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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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역사 – 발터 샤이델
“20세기에 불평등을 줄인 것은 단연코 전쟁이라는 혼돈이었고, 그에 수반된 경제적·정치적 충격이었다. 더 큰 평등을 지향하는 점진적이면서도 합의에 기반을 둔 갈등 없는 발전이란 없었다. 20세기에 과거를 지우고 사회를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게끔 한 것은 바로 전쟁이지, 조화로운 민주주의나 경제적 합리성이 아니었다” - 토마 피케티
유사 이래 인간이 평등했던 적은 없었다. 누군가는 권력을 쥐고 다수의 위에서 군림했으며, 누군가는 부를 독점하고 이를 세습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쳤다. 불평등이 탄생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기술 발전이 잉여 생산물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진입하면서 생긴 잉여 생산물은 이전 사회보다 예측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물질적 불평등을 유발하였다. 결국 토지와 가축의 소유권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능력이 중요시 되면서 기술과 제도라는 것이 생겼다. 결국 이런 제도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정치-군사적 권력을 만들어 냈으며, 혼자서는 이를 감당할 수 없기에 상위 1 퍼센트라는 엘리트 집단이 형성되었다. 부족사회에서 고대 국가를 형성하면서, 제도화 되면서 사회가 안정할수록 경제적 불평등은 더더욱 심화되었다. 결국 법과 제도는 경제 권력을 합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역할을 한 것이다. 이런 불평등을 타파하는 것은 흔히들 다음과 같이 인식하고 있다.
“토지개혁, 거시경제적 위기, 민주주의, 교육과 기술의 혁신, 경제발전”
하지만 이런 제도들이 불평등 격차를 좁혔다는 설득력 있는 근거가 없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평화적이고 효과적인 토지 개혁은 기득권의 저항이 부딪혀 수정되거나 무산되어 왔으며, 이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종합부동산세에 관한 논란이다. 참여정부 시절에 진행된 종합부동산세는 부동산 불평등을 완화한다는 취지하에 시행되었으나, 운영의 미숙함과 보수야당 및 언론의 공세가 겹치면서 비판을 받았다.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불합치 판결을 받아 사라졌고, 현재는 토지 공개념으로 전환되어 헌법 개정에서 조문에 명시할 수 있도록 여당에서 추진하는 중이다. 토지개혁은 실행된다면 어느정도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는 있지만, 시행하는데 기득권의 저항이 거세며 초기의 사안보다 후퇴되어 효과가 반감된다는 난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거시 경제적 위기는 평준화에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되지 않는다. 2009년 세계 금융 위기에는 상위층의 소득과 자산의 감소보다 하위층의 소득과 자산의 감소가 더 커졌다. 결국 2010년대 이후로 전체 부의 절반을 가지는 사람의 숫자는 감소하여 불평등만 커졌다. 이를 완화시켜야할 민주주의 정치체계는 별 다른 영향을 행사한 바가 없으며, 교육의 보편적 확대와 기술 혁신은 초반에는 경제적 격차를 좁히면서 중산층을 형성하였지만 사회가 다시 안정되면서 상위층의 소득 확대와 중산층의 몰락이 겹치면서 결국 경제적 불평등을 막지 못했다. 경제 발전은 말할 것도 없다. 낙수효과를 들먹이면서 지난 9년간 기업 위주 성장주도형 경제 정책을 펼친 이명박근혜 정권에서는 소수의 집단이 부를 독점하면서 일반 국민들은 경제 성장에 따른 부의 증가를 체감하지 못했다. 그나마 토지개혁, 거시경제적 위기, 민주주의, 교육과 기술의 혁신이 불평등을 잠깐 완화하거나 속도를 늦추기는 했지만, 소위 상위 집단이 이런 변화에 적응하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제도의 허점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부를 다시 증가시켰다. 오히려 과거를 되돌아보면 불평등을 평등하게 만든 요인은 다음 4가지이다.
