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진시황본기 – 사마천, 김영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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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진시황본기 – 사마천, 김영수 역
“진왕이 천하에 대한 뜻을 이루고 나면 천하가 모두 그의 노예가 될 것이다. 그와는 오래 교류할 수 없다.”
진시황본기 [秦始皇本紀] - 울료의 말.
대한민국의 주변 4강은 누구나 알 듯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이다. 그중에서 가장 가깝고 영향력이 큰 나라는 중국이 아닐 수 없다. 최근들어 중국에서 열린 19차 전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본인의 권력을 공고히 하면서 집단지도체제에서 독재체제로 전환에 성공했다. 공산당 일당독재위에 주석 독재체제를 갖춘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위상을 마오쩌둥의 위상과 동일시하면서, 마오쩌둥의 ‘마오주의’에 이어서 시진핑 본인의 사상이 담긴 ‘시진핑 주의’를 공산당의 이념으로 채택하였다. 현재 중국의 최고권력자가 된 시진핑이 롤모델로 삼은 군주는 청나라의 옹정제이다. 그리고 본인이 동일시만 마오쩌둥이 가장 높게 평가한 군주는 그 유명한 진시황제가 되시겠다.
여기서 드러나는 시진핑의 속내는 이렇다. “옹정제처럼 부패를 때려잡아 내부 단속을 철저하게하고, 국가적인 역량을 크게 키우겠다. 이렇게 키워진 역량으로 진시황의 전국통일에 버금가는 위업을 달성하여 중화굴기(中華崛起)를 하겠다. 이를 위하여 주변 국가들을 철저히 단속하여 친중국가로 만들어 미국이 아시아를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 정말 중화국가다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본인들이 최고가 되겠다는 자신감, 하지만 아직 미국을 넘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아래 주변국을 친중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전략성과 인내심, 그리고 큰 덩치를 바탕으로 주변국에게 함부로 행동하는 오만함. 하는 행동이 통일중국왕조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하고 주변으로 발산하던 시절과 다를바가 없다. 진(秦)-한(漢) 시대, 수(隋)-당(唐) 시대, 명(明)-청(淸) 시대. 이 6개 왕조 시절이 주변국으로 힘을 뻗어 나가 세계제국으로 군림하던 시대이다. 그리고 최초의 통일 중국왕조를 탄생시킨 장본인은 진나라의 31대왕 영정이다.
진(秦)나라 이전에 상(商)나라, 주(周)나라가 중원에서 군림하고 있었으나, 주변에 제후국을 두면서 우위를 인정받은 일종의 봉건국가였지 통일국가는 아니었다. 반면 진나라는 군현제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를 표방하였다. 도량형을 통일하고 전국을 36개군으로 나누어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하였다. 비록 2세 황제 시절에 각지의 반란으로 국가가 공중분해 되었으나, 통일왕조의 중앙집권적인 성격은 유방의 한(漢)나라에게 그대로 계승되면서 동아시아의 국가적 정체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사상적 기반은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중 하나인 법가(法家)에 진시황이 크게 매료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신하도 국민도 모두 군주 하나를 위한 부속품이며, 이를 일사불란하게 제어할 수 있는건 법률에 기반한 엄격한 통제가 필수불가결이다. 여기서 말하는 통제란 단순한 행동의 통제가 아닌 인간의 생각을 통제한다는 의미이다. 군주의 말은 법이고, 신민들은 모두 이를 의심없이 따라야 한다. 이렇게 축적된 힘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주변국을 복속하여 만대(萬代)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하겠다.
소름 돋을 정도로 시진핑의 국가에 대한 사상이 진시황이 표방한 것과 다를바 없어 보인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공산당이라는 도구로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군현제로 전국을 통제하려던 것과 똑같다. 중국의 국민들뿐만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도 공산당 강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사상을 통제하여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여 철저히 부속품으로 쓰겠다는 의미이다. 필요하다면 분서갱유처럼 불손한 사상을 가진 자들은 체포하여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겠다. 이는 법가에서도 가장 엄격한 상앙(진시황 이전 6대조 효공 시절의 재상)의 사상과 같다. 상앙이 주도한 변법으로 국가 체질을 개선하여 전국시대 최강국으로 올라선 진나라이다. 이처럼 체질을 본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국정운영을 하려는 시진핑의 생각은 상앙에서부터 이어진 진시황의 사상과 다를바가 없다. 그리고 넘치는 힘을 바탕으로 주변국에 손을 뻗어 친중화시켜 최강대국 미국으로부터 중국을 보호하고 새로운 패권을 만들어 천년만년 번영하겠다는 것이 시진핑이 생각하는 중국의 계획이다. 주변국 입장에서는 이렇게 골치아픈 상황은 없을 것이다.
