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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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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재
댓글 0건 조회 6,114회 작성일 17-12-0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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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저

      아미르는 성공한 사업가 아버지 덕분에 고향인 아프가니스탄에서 부유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소련의 침공 이후 아프간은 군국주의가 무너지고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무자비한 학살과 만행이 자행되었고 아미르는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나 이제는 가정을 이루고 작가로서 명성을 얻으며 살고 있는 아미르는 라힘 칸의 전화를 받는다. 라힘 칸은 아미르를 누구보다 아끼고 인정해 주었던, 어린 시절 가장 존경했던 아버지의 친구였다. 라힘 칸은 아미르에게 아프간으로 돌아오라며 ‘다시 착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내전이 끊이지 않는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지만 아미르는 ‘속죄하지 못한 죄들이 가득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떠난다. 
      아미르의 가문은 아프가니스탄의 지배계층이자 기득권 계급이었던 파쉬툰인, 수니파에 속했다. 그의 집에는 인종과 계급차별이 심했던 아프간에서 하층계급으로 천대받던 하자라인 하인, 알리가 있었고 아미르는 하인의 아들인 하산과 함께 자랐다. 하산은 신분도 미천했지만 중국 인형처럼 생긴 얼굴에 언청이로 태어나 집을 나서기만 하면 놀림감이 되었다. 그러나 아미르와 하산은 형제처럼 또한 둘도 없는 친구로 서로 의지하고 보호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미르의 아버지 바바 역시 둘을 차별 없이 대하여 어디든 아미르와 하산을 함께 데리고 다니며 챙겼다. 하산에게도 생일이면 어김 없이 선물을 주었으며 언청이 수술을 위해 성형외과 의사를 데려오기도 했다.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이 하산에게 나누어 지는 것에 대해 아미르는 질투와 불편함을 느꼈다. 바바는 아미르에게 무심하고 냉정한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아미르는 바바가 자신을 못마땅히 여기고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겨울이면 해마다 연날리기 대회가 열렸다. 연을 날려 상대의 줄을 끊는 연싸움의 최후 우승자 그리고 그 해 우승자가 떨어뜨린 마지막 연을 쫓아 차지하는 것에 모두 열광했다. 아미르가 12살이던 겨울, 하산과 둘이 한 조가 되어 아미르는 마침내 우승자가 되었고 떨어지는 연의 방향과 위치를 천부적으로 파악하는 하산은 마지막 연을 쫓아 달려갔다. ‘도련님을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라고 말하며.. 그리나 그는 외딴 골목에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동네 불량배였던 아세프 일당에게 잡혀 몹쓸 짓을 당했다. 뒤늦게 하산을 찾아 나섰던 아미르가 그 광경을 목격하지만 맞설 용기가 없어 외면했다. 연날리기 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아버지의 자랑스런 아들로 12년 생애의 최고 순간을 누렸으나 동시에 하산에 대한 죄책감과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분노와 후회로 괴로워하던 아미르는 이 일로 하산과의 12년 관계를 무너뜨리게 되었다. 
      라힘 칸의 전화로 다시 찾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미르는 아버지 바바가 생전에 밝히지 않았던 진실, 하산이 이복 동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하산이 탈레반에 의해 죽고 그들의 외아들 소랍은 적진에 남겨졌음을 알게 된다. 아미르는 하산에게 속죄할 기회라 생각하고 목숨을 건 사투 끝에 소랍을 구해낸다. 이제 아미르가 소랍에게 말한다. ‘널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이 소설의 매력은 유년의 애피소드를 통한 사람의 성장소설과 같은 단순함에서 출발해 결국 선행을 통한 인간 구원, 전쟁의 주는 피폐함과 같은 묵직한 주제를 던져 주는 것에 있다. 아미르와 하산의 성장기가 그려지는 중반부까지는 어린 시절 함께 자라며 소소한 일상과 놀이를 같이 한 친구와의 우정이 정겹다. 그러나 그 사회에 존재했던 인종과 신분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는 한계성과 이복 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연민을 이해 못하며 질투하게 되는 심리, 그 때문에 불필요하게 화내고 비겁해지는 심리적 갈등과 내면 의식의 흐름이 공감을 자아냈다. 사건과 경험은 다를 지라도 누구라도 비슷한 감정을 가지며 성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인간의 나약한 모습, 심리를 잘 그려낸 덕분이라 생각된다. 
      어린 시절의 과오 때문에 죄책감과 같은 마음의 짐을 갖고 살던 아미르가 죄를 선행으로 갚는 과정은 무척 드라마틱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인 신뢰와 충정을 보였던 하산처럼 그도 사지에서 목숨을 걸고 하산의 아들을 구출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내면의 고통과 결핍에서도 해방되는 자기구원에 이르게 된다. 내전으로 얼룩진 나라, 악행이 합리화 되는 전쟁 중에서도 선행은 또 다른 선을 이끌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 준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올해에도 내전으로 5천여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났고 이는 UN이 사상자 기록을 시작한 이래 최악이라고 한다. 뉴스를 통해 듣는 이슬람의 소식은 언제나 파괴와 살상으로 잔혹함의 극치이다. 이제 명분조차 희미해 보여 인종과 종교를 내세운 기계적, 연쇄적인 복수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론 열강의 국익에 이래저래 시달리는 희생재물 같기도 하다. 사람이 수없이 죽어가고 산 사람들은 치유될 수 없는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전쟁이 타성이 되어버리는 지역에 대해서 우리는 그 아픔에도 둔감해지는 것 같다.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이 소설의 주인공 아미르처럼 아프가니스탄 태생으로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후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한 배경을 갖고 있다. 의사가 본업이고 틈나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데 덕분에 작가의 직, 간접 체험에서 나오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이슬람 문화의 단면을 잘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작가가 고향인 아프가니스탄의 불행과 원치 않는 전쟁의 희생자인 민간인들의 실상을 전하고자 했다면 성공적이었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거리감이 컸던 아프간과 그 일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전과는 다른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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