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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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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4,762회 작성일 18-01-01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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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는 갑자기 영화를 보고 싶은 날이었다. 개인적으로 길고 긴 어두운 터널 같던 침체된 2017년을 마지막까지 무디게 보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신촌의 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예매했다. 최근 엄청난 속도로 흥행 기록을 써내려 가고 있는 ‘신과 함께’ 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영화관 안에 막상 들어가니 왠지 모르게 개봉한지 이틀이 막 지난 1987이라는 영화에 눈길이 갔다. 그 자리에서 영화를 예매하고 좌석에 앉았다.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영화가 끝날 때 쯤에는 무언가 특별한 감정의 변화나 생각의 전환이 생기길 바라며.

 

  영화관의 대형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영상은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적인 전환점이 된 년도 중 하나인 1987년의 사건들을 디테일하게, 그리고 빼어난 연출로 표현해 내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은 전두환 정권의 독재와 탄압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이 점차 강렬해지는 시기였다. 그러던 중 1987년 1월,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고 박종철 학생의 고문치사사건이 일어났고, 공안부는 고문으로 대학생을 죽였다는 사실을 어떻게든 무마하기 위해 언론을 통제하고, 무자비한 방법으로 관련된 사람들을 입을 막고 축소 은폐시키려 시도했다.

 

  이러한 어두움 속에서도, 옳은 것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미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상부의 지시만 잘 따르면 평생의 부귀와 명예가 보장 됨에도 불구하고 지시를 어기고 고 박종철의 부검을 지시하고 은밀하게 부검 결과를 빼돌린 검사가 있었고, 당연히 보복이 있음을 알면서도 군부에서 내려온 보도지침을 무시하고 고문치사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고 배포한 언론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단지 자유를 향한 신념과 옳은 것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뜨거움으로 무장하고 거리에 나와 독재 타도를 부르짖었던 거리를 가득 채운 행동하는 대학생들이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전부 다 지나가고, 불이 켜지며 영화관 직원의 다음 영화를 위해 영화관 밖으로 나가 달라는 목소리가 메아리쳐 울릴 때까지, 나는 도저히 그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때는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마치 가슴속으로 밀려 들어오는 먹먹함,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 그리고 누군가에겐지 모를 고마움이 뒤섞인 거대한 감정이 나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멍한 상태로 영화관을 나와 30년 전 자유를 외치다 최루탄에 맞아 숨진 고 이한열이 걸었을 연세대학교의 교정을 거닐며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나는 어떤 자세로 삶을 살아나갈 것인지.

 

  부끄럽지만, 나는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마치 영화 초반 여주인공이 시위를 피해 다니며 거대한 사회적 움직임을 방관자로써 지켜봤던 것처럼, 나 역시 몸을 사리는 방관자에 가까웠다. 옳은 신념을 가지고 앞서 행동하는 사람에게 존경심을 표하기는 했지만, 대규모의 시위에서 상당히 많은 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했던, 확고한 신념과 정확한 사실에 기반한 가치판단 없이 분위기에 휩쓸려 끓는 냄비 속에서 달아오른 군중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비단 대의를 위한 행동을 방관했던 것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가진 목표와 지향점조차 생각이라는 닫힌 방에 머물 뿐, 편안함과 게으름에 취해 억지로 현재에 만족할 뿐 스스로 정체되어 있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영화가 끊난 후 나를 짓눌렀던 스스로에 대해 느끼는 한심함이었다.

 

  한편으로, 영화가 끝난 후 느꼈던 또 하나의 감정, 막연한 고마움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해 주었던, 행동하는 올바른 신념들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현재의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 시절보다 훨씬 더 발전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만들어 준데 대한 그들이 만들어낸 1987년의 그 파도에 대한 소소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은, 함께 느꼈던 나에 대한 한심함과 더불어 앞으로 추구해야 될 삶의 방향을 조금씩 가리키고 있었다.

 

  역사적인 6월 항쟁으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2017년, 대한민국 역사에서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어두움에 가려진 대한민국이 전국을 가득 매운 수백만 개의 촛불로 밝혀졌다. 숱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그들 손으로 이겨내고, 자유를 쟁취해 왔던 행동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또 한 번의 승리였다. 이렇게 2017년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두운 대한민국에 빛을 밝히는 촛불이 켜졌듯이, 다가오는 2018년 30살이 되는 이 시점에서, 내가 걸어왔던 길었던 어두운 터널에 대의를 위해서든 개인적인 지향점을 위해서든 조그마하더라도 빛을 비춰줄 수 있는 촛불이 켜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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