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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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우린 폭풍이 몰아치는 밤이면 바람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뜬눈으로 지샌다.
괴로운 생각들이 우릴 집어삼키고 바다가 바짝 다가와 음산한 숨을 내뿜으며,
우리 삶이 멈춰버린 몇 년 전의 그날 밤으로 우릴 끌고 가기 때문이지.
- 녹턴 3번째 이야기 '바다로 보낸 병' 중 -
바다. 바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낭만의 장소로 여겨진다. 어떤 이는 휘몰아치는 파도의 멜로디와 짠내나는 바닷바람이 주는 차갑고도 고요한 평안을 사랑하고, 다른 이는 거친 물살과 수많은 역경을 이기고 보물을 찾아 떠나는 바닷 사람들의 모험담을 사랑한다. 하지만 나에게 바다라는 단어는 그저 가슴 속 깊이 묻어두었던 슬픔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아픔이 될 뿐이다.
2011년 12월 22일, 니카라과 마나과 해안에서 나는 사랑하는 교회 형, 정준호 형을 잃었다. 늦은 밤 바닷가에서 파도를 타며 즐기던 우리들은 해안으로 급하게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 하나를 이기지 못하였고, 준호형은 우리를 뭍에 남겨둔채 돌아오지 못할 먼길을 떠나버렸다. 준호형의 장례식을 치룬 날부터 나는 바다를 두려워하게 되었고, 한동안 그 어떤 바닷가에도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준호형을 보내고 3년의 시간이 지나 바다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차차 가실 무렵 바다는 나에게 다시 큰 아픔을 주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을 뉴스로 처음 접했을 때, 이상하게도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고, 숨이 가빠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티비를 통해 구조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도 (그 보도가 오보였음을 알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도무지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고, 그날 밤 나는 준호형과 보낸 마지막 날을 떠올리면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다. 내가 그 밤 느꼈던 불안함은 결국 다음날 현실에서 드러나고 말았고, 나는 다시 바다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3년이 지나 나는 녹턴을 읽게 되었다.
녹턴은 바다를 테마로 한 네편의 단편 소설들을 모은 책이다. 녹턴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난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직접 해난 사고를 겪은 사람도 있고, 현실인지 환각인지 분명치 않은 수수께끼 같은 난파 현장을 목격한 사람도 있고, 폭풍우로 가족을 잃은 사람도 있다. 이들이 '남겨진자'로써 겪는 고통과 트라우마의 이야기는 친한 형을 바다에서 잃었던 나의 모습과 세월호 사건을 통해 고통 받았던 수많은 유가족들이 생각나게 했고, 이에 더욱 마음이 애저리듯 아프면서도 등장인물들에 공감하며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녹턴을 다 읽고, 한번 더 읽으면서 등장인물이 겪는 고통이 단순히 난파에 의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겪는 고통은 틀림없이 난파와 관계가 있지만, 조금만 뜯어보면 난파를 당하기 전부터 이미 그들은 자기들 인생에 튼튼히 닻을 내리지 못했음을 알 수 있었다. 침몰한 여객선에서 살아남은 후 뿌리를 뽑힌 듯한 나날을 보내지만 어짜피 그 전부터 '빌린 삶'을 삼려 뭍을 떠돌았던 연주자 (페리의 밤), 가족도 헤아려주지 못하는 외로움 속에서 집보다 오히려 등대가 편안한 등대지기 (등댓불), 폭풍에 휘말려 죽은 아들에게 쓴 편지를 해마다 바다로 던지지만 실은 일찌감치 아들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던 노부부 (바다로 보낸 병), 바다 한복판에서 동생을 잃지만 그로써 바다를 통해서만 이어졌던 뒤틀린 부자 관계와 형제 관계에서 놓여나는 사내 (혼자라면). 그들은 다들 뭍에 내리지 못한채 마치 외로운 섬처럼 바다에 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남겨진 자'들이 겪는 최고의 고통은 단순히 사랑하던 사람을 다시 보지 못한다는 사실보다는 그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후회라는 점이다. 만약 등장인물들이 떠난 자들과의 관계 속에 닻을 내렸더라면 - 등대지기가 가족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노부부가 아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으며, 아버지와 동생의 관계가 회복되었다면 - 남겨진 그들이 겪는 슬픔이 그 정도로 처절하고 아프지는 않지 않았을까. 아마 준호형의 죽음이 내게 잠시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도 내가 파도로 떠내려가는 그를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일을 후회해서고, 세월호가 전 국민에게 크나 큰 슬픔으로 남았던 것도 가라앉는 단원고 학생들을 바라보면서도 선장의 어이없는 대체와, 제도의 미약함, 무책임한 정치권에 의해 그들을 구하지 못했던것에 대한 후회로 인함이 아닌가 싶다.
더 이상 후회한다 한들 바뀔 것은 없다. 분을 내고 원망을 한다고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어찌어찌 짠내나는 바다에서의 파도를 피한다 할지라고, 알 수 없는 때에 급작스럽게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파도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주어진 가족, 교회 친구들, 교수님, 선배들, 동료들, 그리고 이웃들을 사랑해야겠다. 내일 그들이 떠난다 할지라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사랑해야겠다. 늘상 익숙함에 속아 나에게 주어진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지를 잊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이 나라에 더이상 후회스러운 죽음이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확히 사건의 경위를 파악해서 다시는 이런 슬픔 가운데 국민들이 던져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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