행복을 느꼈고, 그렇게 주인공이 되었을 때 누군가의 동반자이자 친구이자 아들이었음을 다시금 깨닫곤 하지 않았는가.



 내가 빛 났던 그 순간들만큼은 내 삶 오롯이 행복하였음은 분명하다. ‘타인과 세계의 심연을 들여다봄으로써 거기에 비친 자아의 진정한 의미를 비로소 확인’ 한다는 저자의 말이 이런 뜻이었을까? 확신할 수 는 없지만, 만일 비슷했다면 왜 저자가 삶 속에 흩뿌려진 관계들이 자기 안에서 만나 ‘빛나는 별’을 이룬다고 말했는지 알 것도 같다. 또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어떻게 매번 나를 힘들고 좌절하게 만드는 ‘관계’라는 것이 다시금 나를 일으켜 새우는 모멘텀이 될 수 있는지. 또 그 ‘관계’를 외면하기보다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다시금 느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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