“현대의 총력전, 대혁명, 체제와 국가붕괴, 대유행병”
이를 “묵시록의 네 기사”에 비유하여 “평준화의 네 기사”라고 부른다. 단순한 약탈과 정복으로 하는 전통적인 전쟁은 지배층에게만 더 많은 부를 주었다. 하지만 현대에 치러진 국가간의 총력적은 부자들의 누진세를 높이고 자본의 집중을 통제하였다. 국가간의 총력전 이후 낮은 저축률과 자산의 가치 하락, 물리적 파괴와 해외자산의 소멸, 임대료와 물가 통제 및 국유화같은 전시 재정적 수단이 견고한 사회복지체계로 이러지면서 불평등이 회복되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물리적인 충격에 무너져가는 국가 체제를 회복하기 위하여 강력한 국가적인 동원력을 바탕으로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이 불평등을 완화한 것이다. 러시아 공산 혁명은 몰수, 재분배, 집단화와 고정물가로 불평등을 제압하였으나,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전무후무한 폭력을 동원하였고 이는 총력전과 공통점이 있다. 공통점은 사유재산과 시장의 힘을 억압하고 계급의 격차를 평준화 했다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중산층을 형성한 시기는 신군부 시절이다. 종합토지세, 택지소유상한제·토지초과세, 개발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이 도입되었으며(토지공개념), 토지과다보유세 및 1기 신도시 조성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면서 최저임금제까지 도입하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가적인 무력으로 기업, 국민들 할 것 없이 찍어 누르던 시절이라 가능한 이야기 이다. 체제와 국가붕괴는 상위 계층을 수호하던 안전장치가 사라지면서, 도전자들이 이들의 몫을 차지하며 결과적 평등을 달성하였다. 흑사병 같은 대유행병은 인구감소를 유발하면서 역으로 노동의 가치를 올려 평준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사회가 안정되면서 이런 효과는 줄어들면서 다시 불평등으로 회귀하였다. 결국 잉여 생산물을 지키기 위하여 만든 제도와 권력의 비대칭성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물리적인 혼란이 불평등을 완화하였지만, 사회가 다시 안정되면 제도와 권력의 비대칭성이 나타나 도로 불평등해지는 결과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이 “평준화의 네 기사”가 소환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가장 온건한(?) 독재정권이라도 현대인의 정서에는 맞지 않고, 결국 사회 불안정을 일으켜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 온건한 방식이라고 보는 토지개혁이나 교육확대, 기술 개발도 신통치 않다고 보여 진다. 결국 불평등을 완화하는 동력이 미래에는 사실상 사라졌고, 세계화와 이민의 증가는 이전보다 불평등을 심화 시킬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세계화는 자본가들의 투자로 인하여 국가간의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였지만, 세계적인 임금 경쟁으로 인하여 국내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면서 전세계적으로 반세계화를 유발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적 평준화에 대한 전망은 빈약하고 불평등은 지속될 것이라고 어두운 전망을 하고 있다. 진짜로 불평등을 완화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답은 앞서 언급한 “토지개혁, 민주주의, 교육과 기술의 혁신, 경제발전” 이 모든 평화적인 방법을 이전보다 강력하게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4가지 모두 한번에 제대로 동작한 현대에 불평등이 완화되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토지개혁으로 대표되는 부의 강력한 재분배이다. 현대에는 이를 수정하여 자본 소득에 대한 재분배로 변경해야 한다. 경제 성장에 따른 과실이 서민들에게 떨어진다는 낙수효과는 전혀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 과실은 소수에게만 집중되었으니 누진세 개편과 보편적 복지로 불평등을 완화하여야 한다. 이런 상황을 국가와 사회가 만들지 않으니, 다들 암호화폐에 몰두하여 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하지 않았으면 암호화폐 거래는 과열이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고, 정부는 거래소 폐쇄라는 카드를 꺼낼 필요도 없었다. 결국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제도 내에서 불평등을 완화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야만 한다. 가만히 놔두면 인간의 본성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하여 제도를 만들어 내거나 이용할 것이다. “평준화의 네 기사”가 없이도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 할 수 있음을 보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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