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머 씨 이야기
페이지 정보

본문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온 가족이 외할머니 댁을 찾아 뵈었다.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바쁘다는 핑계로 명절에 찾아 뵙지 않았고, 어느새 명절에 다같이 모이는 행사는 어른들만의 것으로 되어버렸었다. 오랜만에 들른 할머니 댁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 똑같았다. 한적한 2차선 도로에 조그마한 샛길로 들어가다 보면 산의 초입에 있는 집이었다. 초등학생 때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불장난용 아궁이도 그대로 있었고, 집 냄새도 변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겨운 냄새로 그 때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기억나는 건 많지 않았다. 매번 불장난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할머니가 해주시는 밥이 고기만 좋아하던 내 마음에 들지 않아 슈퍼에 가서 과자를 사먹었던 자질구레한 기억들이 남아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곰곰이 내 과거를 쭉 생각해보니 뭔가 극적이라던가, 강렬하다던가 하는 기억은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되었을까 조금은 싱숭생숭한 날이었다.
좀머 씨 이야기는 엄밀히 말해서 좀머 씨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른이 된 ‘나’가 소년이었던 시절 선명했던 에피소드들을 말해주는데, 그 에피소드들을 특이했던 한 사람 좀머 씨와 함께 기억하고 있는(사실 ‘나’의 강렬했던 몇 번의 기억이 좀머 씨 때문은 아니다.) 내용이다. 좀머 씨를 곰곰이 곱씹는다면 그에 대한 어떤 단서를 통해 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나’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나’는 비교적 예전 기억을 근사하게 기억하고 있다. 마을에 비리비리한 노인 좀머 씨가 처음으로 등장했던 때에 마을의 모든 사람이 좀머 씨의 이상한 행동 (그는 몇 년간 하루종일 마을을 잰 걸음으로 걸어 다닌다.)에 놀랐던 것부터, 매일매일 똑같은 그의 행동에 점점 사람들이 좀머 씨를 마을의 한 풍경처럼 잊어갔던 것, ‘나’가 어쩌다가 이 세상에 큰 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나무 위에 올라 자살시도를 했는지를 말이다. 특히나 피아노 선생님께 심한 꾸중을 듣고 터무니없는 자살시도를 했던 원인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나’의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해주었는데, 그 구절은 이렇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건 이 세상 전체가 불공정하고 포악스럽고 비열한 덩어리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분노에 찬 자각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다 문제였다. 어떤 것에 대한 예외도 없이 모든 것이 다 그랬다. 우선 제일 먼저 내게 맞는 자전거를 사 주지 않은 우리 어머니가 원망스러웠고, 어머니를 그렇게 하도록 만든 아버지가 그랬으며, 선 자세로 자전거를 타야 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몰래 나를 비웃었던 누나와 형도 마찬가지였다. 호숫가 길을 꽉 메워 나를 늦게 도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산보객들도 그랬다. 말도 안되는 억지로 내게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올림 바 음 건반 위에 구역질 나는 코딱지를 붙여놓은 미스 풍켈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코딱지가 묻어있는 올림 바 음 건반을 차마 누르지 못했던 ‘나’의 행동은 지각을 해서 잔뜩 예민해져 있는 풍켈 선생님의 화를 돋우는 데에는 충분했고 ‘나’는 억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피아노 선생님의 집까지 걸어서 1시간이나 되지만 자신에게 맞는 자전거를 사주지 않았던 부모님 때문에 몸에 맞지 않는 자전거를 탄 것이 서러웠으며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놀린 누나와 형 때문에 산보객이 있을 때마다 차마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에도 분했다. 나는 강렬했던 일들을 선명히 기억하는 ‘나’가 너무 부러웠다. 사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삶의 기억 (슬펐던, 기뻤던, 설렜던, 답답했던, 화가 났던, 씁쓸했던, 우울했던) 이다. 이것들은 나만이 온전히 알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나를 알기 위한 소중한 재료들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몇 번 내 기분이 ‘근사하거나 답답하거나’ 이 정도의 감정 사이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감정이 조금 무뎌진 것 같다. 예전의 나 (친구들이 감정기복이 심하다고 까지 얘기했던) 라면 씩씩대고 분할만한 사건들, 또는 정말 날아갈듯한 행복감을 선사해줬을 일들이 지금 내게 펼쳐져도 나는 그때의 나만큼 감정이 끓어오르지 않는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지금은 무뎌진 감정만큼 내 삶이 재미없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하나하나 소란하게 살아가고 싶다.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 같은 극적인 삶이 펼쳐지길, 또는 그렇게 느끼길 바라본다.
- 이전글그림의 마술사 : 에셔 17.10.07
- 다음글끌리는 컨셉의 법칙 17.10.1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