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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영성 - 팀 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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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6,064회 작성일 17-11-07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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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는 인류의 역사를 크게 5가지 시대로 나눈다. 그 5가지 시대 중 첫번째 시대는 황금시대라고 불리우며, 그리스 인들이 이상향과 같이 여기는 천국과 같은 시기이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전까지 황금 시대의 인간들에게는 어떠한 부정적인 감정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먹을 것이 풍부하여 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은 그리스 인들에게 천국은 '할 일'이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 인들과 같이 일은 저주이고 일이 없는 것이 축복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들이 현대에도 많이 있다.

그러나 정말 일은 우리에게 저주로만 다가오는가? 만약 일이 그 자체로써 사람에게 삶의 만족을 쥐어주지 못한다면 일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그럴 때 일의 만족도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돈을 버는가에 달려있게 되며, 벌이가 적을 수록 사람은 그 일자리에 등을 돌리고 그 직업을 천하다 여기게 되어버린다. 결국 돈만 있다면 누구든 자신을 일을 그만 두고 가진 돈으로 자신의 만족을 채울 일을 찾아 떠나버릴 것이다. 그렇게 일은 즐거움의 족쇄가 되며, 기쁨을 얻기 위한 대가이자 생존을 담보로 건 저주가 된다.

위의 문단에서 언급 되었듯이 일이 삶의 저주가 되는 문제의 가장 큰 핵심은 일이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핵심을 간파하지 못하고 그저 일을 함을 통해 돈이나 빨리 벌어서 노년에서 여유를 부리는, 자신만의 '황금시대'를 이루는 것을 꿈꾸며 살아간다. 하지만 생기가 넘치고 열정이 살아있는 젊음의 시절을 노동에만 쏟아붇고 힘과 건강을 모두 잃은 노년의 시기에 황금시대를 누린다 한들 그 기쁨이 그리 클지, 그 인생이 그리 가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일하는 삶 속에서 기쁨이 있기 위해서는 일의 진정한 의미가 회복 되어야한다. 특히나 그리스도인이라며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개인의 행복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는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 물질과 생명, 그리고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라면, 일이라는 것 또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일터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일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먼저 우리는 하나님 그분이 먼저 일하셨고, 지금도 일하시는 분이심을 알아야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표현을 매우 좋아한다. 이는 세상 만사 돌아가는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고 그의 주권 아래에 만물이 운행된다는 의미를 내포하며 이는 신학적으로도 바르다. 하나님은 창조의 때부터 종말의 때까지 일하시고 또 일하신다. 창세기의 기자가 괜히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말을 히브리어에서 '노동'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멜라카'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이 아니다.

둘째로 일에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먼저 그 사람의 나이를 물음으로 그가 살아온 시간을 알고, 출신을 물음으로 그가 살아온 공간을 알며, 업을 물음으로 그가 살아온 방식을 알게 된다. 즉 일이라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한 사람이 이 땅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가 나타나는 정체성의 발현이 된다. 한 회사의 사장은 그 사장됨의 정체성이 있으며, 그와 같은 사장이 없으면 회사는 성장하지 않는다. 그 회사의 사원도 그 사원됨의 정체성이 있으며, 그와 같은 사원이 없으면 회사는 돌아가지 않는다. 심지어 그 회사의 청소부마저도 그 청소부됨의 정체성이 있으며, 청소부가 없으면 그 회사는 지저분한 쓰레기더미가 되어버린다. 결국 모든 일은 이 사회가 돌아가고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우며, 단 하나의 일이라도 사라진다면 모든 사람들의 삶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벌이가 조금 다르고 처우가 다르다 할지라도 직업에는 귀천 없고 모든 일은 소중하며, 모두가 일을 통해 서로 돕고 서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에게 일은 하나님의 창조에 참여하는 통로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면서 분명하게 '번성하라', '정복하라', '다스려라'와 같은 일을 명령하셨다. 다른 동물들이 단순히 생존하고 번식하는데에 그치는데 비해 인간은 주어진 세상의 틀 안에서 이들을 아름답게 가꾸고 발전시키어 나갈 의무가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6일 간의 창조를 통해 세상을 완성하셨지만, 인간을 통해 지속적인 창조가 일어나기를 바라셨다. 그렇게 하나님의 창조는 아담을 통해 동물들의 이름이 창작되는 것으로, 땅이 경작되고 개간되는 것으로, 그리고 그 자손들이 문화와 사회,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을 통해 드러나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 '일'은 그분과 함께하는 동행의 통로이자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2012년 내가 카이스트에 들어오면서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히던 고민이 있었다. 내가 앞으로 할 과학과 공학에 대한 공부과 과연 사람을 이롭게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을까하는 고민. 인터넷의 발달과 스마트폰의 발명은 다양한 형태의 범죄를 낳고 있었고, 사람들 간의 교류를 끊고 서로 더 고립시키는 것처럼 보였기에, 공학의 발전은 이 세상을 선하게 이끌기보다 악하게 이끄는 길로 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와서도 해결하지 못했던 이 고민을 나는 일과 영성을 읽으면서 해소할 수 있었다. 내가 공학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에 참여하고 그분의 지혜를 발견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닿는 순간 머리가 뻥 뚤리는 것과 같은 시원함을 체험할 수 있었다.

세상은 마치 보물이 숨겨져있는 땅과 같다. 분명 그 땅에는 보물이 모두 있기에 온전한 땅이다. 하지만 그 보물들을 얻기 위해서는 삽으로 땅을 파고 흙을 걷어내는 일을 해야한다. 보물을 하나 둘 찾을 때마다 마치 내가 그 보물을 만든 것처럼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은 이미 있던 보물을 내가 먼저 찾은 것일 뿐이다. 세상이라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인생의 보물 찾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은 기뻐하고 계실게 분명하다. 나도 나에게 주어진 전자공학이라는 땅에서, 보물과 같이 숨겨져있는 그분의 지혜를 찾아가는 여정을, 한걸음 한걸음 기쁘게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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