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조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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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조조전 – 왕샤오레이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
조조의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정확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황건적의 난 이전에 평화로운 시기에는 유망받는 인재였으나, 황건적의 난 이후에는 패도의 길을 추구하여 한나라의 황제를 옆에 두고 지방의 제후들을 토벌하며 북중국을 제패한 군웅이 되었다. 하지만 말년에 인생의 라이벌 유비를 꺾지 못하고 삼국이 형성되는 것을 막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마의에게 모든 것을 뺏기고 5호 16국 시대를 열게 만든 원인을 제공하였다.
조조는 현대사회에서 보자면 전형적인 금수저 집안이다. 아버지 조숭은 돈으로 산 관직이지만 “태위(太尉)”를 (현대로 치면 국방부 장관) 지낸 사람이고, 할아버지 조등은 친할아버지는 아니지만, 후한말에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환관이었다. 사람들은 조조가 가문의 힘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데, 젊어서는 별 다른 어려움 없이 관리 생활을 했다. 이는 할아버지 조등의 위세가 아주 높았기 때문이지, 당시 조조가 인재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현대의 금수저들은 대부분 부모세대의 재산을 물려받기만 하는 무능력한 집단으로 사회의 부러움과 조롱을 동시에 받고 있다. 이러한 공식을 대입하면 조조는 혼란기가 찾아 왔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대에 먹혔어야할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조조였고, 오히려 자수성가의 아이콘이 되었다.
조조가 자수성가의 아이콘이 된 이유는, 전반기의 라이벌 원소가 매우 강력한 적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원소가 자수성가의 아이콘이라고 볼 수 있는데, 명문 원가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노비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거기에다가 반동탁연합군을 결성하면서 수도에 있던 원씨 일족까지 동탁한테 몰살당하면서 자신의 카리스마로 하북지역을 제패하였다. 이 때 원소는 조조가 어려울 때 항복까지 생각할 정도로 강한 적이었고, 결국 원소를 꺾고 중원의 패자로 군림한 조조에게 약자가 금수저 강자를 이겼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리고 중원의 패자가 된 조조는 전형적인 금수저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조조가 중원의 패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본인의 군사적인 재능과 이를 뒷받침해준 중원의 호족들이 지지를 했기 때문이다. 이 호족들은 광무제가 후한을 재건할 때 기반이 되어준 무리들이다. 당대의 호족들이 조조를 지지해준 이유는 조조가 환관집안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환관과 외척을 적대시하여 청류파의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조는 당연히 어느정도 이권을 지지해준 호족들에게 나누어 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반항하는 자들은 가차없이 제거하여 자신의 권위를 지켰고, 협조하는 자는 우대하여 자신의 수족을 부려먹었다. 하지만 황건적의 난 말기에 각지의 호족들이 사병을 이끌고 황건적을 토벌하면서 군벌화되는 것을 직접 경험한 조조는 중원의 호족들을 어느정도 견제할 필요성이 있었고 대항할 만한 세력으로 서쪽의 관중(함곡관 서쪽, 지금의 섬서성) 출신들과 남쪽의 형주(지금의 호북성) 출신의 인사들을 기용하면서 견제세력을 형성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경기-위황의 난과 위풍의 난으로 지방출신 인사들이 모조리 몰살당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이러한 상황을 말년의 조조와 진군의 대화속에서 조조의 속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천년만년 번영하라고? 너희 중원 출신 인사들이 천년만년 번영한다는 의미겠지. 경기와 위황이 반란을 일으킬 때 너희들이 죄를 관중출신 인사들에게 뒤집어 씌우고, 이번에는 위풍이라는 자가 난을 일으키니 형주출신 인사들을 이참에 제거하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아는가?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제거한다고 피바람을 불러일으키면 내가 세운 모든 것이 무너질까봐 참고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의 패업을 이루기 위하여 기득권과 손을 잡았으나 결국 기득권의 제어는 실패하고 만 조조의 말년을 보여주는 마음이다. 결국 진군이 발의한 구품관인법이 실시되고, 중원의 호족들이 문벌귀족화 되면서 자신들끼리 인맥을 만들어 관직을 서로 나눠먹는 문제를 일으켜 버렸다. 물론 조조의 후계자인 조비도 이런 상황을 모르지는 않아서, 권력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를 만들었다. 하나는 군권은 조씨랑 하후씨가 확실하게 장악하는 것, 그리고 정책을 입안하는 내조를 완벽히 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방 시절에 군권과 내조가 전부 사마의 일파에게 넘어가면서 위나라가 사마씨에게 통째로 장악당해버렸고, 사마염이 조환에게 선양을 받아서 서진을 건국하였다. 그리고 통일 40년도 안되서 앞서 말한 사회적 모순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팔왕의 난과 영가의 난이 연달아 발생하였고, 서진정권은 강남으로 쫓겨나 5호 16국의 혼란한 시대를 열었다.
조조 자신이 기득권 출신이고, 이런 기득권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못하면 어떤 형태로 사회적 모순이 쌓이다 터지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패업을 이루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기득권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고, 말년에 이를 해결하고자 다양한 출신의 인재를 등용하거나 본거지를 황하 이남에서 황하 이북으로 옮기는 등, 여러 가지 시도를 한 정황이 드러난다. 그러나 적벽대전 이후 유비와의 싸움에서 연달아 패배하여 정치적인 위기를 맞이하자, 어쩔 수 없이 기득권인 중원의 호족들의 손을 들어주어 자신의 업적을 지키려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호족들을 휘어잡아 완벽한 중앙집권화를 이룬건 삼국중에서 가장 약한 유비와 제갈량의 촉한이었다.)
결국 조조가 살아온 일생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기득권들이 자신들의 인맥으로 형성한 집단은 대부분 선순환을 일으키기 보다는, 자신들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이권들 독식하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발현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런 기득권의 뿌리는 크고, 깊고, 억세서 한번에 제거하지 못하여 어떠한 형태로든 살아남아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성공을 위하여 자신의 재능과 기득권의 지원을 받아 성장하는 것은 쉬워도, 이후 기득권을 제어하여 사회적 모순을 제거하는 데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결국 현 정권의 적폐청산 프로젝트가 맞이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여당은 과반이 되지 않고, 자칭 제 1야당은 몇퍼센트 되지도 않는 지지율은 애써 무시한채로 100석이 넘는 의원 수만 믿고 국정운영에 깽판을 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기득권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하여 당연히 해야 할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하면서 반발하고 있다. 국정원이 일개 연예인을 사찰하여 좌파로 규정하고 프레임을 씌우는게 잘하는 짓인가? 대기업에 부당하게 일감을 몰아주고, 노동의 대가를 짓밟는 자들이 정의인가? 정당한 적폐청산에 반발하는 자들은 환관과 외척같은 자들이어서, 자신들의 죄가 드러날까봐 오히려 화를 내는 쥐새끼 같은 인간들이다. 그런자들은 법 앞에서 자비를 구걸하면서 법의 심판을 기다려야하는 자들이다.
현 정권이 해야할 일은 적폐청산만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한가지 경계해야 할 점이 있다. 언젠가는 자신들도 기득권이 될 날이 있을 것이고, 또다른 새로운 계층과 갈등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 그럴 때 마다 기득권이 일으키는 문제가 그동안 어떤 사회적 부작용을 낳았는지 생각해보고, 자신들이 들고 있는 기득권을 놓을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 공부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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