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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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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6,053회 작성일 17-12-1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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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전세계적으로 페미니즘 열풍이 한창이다.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사회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근본적인 목표를 가진 페미니즘 사상은, 유명 인사들의 지지와 다수 여성들의 열렬한 환호를 등에 엎고 변해가는 사회 구조의 중요한 패러다임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는 모양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가인 조남주 씨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씨’는 여러 방면으로 소외 받고 차별 받아왔던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에 대한 민낯을 김지영씨라는 평범한 한 대한민국 여자의 인생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김지영 씨는 82년생, 한국나이로 34살이다. 건실한 남편과 자녀들과 함께 한국의 여느 평범한 주부와 같이 생활하고 있다. 약간의 불안증세와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것도 대한민국의 평범한 주부들과 다를 바 없다. 이렇듯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던 김지영 씨에게 어느 날부터, 갑자기 지금까지 만났던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몸에 빙의한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김지영씨는 태어날 때부터 환영을 받으며 태어나지는 못했다. 그녀가 가진 성별이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후 태어난 늦둥이 남자동생은 온 집안, 특히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시간이 흘러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김지영씨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교복의 옷 매무새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다’며 꾸지람을 듣기 일쑤였다. 물론, 남학생들이 체육복을 입고 등교하는 것에 대해서 나무라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런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 김지영 씨는 대항하고 싶었지만, ‘여자가 조심 해야지’ 라는 반복적인 대꾸 앞에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갔다.


여자라는 이유로 불합리하게 여러 번 취업의 문에서 실패를 겪고 겨우 들어간 회사에서도 김지영 씨는 다시 한 번 좌절을 맞볼 수 밖에 없었다. 원하는 부서가 생겼을 때 동료 남자들보다 자신이 훨씬 더 적합하고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힘든 일은 남자가 해야 한다는 논리로 가지 못했을 때 김지영 씨는 좌절했고, 회사에서 임신으로 출근 시간을 한시간 늦춰 주자 ‘특혜’받는다고 조롱하는 남자 동료에 말에 화가 나 “늦게 출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후 너무 힘든 출퇴근과 후배의 권리를 빼앗는 것 같은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결국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둔 김지영 씨는 출산 후 몇 개월 만에 겨우 집을 나와 1500원 짜리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오랜만에 맛본 맛있는 커피 맛의 여운도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직장인들의 대화가 귀에 들려오며 산산조각 나게 된다. ‘나도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커피나 마시면서 돌아다니고 싶다… 맘충 팔자가 상팔자야… 한국 여자랑은 결혼 안 하려고…'. 아직 뜨거운 커피를 손등에 왈칵왈칵 쏟으며 집으로 달려가 멍하니 있다가, 남편에게 하소연하듯 한 말은, 가히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 커피 1500원 이었어… (중략) 오빠, 나 1500원 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 아니라 1500만 원 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무언가 스토리가 더 있을 것 같았던 이 소설은, 이렇게 한 여자의 불운한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 후 찜찜한 여운을 남기고 끝나버린다. 아마 책의 초반에 여러 사람이 김지영 씨에게 빙의 된 것 같은 설정은, 주변 상황에 대해 눈을 남아 버리고 입을 닫아 버려 자신의 의견을 제정신으로는 밖으로 내세울 수 없는 김지영씨의 모습을 표현한 것일 것이다. 말을 하고 싶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둘 수 밖에 없는 사회의 시선, 그런 시선을 항상 따갑게 느끼고 사는 우리네 대한민국 여성들, 이것이 바로 작가가 그려내고 싶어했던 모습이었 던 것 같다.


나는 1989년도에, 3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자식을 많이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아들’을 낳기 위해 셋째를 보신 우리 어머니는 그 시대에 얼마 안되는 ‘대학 나온 여자’ 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교사 월급으로는 세 명의 자식을 키우기에 턱없이 부족했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수 년간 학습지와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귀한 셋째 남자아이였던 나는 김지영씨의 동생처럼 온 가족의, 특히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고, 그와는 대조되게 둘째 누나는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관심에서 조금은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씨를 보는 내내 무언가 익숙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녀들을 위해 고고학자라는 꿈을 희생하신 어머니, 항상 큰누나와 방을 같이 쓰고 큰누나가 입던 옷을 물려받던, 그리고 여자는 교사가 최고라며 사범대에 가기를 강요 받았던 우리 작은누나의 모습이 김지영씨의 어머니와, 그리고 김지영 씨에 투영되어 보여 책을 읽다가 마음이 울컥해진 부분들도 몇몇 있었다.


책 속에서 잘 표현되어 있듯이,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와 누나들의 삶을 지켜보아 온 결과, 우리나라 사회 전반과 구조에는 아직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해 있다. 이러한 차별은 당연히 없어져야 하는 것이 옳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 82년생 김지영씨의 어머니의 삶이 되풀이 되는 것은 변화하며 진보되어 하는 사회 구조가 필연히 막아야 하는 것이다. 여성들도 당연히 자신들의 삶을 자유롭게 펼쳐 나갈 권리가 있으며, 그러한 권리 속에서 남자들과 객관적으로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면서 연민과 지지에 대한 마음이 듦과 동시에, 무언가 한편에서는 계속에서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성의 인권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남성이 가해자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김지영 씨 인생 중간중간의 여러 에피소드들과 내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납득이 안되는 사상들과 행동들을 하는 이상한 남자들을 보편적인 남자들의 모습으로 그려 놓은 모습들은 여성 인권 신장이 덜 되었다는 것을 표현하거나 사회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포하기 보다는 독자들로 하여금 ‘남성 혐오’에 대한 시선을 심어 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또한, 너무도 불쌍하게만 비춰진 평범한 여성의 모습에서, 지금에 만족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어머니와 같이 후회없이 인생을 살아온 여성들을 ‘단지 너무 불쌍한 사람으로만 묘사한 것이 아닌가, 적게는 30년, 많게는 80년의 인생을 후회없이 살아온 그들은 이 책을 보고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참 페미니즘이 여러 사람의 입에서 떠돌 때, 페미니즘이 무엇인가 하고 인터넷을 검색해 본 기억이 있다. 그 때 감명 깊게 본 한 글이 있었는데, 어떤 저명한 외국인 페미니스트가 쓴 책을 요약한 글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여성들은 안타깝게도 차별 받는게 당연시하게 여겨져 왔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책임을 남자에게 돌리고 남자들에게 적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의 동등한 대우, 그리고 자유를 위해서 남자와 여자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나라에서의 페미니즘은 이러한 방향과는 조금 어긋나게, 여자와 남자라는 성별에 명확한 선을 긋고, 상대방에 대한 적대심을 표출하는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 듯 하다.


이러한 극단적인 선 긋기는, 안타깝게도 지난 몇 천년간 이어져 왔던 성별에 초점을 맞춘 인류 역사에 차별에 대한 의식과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평범한 주부의 삶을 만족스럽게 사는 여성들이 있듯이, 여성적이고 섬세하며 아이 돌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남성들이 있듯이, 개인의 삶 성별이라는 단어로 선을 긋기에는 너무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차별에 대한 문제를 단순히 남자 혹은 여자의 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우리 사회가 각 개인의 성장과 행복에 초점을 맞추어 객관적이고 합당한 대우와 인식을 제공함으로써 모두가 차별 않는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이 궁극적인 페미니즘의 목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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