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기어 가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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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마을에서 닭소리가 울린다. 득춘은 아내를 앞세우고 조용히 집 밖으로 나온다. 득춘은 뒷등에 보따리를 매고, 그 아내는 머리 위에 보퉁이를 놓은채 마을 앞 큰길로 조심스레 달려간다. 동릿집 개가 이상한 두 발소리를 듣고 짖기 시작하니 득춘과 아내의 가슴이 덜렁한다. 찬 기운이 얇은 의복을 뚫고 사이로 숨어드는 것을 느끼며 구름 한점 없는 어두운 밤 하늘 아래 두 부부는 마을 밖으로 달려 나간다.
이익상의 소설 "쫓기어 가는 이들"은 일제 감정기 시절 일제의 수탈로 인한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이 마을 저 마을 떠다니며 유랑을 하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주인공 득춘은 별 볼일 없는 집에서 자라 부유한 사돈의 밭에 빌붙어 살아가다가, 사돈이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후 그나마 가진 밭도 잃고 이곳 저곳을 떠다니는 삶을 살게 된다. 아름답고 젊은 아내에게 행복한 삶을 살게 하고 싶은 순수한 욕심이 있는 사내이지만, 변변치 않은 옷하나 사주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좌절관 한탄을 느낀다. 결국에 이 부부는 기차역 근처에 술집을 차려 주막장이가 되고, 조금씩 돈을 모아가며 행복을 느끼기 시작하지만, 부유한 집안의 도련님이 아내에게 추근대기 시작하면서 그 삶이 더욱 비참한 처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사람의 삶에는 작든 크든 그 사람이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얻고 싶은 직업, 이루고 싶은 업적, 혹은 가지고 싶은 소유 등, 수 많은 형태와 수 많은 모습으로 사람들은 꿈을 꾼다. 그러나 소설에 등장하는 득춘의 삶에는 꿈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 위해, 추위를 피할 옷을 입기 위해, 머리를 둘 잠자리를 구하기 위해 득춘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 뿐이었다. 조그마한 벌이로 하루를 넘기고, 삶의 터전을 잡지 못한채 떠돌아다니는 득춘 부부의 삶에는 꿈이라는 것을 꿀 여유가 전혀 없었다. 꿈은 내일에 대한 소망이 있어야 꿀 수 있는 것이고, 득춘 부부에게는 그 소망이 없었다.
우리는 대한민국 역사상 유래가 없는 부유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수 많은 신형 전자제품들이 쏟아지고, 너도 나도 맛집을 찾아다니며 식사를 즐기며, 사람들은 물건을 쉽게 소비하고 쉽게 버리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이렇게 풍족한 삶을 누리는 우리나라 사회 뒤에도 마치 전등 아래 그림자와 같이 어두운 단면이 공존하고 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가난의 굴레를 지고 사는 빈민들, 사회의 질타 속에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 부모에게 버림 받아 누구의 도움 없이 사회의 생존경쟁에 내몰린 고아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없는 장애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바로 그 그림자이다. 이들에게는 풍족함을 누릴 여유가 없다. 마치 하루 벌이를 위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득춘처럼, 이들에게 하루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다.
복지란 이런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꿈을 꾸고 살아갈 권리가 있기 때문에, 꿈 없이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복지가 실현되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약간의 세금으로 느껴질 돈이 누군가에게는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면, 그 방법이 조금은 비효율적이고 조금은 비생산적이라 할지라도 의미가 있는 복지가 아닐까? 높은 자들을 위함이 아닌 낮은 자들을 위해, 가진 자들을 위함이 아닌 없는 자들을 위해, 사회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협력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기도한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는 삶을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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