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자전거 여행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4,824회 작성일 18-01-14 15:18

본문

자전거 여행

-김훈 저-

 


     내 아버지는 어렸을 때 또래 친구들 보다 키가 월등히 컸다. 그 때문인지 중학교 담임선생님은 아버지께 농구를 추천하셨고 곧잘 하셔서 할머니에게 전국 대회 우승 트로피까지 안겨드렸었다고 한다. 일찍이 운동에 소질과 취미가 있으셨던 아버지 덕에 나는 어릴 때 갖가지 운동 안 해본 것이 없다. 내가 5살쯤이었을까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는 ‘신이 나서 뒤를 돌아보니 어느 샌가 아버지는 손을 놓으시고 먼발치에서 나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계셨다’는 다소 상투적인 이미지가 딱 내 얘기였다. 뒤에서 잡아주시던 아버지의 양손을 5살 때부터 이미 놓을 수 있었던 나는 또래들이 아무리 세발자전거로 끙끙대며 쫓아와도 따라잡을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생생한 아버지와의 추억, 귀여운 우월감과 같은 기억들로 인해서인지 나는 아직도 자전거를 좋아한다.

 

     지금 나에게 자전거는 일탈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타면 어수선하고 소란해도 놀랍도록 일관되게 맞물려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빛줄기를 뻗칠 수 있다. 지금 날씨에는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면 바람에 맞닿는 피부가 곧장 얼어붙을 것만 같이 차디차지만 이상하게도 심장만은 나머지 신체부위들의 온기를 독차지 한 듯이 뜨겁게 불타오른다. 달리다 보면 터질듯한 다리 근육과 밝은 내 자전거의 전조등에만 쏠려있던 내 관심은 이내 반대편 멀리서 달려오는 또 다른 작은 불빛으로 쏠린다. 남자일지 여자일지, 아이일지 어른일지 아니면 어르신일지, 어르신이라면 지금 날씨가 추우시지는 않으실지, 직업은 무엇일지… 직장에서, 연구실에서 나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이토록 깊이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던가 싶다.

 

     어째보면 나는 다소 무책임하게도 일상을 등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던 마음을 그나마 자전거로 해소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소속된 집단에서 혼자만 동떨어져 나가는 것은 두렵고 무섭다. 혼자가 되었을 때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앞으로 닥칠 예기치 못한 일들에 대해 대책 전무한 내 스스로가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김훈의 ‘자전거여행’은 나에게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선언을 하는 듯 했다. 몸은 비록 소속되어 있을지언정 마음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나는 진보했노라, 행복했노라, 부유했노라 외쳤던 내가 부끄럽고 동시에 속상했다.

 

     그가 자전거가 타고 싶어 전국 산천을 여행한 것인지 아니면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자전거를 타기 좋은 곳들을 눈여겨 봐두었다가 이내 자전거로 그곳들을 돌아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자전거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과 공간 속으로 스며들 수 있는 완벽한 매개체라는 것이다. 그와 동행하여 나 또한 그들 삶의 행복, 슬픔, 씁쓸함에 오롯이 젖어들어 갈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자동차를 탄 채로 임실군 장산마을의 아이들과 첫 인사를 나눴다면 절대 내놓지 않았을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은 내가 직접 보지 않았지만 머릿속으로 충분히 자세하게 전달되었다. 그 아이들은 딱히 꾸미지 않았고 볕에 있는 그대로 그을렸음에도 외려 아이답고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철 들지 않은 게 아니었다. ‘밥차’의 등장과 함께 알아서 제 할 일을 찾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며 어떠한 가르침이 이들에게 필요할까 했다. 복잡한 수식에 익숙해진다거나 영어 단어 몇 개를 더 외우는 것보다 더 값진 배움이 아이들의 일상에 깃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오롯이 그들의 즐거운 일상에 속해 있었으며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주변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녔을까. 충분히 쉬고 놀고 뛰지 못하는 도시의 대부분 아이들에게 마음을 다해 현실을 받아들이고 즐기라 하는 것은 어른들의 욕심일 수 있다.

 

     같은 순간 같은 장소에 함께 있더라도 생각은 천차만별인 게 인간이다. 다만 이 생각이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되느냐 마냐는 마음을 어디에 속하게 할 것인지가 결정하는 듯하다. 김훈은 새로운 여행지로 가는 자전거 길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쇄신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 흘러오고 흘러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현재의 몸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뒤에서 잡아주는 부모님의 양손이 더 이상 필요 없는 두 발 자전거를 타고 혼자 여행지들을 누비고 있다. 도착한 낯선 곳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삶속에 녹아들어 몸과 마음을 오롯이 젖게 하며 행복을 찾되 씁쓸함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 또한 그들의 삶이자 곧 내 삶의 피해선 안 될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다음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에는 구르는 바퀴 위에서 낡은 시간의 낡은 몸을 놓아주고 열린 현재의 몸으로 다음 일과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다할 준비를 한다.’ 자동차를 타고 재빠르게 인생의 길을 달리면 누구보다 일찍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주변 풍경에 소홀해지고 사람들의 진심을 끌어내기에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나는 이제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려 한다. 좁은 비포장 농로에서는 잠시 자전거에서 내려 걷기도 하고 뻥 뚫린 곳에서는 힘차게 페달을 구르며 나아가 보려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