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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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저
대전역 역전에는 노숙자들이 많다. 그들은 대낮부터 술에 취해 상기된 표정으로 무언가에 잔뜩 화가 난 채 욕지거리를 내뱉는데 여념이 없다. 나는 그래서 그 곳을 지날 때마다 그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빠른 속도로 지나친다. 특히 그들과 눈을 마주치는 일은 절대 없다. 물론 험한 욕의 대상이 내가 되기 싫어서인 것도 있지만 그들의 눈 속에서 인생의 허망함과 슬픔을 발견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대전역 관계자들에게도 그들은 골칫거리임이 분명하다. 역 이용객들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을뿐더러 주변 경관 상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고개를 푹 숙이고 그 길을 지나치던 어느 날 나는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침울하고 쾌쾌한 노숙자들의 틈 속에 활기찬 젊은이들을 발견한 것이다. 중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은 연신 플래시를 터뜨리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경제 강국 대한민국의 가려진 실상을 전 세계에 고발하려는 기자들 같아보이진 않았다. 내 눈에는 지저분하고 볼썽사나운 그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마치 친구들에게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웅장한 건물을 배경으로 그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산책할 좋은 장소,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멋진 풍경 등을 찾아 길을 떠난다. 하지만 그 중국인 관광객들을 보면 깨끗하고 우아한 풍경만이 다는 아닌듯하다. 내 마음의 문이 그것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비록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좋은 장소가 되고 멋진 풍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일까.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대화가 이리저리 섞인 시끌벅적함과 자동차의 매연 그리고 경적을 싫어한다. 그날 역시 그것들에 온통 둘러싸여 현기증이 나려할 때쯤 그 관광객들을 보았고 나는 그때 내 속에 잠자고 있던 알 수없는 감정의 상자가 열리는 것을 느꼈다. 나를 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오직 그들의 삶에는 왠지 모르게 개입하고 싶어졌다. 모든 것이 네모난 세상. 네모난 건물과 네모난 자동차, 네모난 스마트폰을 보며 시간에 쫓기며 도착한 네모난 광장 그리고 손에 들려있는 네모난 서류가방. 모든 것이 네모난 세상에서 우리들의 마음은 둥글해야 한다. 이 각박한 도시의 삶 속에서 마음까지 네모난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지만 그들 마음의 모양은 이제껏 내가 느껴보지 못했던 3차원의 형상을 지니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획일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 네모난 건축물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반영한다. 그래서인지 우주선을 닮은 동그란 형태의 건물, 꽈배기처럼 뒤틀리며 올라가는 빌딩 등이 세계적인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근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건축물은 그 나라의 기술력과 재력을 보여 주는 과시의 상징이었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지고 반영되는 결정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건축물은 그 나라와 그 시대의 단면을 보여 주는 그림인 것이다. 반면 대도시의 복잡한 인공 생태계나 여러 변화와 혼돈으로 가득한 현대의 건축은 읽어 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더 좋은 새로운 것이 태동할 과도기적 현상일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는 도시에 대한 이해가 더 필요한 이유이다. 이 책의 저자는 도시가 유기체라 말한다. 도시 계획을 한 디자이너의 손을 떠나면 이내 진화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도시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따라 변한다. 그래서 도시 건축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소주가 아닌, 종자는 물론이고 토양이나 기후 그리고 담그는 사람에 따라 맛과 풍미가 달라지는 포도주와 같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을 보자. 예전의 모습과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나름의 정원을 가꾸며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던 앞마당과 이웃 간에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이들끼리 뛰어 놀던 골목길이 사라졌다는 것일 거다. 이것은 자연과 인간의 소통 그리고 사람 간의 소통의 단절을 의미한다. 앞마당에서의 흙장난이나 이웃과의 수다 대신 TV 앞에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거나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갈수록 삭막해진다’는 말이 나오는 건지도 모른다. 각 집의 특색이 되었던 빨래도 사라졌다. 그렇게 사람 냄새 풍기는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도시가 잃어 가는 것은 어쩌면 사람의 온기일지도 모른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얻은 것이 많다고 말해 왔지만 사실 우리는 주변의 질 좋은 공간을
팔아서 물건을 산 것일 뿐이었다. 아파트에 살면서 우리는 마당 대신 넓은 주차장을 얻었다.
마당과 골목길의 부재는 고스란히 더 넓은 평형의 아파트를 구하는 갈급함이 된 것이다.
차타고 한 시간 가야 하는 1만 평짜리 공원보다 한 걸음 앞에 손바닥만 한 마당이나
열 걸음 걸어서 있는 운치 있는 골목길이 더 좋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강북 달동네로, 유럽의 골목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오래된 도시들은 휴먼 스케일에 맞춰져 있다. 재료도 그 지역에서 구하기 쉬운 것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저절로 특색이 생긴다. 여기에 그곳의 문화가 더해져 각 지역의 색깔이 만들어진다. 오래된 도시와 현대 도시는 건축물을 짓는 자세도 차이를 보인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순응하는 자세로 지은 옛 건축물과 달리 현대의 건축물은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지은 것들이다. 경사진 곳에 축대를 쌓아 땅을 평평하게 한 뒤 그 위에 획일화된 아파트를 지으며 옹벽을 만드는 식이다. 우리의 옛 건축물들이 자연과 교류하는 방식으로 지어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멀리 갈 것 없이 일본을 봐도 길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지어진 주택들은 자연과 잘 어우러지고 인간의 온기를 한껏 풍기고 있다. 수천 세대를 하나의 설계사무소에서 몇 명의 건축사가 양산해내어 버리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달리 말이다. 도시는 유기체다. 인간의 온기가 녹아 숨을 쉬는 생명체다. 이 책을 통해 이제 대전역을 향하는 내 발걸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는 노숙자와 일반인이 아닌, 기차를 타고 향할 목적지가 있는 사람과 아직 미처 정하지 못한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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