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 불명 – 캐서린 크레스만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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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취인 불명 – 캐서린 크레스만 테일러
이규섭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라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있다.
수취인 불명은 두 사람이 주고 받은 19통의 편지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 막스 아이젠슈타인과 독일로 건너간 마틴 슐츠는 미국에서 함께 사업을 하던 막역한 사이의 친구였다. 편지는 마틴이 독일로 건너가면서 시작된다. 1932년 12월 10일에 받게되는 마틴의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교양있는 사람이며, 막스에 대한 그의 애정이 어느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시기가 말해주듯 소설이 전개되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마틴이 히틀러의 극단적인 가치관에 매료되면서 파탄이 나게 된다. 두 사람이 보내는 편지의 내용이 변해가는 만큼 두 사람의 모습도, 그 관계도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젤은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녀는 막스의 여동생이며, 첫 편지에서 드러나듯 과거 마틴의 연인이었다. 지금은 엘자와 결혼한 마틴이지만 그리젤이 경력을 위해 유럽으로 건너가 연극을 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자, 절친한 친구의 여동생이 타지에서 외롭지 않게 언제든 온 가족이 환대해 줄 것이라며 마틴을 안심시킨다.
1933년 1월 21자 막스의 편지에서 독일에 히틀러가 영향력을 행세하기 시작했음이 드러난다. 유태인인 막스는 머나먼 타지에서의 잔혹한 소문들의 실체를 두려워하며 여동생 그리젤의 신변을 걱정하며 마틴의 답장만 기다린다. 마틴은 그 답장에서 히틀러라는 사람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제기하지만 독일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며, 이에 대해 희망을 품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틴의 걱정보다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가 더 큰 듯한 마틴의 모습은 이제 예전과 달라지기 시작한다.
마틴의 변화가 시작되는 두 번째 답신에서는 1차 대전 후 14년간 독일이 얼마나 어려운 시기를 보내왔는지 전해진다. 그렇기에 그 고난의 종지부를 찍는 듯한 새로운 지도자를 향한 독일 사회의 흥분.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가 불러온 독일사회의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틴 역시 유태인을 향해 행해지는 여러 사건들에 대해 문제점을 인식하나 그는 새로운 진보를 위한 ‘작은 문제들’로 치부한다. 이미 마틴은 공무원이 되면서 다른 모든 공무원들과 함께 히틀러의 국가사회당에 입당한 상태였다. 그는 독일 사회의 분위기에 휩쓸렸고, 이미 마틴과 소통하고 있지 않았다. 이전처럼 여러 미사여구로 열심히 마틴에 대해 친애를 표하고 있으나 불안해 하는 마틴의 마음을 공감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올라탄 스스로의 상황에 신나 있을 뿐이었다.
검열이 시작된 1933년 7월 9일의 편지에서 마틴은 완전히 나치의 색으로 물들었다. 특유의 교양있는 태도는 남아 있지만 그는 이미 독일의 정치적 방향에 온전히 동조하고 있다. 유대인이 희생되는 상황에 대한 그의 설명은 경악스러운데. 그는 여전히 유대인 학살이 더 커다란 일을 위한 부수적 문제일 뿐이며, 수백만의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얼마간의 사람들이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것도 유대인인 막스를 상대로.
무엇보다도 당신은 유대인이며, 당신민족을 위해 울부짖겠죠. 이 점은 이해합니다. 그것이 유대인의 특징이니까요. 당신들은 한탄은 하지만 맞서 싸울만큼 용감하지는 않죠. 대학살이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미 그는 유대인을 탄압하는 히틀러의 왜곡된 사상에 녹아 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막스를 향한 우정은 이제 허울뿐이다.
막스는 마틴의 변화에 당황했다. 그러나 다시금 마틴을 믿으며, 이 모든 메시지가 검열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 않느냐고 재차 묻는다. 마틴은 단호하게 아니라 답하며 자신의 사상이 달라졌음을 강력히 주장하고 이는 막스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 와중에 어리석은 그리젤은 무대에 오르기 위해 베를린으로 향하고 막스는 마틴에게 그리젤의 안위를 부탁한다. 그러나 지난번 편지로 자유주의자인 막스를 비판하며 연락 단절을 선언한 마틴은 답을 주지 않고, 불안에 찬 막스의 일방적인 편지가 이어진다.
몇 번의 편지 끝에 마침내 받게 된 마틴의 편지는 냉혹하기 그지 없다. 하일 히틀러로 시작하는 편지는 그리젤의 죽음을 ‘보고’하는 편지였다. 막스를 향한 배려와 따뜻한 시선은 없이 사무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이 새로운 편지에서 마틴은 그리젤이 찾아왔음에도 거절하고 그녀가 돌격대에게 잡혀 죽는 것을 방관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위해 그것이 어쩔수 없는 일임을 굳이 설명하면서 이 사실을 가감없이 막스에게 전한다. 이 편지에서 마저 마지막 문구는 친구를 향한 애도의 메시지가 아니라 새로운 독일에 대한 기대를 담은 것이었다.
막스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유대인임이 드러나는 아이젠슈타인이라는 성으로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특정 미술품을 준비해 달라는 메시지를 담아 연달아 편지를 보내게 된다. 미술품의 리스트를 그것도 사이즈와 색깔등으로 정보를 표시하는 방식으로 전달하여 보낸 이 편지들은 막스가 마지막에 일부러 편지를 잘못된 주소지로 보내는 실수를 저질르는 것으로 마틴에게 유대인과 암호로 연락중이라는 누명을 씌우게 된다. 어떤 연락에도 답을 하지 않던 마틴은 이제와 막스에게 우정을 빌미로 정을 호소하며 막스에게 그만두라는 편지를 보낸다. 막스의 편지는 멈추지 않고, 결국 마지막 편지를 기점으로 두 사람 막스는 같은 유형의 편지를 계속 보낸다.
마틴의 최후가 인과응보라고 말하기에 이러한 결말은 무언가 찝찝한 기분이 든다. 막스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마틴과 막스의 입장이 반대였다면, 막스는 마틴과 다른 선택을 할 법한 사람이었을까. 마틴의 변화와 냉혹한 태도가 단지 그의 인간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치가 점령한 분위기 속에서 그 문제점을 방관하지 않았던 자들은 분명 비범한 사람들이다. 공학적인 측면에서 그들과 방관자들 사이의 차이점을 통해 어떤 인간성의 개선점이라 할만한 것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마틴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의 교양과 품격, 성격과 사상에 결함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이 공개된 193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히틀러가 등장한 뒤 미국의 분위기는 마치 강건너 불구경 하는 듯 했다고 한다. 2차 대전 종식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를 생각했을 때, 나치와 독일 전반에 퍼진 왜곡된 사상이 얼마나 두려운 것이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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