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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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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충선
댓글 0건 조회 6,258회 작성일 17-10-30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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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나루시마 이즈루 감독

키타가와 에미 원작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는 일본에서 호평을 받고 한국어로도 번역된 키타가와 에미의 동 제목의 소설 내용을 바탕으로 영화화된 작품이다. 시골에서 도쿄에 상경하여 겨우 직장을 구해 영업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주인공 ‘아오야마’는 점차 직장생활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꿈만 같았던 취업의 달콤함은 이내 사라지고, 융통성과 따뜻함 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직장 상사의 계속되는 일갈과 폭력에 자신감은 점점 소멸되어 간다. 선명했던 눈의 총기를 모두 잃은 채 지옥 같은 월요일에서 다시 불안감에 휩쓸리는 일요일까지의 반복되는 흐름 속에 단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회사를 마치고 귀가 중 지하철에서 반쯤은 정신을 놓은 채 선로에 몸을 던지려고 한다.

 

단지 버티기 위해 살아가던 그의 인생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전동차에 의해 영원히 해방되려는 그 찰나의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달려와 그의 몸을 붙잡고 선로 밖으로 끌어낸다. 자신을 ‘야마모토’ 라고 소개한 그는, 아오야마에게 자신이 그의 초등학교 동창이라며 반가워한다. 아오야마는 이 사건을 계기로 야마모토와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고,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만끽하고 있는 야마모토의 영향으로 인해 단조롭고 절망적이었던 인생에 긍정적인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회사와 상사의 방침인 실적주의와 형식주의에 억눌려 소극적이고 기계적인 일밖에 할 수 없었던 아오야마는 점차 주위의 형편과 마음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고, 자연스레 따라오는 배려가 고객을 감동시켜 큰 계약을 따내기에 이른다.


하지만 곧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납품과정에서 고객이 원했던 재질이 아닌 다른 재질로 만들어진 상품이 납품되어 큰 손해를 입게 된 것이다. 그의 책임이었던 계약이 무산되면서 그는 회사와 상사로부터 다시 골칫덩이로 전락하게 되고, 절망 속 조금의 균열을 통해 맛보았던 능동적인 자아로부터의 기쁨 역시 사그라지게 된다. 결국 그는 다시 한 번 생을 마감하기 위해 회사의 옥상 난간에 서게 되지만, 다시 한 번 나타난 야마모토가 그를 저지한다. 주인공을 난간에서 끌어내린 후, 야마모토가 하는 말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회사를 관두는 게 네가 죽는 것보다 어려워?”


이후 스토리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예상할 수 있는 조금은 뻔한 스토리로 흘러간다. 주인공은 결국 회사를 관두고, 한껏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타국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며 행복해 하는 씬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관을 나설 때, 개인적으로는 영화 자체의 작품성에 대해서는 그리 감명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무기력한 회사원의 모습으로 시작되었다가, 갑자기 밝은 아이들을 보여주며 마무리되는 고전적이고 진부한 대비에서는 참신한 면을 찾을 수 없었고,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극 내부를 관통하는 반전 요소들의 강렬함도 관객들에게 큰 재미를 더해 주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또한, 전체적으로 지속되는 꽤나 상투적인 주제에 대한 느린 전개는 약간의 지루함도 안겨 주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영화를 접했을 때, 작품의 완성도나 대단한 연출력 같은 것 이외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이 영화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느냐, 그리고 얼마나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느냐에 대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다소 뻔하고 지루한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나쁜 영화’ 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와 편안함에 있다. 이 영화가 나에게 던져 준 메시지는 단지 힘들다는 이유로 쉽게 직장을 포기하고 살 길을 찾으라는 권유가 아니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너가 정말 흥미로워 하는 것이 아니라면 꿈을 찾아 떠나라는 이십 대 초반 다들 한 번쯤은 읽어봤을 법한 자기개발서에 나오는 다소 진부한 조언도 아니었다. 단지, ‘삶’을 이어나가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강렬한 외침이었다.


‘삶’은 나의 것만은 아니기에, 주변의 모든 소중한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기에 살아내기 위해서라면 직장을 그만둘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살기 위해서라면 원치 않는 직장에 다닐 수도 있는 것이다. 죽음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숭고한 신념 속에서 죽는 것이 아니라면 개인에게는 어떤 것도, 강제로 ‘삶’을 포기하게 만들 이유가 되지 못한다. 주인공이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를 찾아갔을 때 하셨던 말처럼 ‘인생은 견디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풀리기 마련’ 이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500명 이상의 중고등학생이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이 나라에서, 일본에서 건너온 이 영화가 절망 속의 누군가에게는, ‘삶’을 향한 동아줄이 되어주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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