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승윤
댓글 0건 조회 6,152회 작성일 18-02-27 23:18

본문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무라카미 하루키

 

• 프랑스어 ‘오캄(au calme)’
   -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고요하고 조용하게 삶을 즐기는 모습을 뜻하는 말
• 스웨덴어 ‘라곰(lagom)’

- 화려한 장식의 인테리어보다는 창가에 허브를 키우며 소박하게 공간을 채워나가는 삶의 방식
• 덴마크어 ‘휘게(Hygge)’
   - 따뜻한 스웨터를 입고 장작불 옆에서 핫초콜릿을 마시는 기분처럼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

[출처][2018 트렌드 키워드 #1]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작성자미래의창

 

  위의 세 단어와 더불어 작년 한 해 우리나라를 강타한 단어가 있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이것이다. ‘한번 사는 인생이기에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라’라는 뜻으로 개인이 하고 싶은 것을 너무 억누르지 말고 즐기면서 살라는 것으로 보통 해석한다. 그러나 욜로의 뜻은 사실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르다. 욜로 그 자체는 가치 판단이 결여된 단순한 명제이기에 욜로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그 의미는 천차만별로 달라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언론에서 사용하는 욜로의 의미는 어떤 한 방향의 특정한 삶을 살라고 명령하는 듯하다. 젊었을 때 여행을 즐기지 않으면 욜로라는 트렌드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것처럼 느끼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에 큰돈을 들여서 좋은 장비를 구비하지 않으면 결단력 없는 소심한 놈으로 여겨지게 된다.

 

  오캄, 라곰, 휘게와 욜로는 사실 비슷한 말이다. 그리고 이 단어들은 ‘소확행’이라 불리는 이 책의 제목,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욜로라고 해서 특별히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가치관은 다양하기에 몇몇 사람들은 정말로 욜로를 언론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는 단어의 의미를 돈 있는 사람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일반 서민들도 그들의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그들이 행복을 느끼는 방식은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하기에 더 의미가 깊다고 느낀다. (물론 이것 또한 나의 가치관에 기반을 둔 주장일 뿐이다.)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로 얻는 확실한 행복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

“그래, 바로 이 맛이야!”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이 책,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로 얻을 수 있는 확실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어떤 것을 하고 싶을 때 조금 더 참았다가 나중에 더 적절한 시기에 하게 된다면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이런 종류의 행복을 얻는 방식은 수행자의 그것과 비슷하여 요즘 사람들의 빠른 의사 및 감정 배출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방식의 열렬한 지지자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다.) 가격이 싸든 비싸든, 조금 더 참아보고 그래도 필요하다는 결론이 내렸을 때 혹독한 비교를 통해서 구매한다. 이 때 얻는 희열은 생각보다 더 달콤하다. 소확행 방식의 행복 추구는 연예, 문화계로부터 촉발된 성추행, 성폭행 등의 사회 문제도 해결 가능하다. 갑작스런레 분출되는 욕구가 분출될 때, 자신의 의지를 꺾어보라. 아내 이외에 다른 여성과의 대화와 스킨십을 즐기는 것을 참고 줄일수록 아내와의 만남이 더 즐거워 질 것이라 믿는다. 한탕주의에 빠져 노동하기 싫을 때 차가운 머리로 냉정하게 확률론 적으로 판단하고 일해보라. 주말이, 휴가가 더욱 달콤할 것이다. 이것은 풀어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성경에도 쓰여 있는 진리이다.

 

개인과 조직이 싸움을 하면 틀림없이 조직이 이긴다. 때때로 문득 ‘혼자서 살아가는 것은 어차피 지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정말 피곤하네’라고 인정하면서도, 나름대로 힘껏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소확행적 삶 보다 욜로를 빙자한 한탕주의 혹은 한 가지 취미에 올인하는 삶은 아마도 지금이 미래 가치가 불분명한 상실의 시대라서 더욱 유행하는 것 일수도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19세기 이후 많은 전제주의 왕정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몇 번의 산업혁명이 거듭되며 눈부시게 경제 성장이 이룩되었다. 물론 지금도 4차 산업 혁명으로 대표되는 첨단 산업들의 발전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며, 이에 따라 새로운 부의 창출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경제 성장의 속도는 저조해졌으며, 특히 전쟁 후 한강의 기적을 통해 10% 수준의 경제 성장을 반복했던 대한민국의 현재는 더욱 암울하다. 혹자는 ‘요즘 젊은 세대들이 부모보다 잘되기 어려운 첫 번째 세대’라고 지칭하며 평생 동안 노동을 해도 서울에 집 한 채 사기 힘든 세상을 한탄하며 이야기한다. 이러한 시대에 희망보다는 우울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어두운 미래를 산다면, 미래를 위한 현재의 고생보다는 차라리 현재를 즐기자는 식의 욜로 문화 형성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어떤가 생각해본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인한 행복의 크기는, 정량화되기 어렵기 때문에, 결코 작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소소하지만 높은 확률로 얻을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하다보면 그 사람의 인생이 결코 암울하지만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꾸준히 누리며 살고자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