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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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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4,921회 작성일 18-02-0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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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 솔루션

질문의 워딩을 바꾸자

-다니엘 카스트로 저-

 


     옛날에는 물놀이라 하면 그저 튜브를 타고 물위를 둥둥 떠다니거나 편을 나눠 물장구를 치는 장난에 불과했겠지만, 요즘은 물살을 아래로 힘차게 발사하는 장비를 착용하고 그 힘으로 하늘을 나는(비록 수면 몇 m에 불과하지만) 레저 활동까지 보편화가 되었다고 하니 현대 문명의 이기는 인류의 놀이문화까지 송두리째 바꿔 놨다. 하지만 얼마 전 이마저도 옛날 놀이라고 불리게 할 만한,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보드가 프랑스의 한 업체에 의해 개발됐다. 최대 시속 128 km, 상공 3,000 m까지 비행이 가능하다는 이 ‘날아라 슈퍼 보드’는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하늘을 누비는 인간의 오랜 꿈을 실현해주기에 충분한 듯 보였다. 이쯤 되면 누구나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 우리와 뭐가 다르기에 저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또 실현할까. 저 사람들은 타고난 것일까, 나와 차이가 뭘까.

 

     몇 년 전 미국에서 다니엘 카스트로라는 연쇄 창업가가 만든 ‘히든 솔루션’이라는 비밀스러운 팀이 하나 결성됐다. 인류의 역사에는 언제나 세상을 뒤집은 천재들이 존재했는데 만약 이들의 지능을 우리가 따라갈 수 없다면 이들의 사고방식이라도 따라 해보자는 것, 이것이 이 팀의 결성 목적이었다. 수년 간 연구가 계속됐고 이들이 밝혀낸 원칙 중 가장 간단하면서도 나의 뇌 깊숙한 곳을 자극한 것은 ‘질문의 워딩을 바꾸자’였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혁신적인 문제 해결 방식을 떠올리는 가장 쉬운 방법을 습관처럼 행했던 천재들의 원칙은 질문의 워딩을 바꾸는 것에서 출발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마차가 대중적인 이동 수단이던 시절 대부분의 마차 회사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마차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집중했다. 하지만 마차와는 상관없는 광산 기술자였던 한 남자는 ‘더 좋은 이동수단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결과 마차 회사들이 마차의 품질 개량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 가연성 엔진을 개발해 말을 없애 버렸다. 심지어 자동차가 길거리에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조차도 마차 회사들은 자동차가 부자들의 장난감일 뿐이라며 그들의 생각을 고집하다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들은 훨씬 유리한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마차 회사들이 멍청해 보이겠지만 이것이 바로 질문의 워딩이 갖는 힘이다. ‘더 좋은 마차’, ‘더 편한 마차’라는 표현에 갇히면 말이 사라지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떠올릴 수 없다. 하지만 마차의 본질적인 목적인 ‘이동’에 초점을 맞추면 자동으로 갈수는 없을까, 말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끌어도 될까, 말이 없어도 될까 등의 훨씬 다양하고 창의적인 관점으로 생각을 펼쳐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나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를 마주하면 무작정 창의적인 답을 내놓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천재들은 문제 자체를 다양한 표현법으로 바꾸어 본다. 이는 좋은 답을 내리기 전에 좋은 질문을 찾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단편적인 사실들을 새롭고 다른 방식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 같은 상황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소니는 워크맨과 디스크맨을 세상에 처음 선보이며 엄청난 성공을 거뒀지만 이미 성공한 제품을 그저 조금 더 효율적이고 좋게 만드는 일에 집중했고, 혁신적이었던 애플의 아이팟에 밀렸다. 이처럼 유능한 기업가들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전문가가 아니라 뻔히 보이는 것에 가려진 것들을 찾아내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에 말에 따르면 생각이 사물을 걸러내는데, 예를 들면 기억 속에서는 어디에 분명히 뒀던 물건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 버젓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설령 그게 바로 코앞이라도 말이다. 이는 육체적 눈이 바라볼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두뇌의 눈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고 말하는 육체적 눈과 입은 진리가 아니다. 무서운 것은 우리가 하는 말과 보는 사물을 은연중에 진리이고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다. 이로 인해 생각의 문은 닫히고 두뇌의 눈 역시 감기게 되는 것 같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은 진리가 아니며 진리의 근사치이다. 내가 계속 늘 행하던 방식으로 새로운 문제를 설명하고 받아들이며, 내가 항상 해왔던 말로만 해답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습관을 이제는 고쳐나가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은 관련성을 어떻게 볼까?

이러한 통찰은 눈 뒤에서, 두뇌에서 일어난다.

눈은 원자료가 거치는 도관에 불과하다.

통찰은 존재하지 않는 비논리적인 것들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상상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통찰은 두뇌의 눈으로 관련 없는 두 대상을 하나로 결합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물론 아는 것과 그것을 행하는 것은 다르다. 그럼에도 머릿속 생각 회로를 문제에 맞게 재배선 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행한다면 분명 천재는 아니라도 그들의 사고방식을 따라 남들에게 인정받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현재 속해있는 연구실 멤버들 모두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면 무작정 창의적인 대답을 내놓으려하기 전에 질문의 표현법을 바꾸려 노력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의 사고는 우리의 언어를 벗어나기 힘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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