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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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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4,824회 작성일 18-01-03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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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이규섭

 

  최근 할리우드 영화계는 히어로 영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히어로 영화가 주는 통쾌함 역시 주요한 이유가 되겠지만, 최근의 히어로 영화들은 이를 넘어선 모양새다. 철학적인 접근을 통해, 현실이 던지는 복잡한 문제와 갈등 속에서 고뇌하는 히어로의 모습과 이를 히어로의 방식대로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특징을 보인다. 수많은 히어로 영화들이 양산되고 있지만, 배트맨 3부작이나 스파이더맨 3부작, 아이언맨 시리즈 등이 그 사이에서 또렷이 인기를 끄는 것이 이를 입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수많은 히어로 영화 가운데서도 최근 가장 두드러지는 작품 중 하나는 단연 엑스맨 시리즈이다.

  엑스맨 시리즈는 “이 세상에 특수 능력을 가진 돌연변이 인간들이 태어난다면 어떻게 될까?”를 주된 모티브로 진행되는 영화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프로페서 X와 온몸이 강력한 금속인 아다만티움으로 구성되어 있고 엄청난 회복력으로 불로불사의 몸을 가진 울버린이 주인공이 되어 이들을 중심으로 뭉친 뮤턴트(돌연변이)들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세계에 닥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이 시리즈의 중심 내용이다.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여느 히어로 영화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엑스맨 시리즈는 기존의 다른 히어로물과 달리 speciality를 히어로인 주인공에게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상에 등장하는 수많은 뮤턴트들에게 부여한다. 영화 속의 세계에는 수많은 뮤턴트가 존재하고, 이들은 일반인들 사이에 숨어서 살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 speciality가 개인이 아닌 집단에 부여될 경우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염동력자나 독심술사, 불사신 등 얼핏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그렇기에 유치하고 상상 속에서만 있을 세계처럼 보이지만, 돌연변이들의 세계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모습을 투영하고 있음에 관객들은 어느새 영화에 빠져들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 돌연변이와 차별

  엑스맨 시리즈는 중심이 되는 엑스맨 3부작을 비롯하여, 과거이야기를 다룬 퍼스트 클래스, 주인공과 관련한 몇 개의 외전격인 울버린 시리즈, 그리고 과거편의 이야기와 현재를 연결하는 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 등으로 구성된다. 이 모든 시리즈를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는 바로 소수의 돌연변이와 이들에게 가해지는 다수의 인간으로부터의 “차별”이다.

  돌연변이와 그들의 능력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 그리고 비돌연변이들 사이에 그들이 섞여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가 인간들로 하여금 뮤턴트 들을 배척하고 차별하게 만든다. 이러한 차별 때문에 돌연변이들은 인간이지만, 인간 사회에 속하지 못한다. 개중 많은 이들은 차별 받지 않기 위해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돌연변이들은 각자 투쟁을 벌여나간다.

  돌연변이는 생물체에서 어버이의 계통에 없던 새로운 형질이 나타나 유전하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사회적 의미의 돌연변이도 존재한다. 기존 사회가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질이 등장하면 사회는 이에 대한 거부 반응을 먼저 일으킨다. 인위적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존재는 외부 변화에 취약하기 때문에, 새로운 형질을 인정하는 순간 복잡한 형태의 질서가 한번에 무너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기에 뮤턴트들의 존재는 생물학적인 돌연변이의 발현임과 동시에 사회적인 돌연변이들의 등장이기도하다.

  인간의 역사는 항상 이러한 사회적 돌연변이들에 대한 차별과 핍박과 함께해 왔다. 백인 중심 사회에 출연한 흑인, 유럽인들 속의 유대인, 이성애자의 사회에 등장한 동성애자와 같이 우리주변의 수많은 사회적 돌연변이들은 영화 속 뮤턴트 들과 같은 이유로 차별받고 있고 그들의 투쟁이 이슈화 되고 있다.

 

- 다원화에 대한 이야기

  우리는 민주주의의 이념 아래 살아가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원화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권리를 가지고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민주주의 사회는 수많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그 개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를 기반으로 하며, 이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자신의 이해에 따라 행동하되 토론과 합의를 통해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 다원화가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의 맹점이 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다른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면 그 가운데 반드시 양립 불가능한 다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엑스맨에서 뮤턴트들은 각자가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뮤턴트 사회는 능력의 다원화 사회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중 특히 엑스맨 3편에서는 엑스맨의 능력을 무효화하는 능력을 가지는 소년이 등장한다. 이 소년 역시 뮤턴트이지만 소년의 능력은 급진파의 뮤턴트들에게는 자신들의 존재에 위협을 가한다고 판단될 뿐이다. 따라서 이 소년은 뮤턴트임과 동시에 일부 뮤턴트의 적이 된다. 이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반드시 이해관계에서 대립되는 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 절대 선의 부재

  엑스맨 시리즈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큰 주제는 바로 문제에 대응하는 두 세력 사이의 가치관의 대립이다. 엑스맨은 안타깝게도 히어로물이라는 조건상 선과 악의 구도가 뚜렷한 편이다. 하지만 전체 시리즈의 구도를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갈등으로 본다면 조금 다르게 해석 될 수 있다. 프로페서 X는 뮤턴트와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반면, 매그니토는 뮤턴트를 차별하는 근원인 인간을 제거 혹은 지배함으로써 뮤턴트의 사회를 구축하고자 한다. 영화에서는 결론적으로 프로페서 X의 집단이 보다 옳은 방식의 가치관을 지닌 것처럼 나오지만, 뮤턴트가 처한 입장에서는 두 세력의 가치관이 모두 납득 가능하다. 영화적 흐름상 매그니토 측의 가치관이 극단적이라는 점을 어느정도 눈감아 준다면, 이 둘의 모습은 마치 흑인 인권 운동의 마틴 루터 킹과 말콤 엑스를 연상케 한다. 우리가 흑인 인권 운동의 방관자 입장임에 마틴 루터 킹의 가치관이 더 옳은 것으로 보여지지만, 말콤 엑스의 급진적인 접근 역시 당시 흑인 사회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은 선한 방식이다라고 말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이 저것은 악한 방식이다라고 말하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선이나 절대적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전에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철학자가 이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의 답을 내렸지만 명확한 해답은 없다.

  현대의 시민들은 정의에 대한 갈증에 헐떡이고 있다. 마이클 샌델의 강의를 편집하여 출판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동안 베스트셀러 1위의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던 때가 있다. 그만큼 대중은 정의에 대해 갈망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렇게나 선이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집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항상 정의가 부재한 상태라고 느낀다. 정의가 왜 이땅에서 사라졌는지, 도대체 정의가 무엇인지 회의감을 느끼던 많은 사람들이 그 해답을 얻고자 하는 움직임이 이러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라는 것이 한 가지 해석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정의는 갈망할 수 있는 존재이지 다다를 수는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정의에 대한 명확한 개념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의는 인간에게 해석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왜곡되며 그 정도가 개개인 마다 달라 정의를 해석하는 방식이 판이하게 달라지고, 이것이 실현되는 방식 역시 양립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람들은 정의를 실현하고 싶어하지만, 그들이 정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할수록, 그들의 정의를 향한 갈증은 커져만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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