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 발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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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 발보아
감독 - 실베스터 스탤론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지 72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올해 8월 15일은 여느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과거에는 광복절에 길거리를 걷다 보면 태극기가 게양된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지만, 올해는 많은 가구가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뉴스에서도 태극기 게양률이 크게 떨어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초까지 박근혜 탄핵 반대를 위한 태극기 집회의 영향 때문에 많은 시민이 태극기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가 이렇게 의미가 변질된 것은 애석한 일이다. 소수의 단체에 의해 변질되어버린 태극기의 의미를 되찾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근래에는 이와 같이 태극기뿐만 아니라 의미가 변질된 많은 단어들이 있다. 특히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던 단어가 부정적인 뜻으로 변하는 것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노력’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많은 주제와 이야기들이 오가지만, 그중에서 빠지지 않는 안줏거리가 있다. 바로 삶의 고단함에 대한 넋두리이다. 어떤 친구는 회사가 너무 힘들고 답답하다며 이야기하며, 다른 친구는 취업이 안 된다며 한탄을 한다. 대학원을 다니는 친구는 연구가 잘 되지 않는다며,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있거나 혹은 실험실에 있어도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며 힘들어한다.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한다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지 않기에 많은 사람은 자신의 고민거리를 풀어놓는다. 그럴 때 갑자기 어떤 친구가 “노력이 부족해서 그래, 노오오오력을 하란 말이야!”라고 이야기하면 그 자리는 웃음바다가 된다. 물론 반어적인 웃음이다. 언제부턴가 젊은 사람들에게 ‘노력’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단어가 되어버렸다. 슬픈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노력’의 의미가 변질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가 시대적인 흐름과 사회의 구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도의 경제 성장을 보여주었던 1970년대 혹은 80년대에는 많은 성공 신화들이 있다. 많은 성공 신화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진다. 첫째는 가난하고 힘든 환경에서 태어났다는 것, 둘째는 그러한 환경을 노력으로 극복하고 성공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과거의 성공 신화를 들여다보면 대단하신 분들이 참 많다. 어느 세대보다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지금의 환경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끈기와 근성을 가지고 어떤 것을 이루어낸 것을 보면 감탄사가 끊이질 않는다.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만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라고 작가 유시민은 말했다. 70년대 혹은 80년대의 세대는 열악한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과 희망이 있는 세대였다. 또한, 끈기와 근성을 가지고 노력을 하면 그만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세대였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가면 대기업은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시대였고, 연평균 금리가 20퍼센트를 넘었기 때문에 저축한 만큼 되돌아오는 것이 많은 세대였다. 그렇기에 4~50대의 어른들은 젊은 세대에게 참고 노력하라고 이야기한다. 참고 노력하면 반드시 돌아오는 것이 있을 것이라 역설한다. 자신들이 자라온 세대가 그러했기에 당연히 자식들의 세대도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의 의도가 어떠한지보다는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 보통 어른들이 자식들에게 노력하라는 말을 하는 경우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네가 노력하면 이만큼 할 수 있을 거야.”라는 격려보다는, “네가 노력을 하지 않아서 지금 이 모양인 것이다. 나는 이만큼 노력해서 이까지 왔는데 너는 왜 그러냐?” 따위의 경우가 더 많다. 격려보다는 질책의 의미로 노력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이다. 참고 노력하면 이루어졌던 그때와는 달리 아무리 노력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 자신의 현실을 직면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다. 이와 더불어 빈부격차의 증가 및 계층 간의 이동이 불가능해져 가는 현실 속에서 각종 부조리한 사회문제들을 기득권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젊은 세대에게는 이러한 충고가 더더욱 부질없어지고 있다. 사회구조 자체의 문제를 뒤로하고, 노력이라는 단어만을 강조함으로써 대부분의 문제를 개인에게만 돌리는 기성세대에게 점점 진절머리를 느끼고 있다. 이것이 노력이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의미에서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해버린 이유이다.
<록키>라는 영화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명작이다. 영화의 제목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영화의 주제곡 <Gonna fly now>의 멜로디를 들으면 ‘아! 이 노래구나’라고 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영화이다. 영화 <록키>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는 주인공의 성공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삼류 복싱 선수로 지내던 주인공 록키가 이벤트 경기의 희생양으로 세계 헤비급 챔피언 복서와 경기를 치르게 된다. 정신을 차린 록키는 이 경기를 위해 미친 듯이 노력을 하고 준비하지만, 보통 영화와는 다르게 주인공이 상대 선수에게 패배 후 영화가 끝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영화 <록키>에 열광한다. 왜냐하면,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승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노력’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승부를 기권하거나 KO패를 당하지 않고 마지막 라운드까지 끝까지 버텨낸다. 비록 판정으로 패배했을지라도 사람들은 영화 속의 주인공에게 감동을 받았고,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렸다.
<록키 발보아>는 록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영화의 많은 장면 중에 록키와 아들이 이야기하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꼽힌다. 복싱 세계 챔피언이라는 아버지의 명성 때문에 자기 자신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소리치는 아들에게 록키는 질책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노력이 부족하다며 노력하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세상은 매우 살벌하고 힘든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세게 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심하게 맞고도 버틸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너는 겁쟁이가 아니라며, 너는 그보다 훨씬 나은 놈이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널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령임에도 자신의 열정을 되찾기 위해서 승리할 확률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챔피언과의 친선 경기를 하러 담담히 나간다.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개인의 노력보다 타고난 수저가 더 중요한 지금,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많은 젊은이는 현재의 높은 실업률과 힘든 상황을 기성세대의 전유물로 여기고 있다. 그런 와중에 “요새 젊은것들은 해외로 여행 다니기만 좋아하고 통 노력을 안 한단 말이야. 내가 젊었을 때는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갔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어떤 젊은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겠는가. 각자의 세대는 각자의 십자가가 있다는 말처럼 과거의 기성세대가 짊어진 십자가가 있고 현재 젊은 세대가 짊어질 또 다른 십자가가 있다. 전후 과정을 전부 생략한 채 자신의 주장만 일삼는 기성세대를 젊은 세대가 좋아할 리 만무하다.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은 질책과 타박이 아니고 달콤한 위로의 이야기도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은 영화의 록키처럼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사람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등을 보면서 함께 달려간다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묵묵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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