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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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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재
댓글 0건 조회 5,687회 작성일 18-01-31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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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케너스 브래너 감독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은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초호화 열차인 오리엔트 특급열차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열차에 탑승해 있던 명탐정 에르큘 포와로가 피해자와 같은 객실 안에 있던 13명의 사람들 중 범인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죽임을 당한 라챗은 마피아를 상대로 사기를 벌이며 평소 살해 협박을 많이 받아온 인물이었다. 사건의 용의자 선상에 있는 13명의 인물들은 모두 마피아와 연관이 없으며 서로 꼬리를 무는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미궁에 빠진 이 사건의 결말부터 이야기 하자면 13명의 탑승객 모두 라쳇을 찔러서 살해한 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 라쳇이 살해한 아이의 가족이거나 그 가족과 이어진 자들이었고 그 불행한 사건 이후 그들의 삶이 처참하게 망가졌다. 하지만 그 어떤 권력도(사법권) 가해자 라쳇을 벌하지 못했고, 라쳇은 신의 심판도 받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부정한 방법으로 계속해서 부를 쌓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아갔다. 이를 지켜보며 상처를 안고 살던 사람들이 직접 라쳇을 살해하기로 결심하게 되면서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결국 사건을 풀어낸 탐정 포와로는 경찰에 신고할 것인가 아니면 사건을 덮을 것인가 고민하던 중 사건을 덮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인간의 영혼에 균열이 생기면 사람을 죽이게 되죠. 정의의 저울이 기울어 질 때도 있습니다. 불균형을 감당하는 법을 배워야겠지요. 이중에 살인자는 없습니다.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만 있을 뿐.”
       이 대사와 함께 사건을 덮는 주인공을 어떻게 보아야 할 지 나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13명의 승객의 심정을 이해하는 내 ‘감성’과 복수로 재생산된 살인 역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죄라는 내 ‘이성’ 사이에서 충돌이 발생한 것이다. 타인에 대한 가해는 상황과 배경에 따라 정상참작이 될 수는 있으나 덮고 갈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살면서 정의의 저울이 기울어졌다고 느낄 때가 많다. 때로 정의의 저울은 나쁜 사람들, 남을 괴롭혀 이득을 취하거나 큰 죄를 저지르고도 큰 소리 치며 사는 사람들, 그 밖의 용서받지 못할 사람들의 편으로 기울어져 있을 때가 있다. 그것을 볼 때면 이 세상에 정의가 있는지, 사람들이 바로 세우지 못하는 정의라면 신의 심판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나 의문이 들게 된다. 
       사법권에 의하거나 천벌을 받거나 그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았을 때, 라쳇의 악행으로 인해 삶이 망가진 13명의 용의자들처럼 복수심이 앞서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옳고 그름을 구분할 기준이 흐려지고 또 그 과정에서 본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직접 가해자들을 벌하거나 혹 그런 인간은 죽임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탐정 포와로처럼 상처받은 사람들의 편에 서서 잘못된 복수를 모른 척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라쳇이 잘못을 단죄 받지 않고 살아가는 바람에 원한을 사고 복수를 당했듯이 그 복수의 살인행위도 제대로 벌받지 않는다면 또 다른 복수를 부를 수 도 있다. 이렇게 끝없이 꼬리를 물게 될 복수의 악순환이 마땅한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누가 나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똑같이 갚아주는 것은 피해자가 복수행위로 인해 똑같이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만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영혼에 균열이 생겨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끝없는 복수의 꼬리를 자르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한 것 같다. 나를 괴롭힌 사람을 우리가 용서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 용서가 상대방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고 본인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를 불행에 빠지게 하고 치명적인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복수로 나를 더 망가뜨리기 보다는 상처받은 자신을 하루속히 치유하기 위해서 어렵더라도 용서를 결심하고 실행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복수에 대한 감성적인 결말의 영화 덕분인지 ‘정의’에 대해서 그리고 ‘용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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