마침 시진핑 본인이 이끄는 중국의 상황도 진시황이 즉위하고 권력을 잡은 진나라의 상황과 아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사실 중에 하나가 진시황이 통일이라는 아주 힘겨운 위업을 달성했다고 알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앞서 언급한 상앙의 변법으로 국력이 크게 신장하였고, 넘쳐나는 국력으로 진시황의 증조부인 소양왕이 주변국을 침공-병탄하면서 천하의 절반을 제패한 것이 바탕이 되었다. 즉, 쉽게 말해서 진시황은 선조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것이다. 거기에 상국으로서 실세로 군림하던 여불위를 실각시키고 본인이 직접통치까지 실행한 것은 덤이다. 마오쩌둥이 대장정으로 국민당을 축출하고 통일현대중국을 만들었고,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으로 경제를 크게 신장시켰다. 시진핑은 이를 이어받아서 완전한 굴기를 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 필요한 것은 자신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일인독재체제이고, 이를 실행하는데 방해가 될 장쩌민의 상하이방을 하나 둘씩 숙청한 것은 덤이다.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물론 국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 측면에서 다된 밥에 숟가락 얹어서 마무리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통일제국을 만든 진시황이 말년에 영생과 불멸에 집착하여 제국을 망친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시진핑은 진시황같은 위업을 달성하고, 옹정제같은 내실을 다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본기 끝에서 사마천은 한나라의 유명한 학자인 가생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
“진시황은 자신에게 만족하여 남에게 묻지도 않고 잘못을 범해도 고치지 않았다. 그 당시 세상에 깊게 생각하여 변화를 아는 선비가 없지는 않았으나 감히 나서 충성으로 잘못을 바로 잡으려 하지 못했던 것은 진의 습속에 꺼리고 기피하는 금기가 많아 충정어린 말이 입에서 나오기도 전에 몸이 죽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하의 선비들은 귀를 기울여 듣기만 하고, 다리를 겹친 채 서서는 입을 닫고 아무 말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때문에 충신은 감히 직언하지 않고 지혜로운 선비는 감히 계책을 내지 않으니 천하가 어지러워도 나쁜 일이 위로 알려지지 못했던 것이다. 주나라 선왕은 위아래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상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공․경․대부․사를 두어 법을 다듬고 형벌을 만들어 천하를 다스렸던 것이다. 그 힘이 강했을 때는 포악함을 막고 난을 토벌하여 천하를 복종시켰다. 그 힘이 약했을 때는 오백(五伯, 춘추오패)이 정벌하여 제후를 따르게 했다. 쇠약해졌을 때는 안으로 지키고 밖으로 의지하여 사직을 보존했다. 그러므로 진이 강성했을 때는 법을 번잡하게 만들고 형벌을 엄격하여 천하를 떨게 했다. 그러나 쇠약해지자 백성이 원망하고 천하가 배반했다.” - 진시황본기 [秦始皇本紀]
사상이 다르다고 비판하는 자를 탄압하면 언젠가는 나라를 망친다. 위기가 찾아와도 올바른 소리를 할 사람이 없게 되어 나라가 망가져 가는데도 손쓸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법과 사상이란 국가를 통치하는데 있어서 공정성과 보편성을 부여하는 역할이지, 특정인의 목적을 위하여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중국에게 저자세를 취하여 얻을건 얻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중국이 제일 가깝고 힘이 강하니깐 함부로 대들었다가는 상대도 안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옛날과는 다르게 전세계가 보는 눈앞에서 함부로 속국처럼 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머리속에서 “진왕이 천하에 대한 뜻을 이루고 나면 천하가 모두 그의 노예가 될 것이다. 그와는 오래 교류할 수 없다.”고 말한 울료의 말이 계속해서 맴도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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