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교실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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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교실 혁명
후쿠타 세이지 원작/박재원, 윤지은 옮김
최근 있었던 교육부 업무보고에서는 교육 격차 해소와 관련해 이르면 내년부터 자율형사립고 및 외고, 과학고, 국제고 등 특수목적고의 ‘우선 선발권’을 폐지하겠다고 보고했다. 매년 8월부터 먼저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어 우수한 중학생들을 독식할 수 있는 현재의 체재를 손봄으로써 고교 서열화를 완화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제도개선은 과연 극과 극으로 치닫고 있던 교육의 양극화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혹은 교육의 양극화 자체가 국가의 발전이나 개인의 행복 등의 가치를 위해서 정말 해결해야 될 문제일까?
한국은 2000년부터 3년마다 주기적으로 수행되며, 세계 각지의 청소년들의 학업성취도를 판단하는 시험인 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PISA) 에서 매번 최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매일 밤 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며, 하교 후에도 새벽까지 학원에 다니면서 공부에 매달리는 중고등학생들을 생각해 보면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PISA 순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와 최상위권을 다투는 – 대부분은 더 높은 점수를 기록하고 있는 – 나라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핀란드이다. 핀란드는 어떻게 이렇게 높은 점수를 기록할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처럼 혹시 이 나라도 절대적인 학습량이 엄청나게 많은 나라 중 하나일까.
정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다. 높은 학업성취도를 가진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교육 정책은 완전히 정 반대의 노선을 취하고 있다. 한국이 앞에서 선생님이 가르치면 학생들은 그대로 그 내용을 따라가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면, 핀란드는 철저하게 학생 중심적인 교육이다. 책에서 표현된 바에 따르면, 꼭 선생님이 수업하는 부분에 맞춰 진도를 따라가지 않아도 되고, 학생들은 각자가 원하는 페이지를 펴서 공부를 시작한다. 오늘 진도를 나가야 할 할당량은 있지만 그 시작점은 학생마다 다르다. 첫 페이지부터 다시 펴서 공부하는 학생이 있고, 이미 진도를 넘어서서 스스로 문제를 풀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 이러한 학생들을 선생님은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진도를 맞춰나갈 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풍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따라갈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러한 핀란드 교육은 ‘한 사람의 학생도 버릴 수 없다’ 라는 교육관을 바탕으로 세워져 있다. 수업은 학교마다 자유로운 수업과정속에서 교사의 역량을 신뢰하며 자율적인 교육 방식에 맡기며, 학생들의 학력을 측정하는 시험은 9년~10년의 기초학교에서의 의무교육 기간 동안 한 번도 시행되지 않는다. 다만, 기초학교를 졸업할 때 시험을 보게 되는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더 낮은 점수를 받은 학교에게 더 많은 지원금을 주고, 더 낮은 점수를 받은 학생에게 더 많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 성적이 낮다고 해서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기초학교를 졸업하면 일반 고등학교와 직업학교로 분리되어 진학하게 되는데, 낮은 점수를 받음으로 인해 받는 사회적 차별이나 조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잘 맞는 길을 따라 갈 수 있는 선택이 순간이 주어지는 것 뿐이다.
또 하나의 한국 교육과 다른 놀라운 차이점은 핀란드에서는 수준별 교육이나 학교의 서열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양한 수준을 가지는 학생들이 한 반에 뒤섞여 있으며, 교사들은 ‘스스로 잘 하는 아이들’ 은 자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대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집중한다. 이러한 교육방식은 학업 수준의 하향 평준화라는 우려를 지워낼 수 있게 해준다. 핀란드 학생들의 높은 PISA 점수가 이를 반증한다. 또한 PISA 결과에서 주목해서 볼 부분은 바로 학교 간의 격차인데, 책 속에 삽입되어 있는 아래의 도표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한국의 경우 학교간의 격차가 꽤 큰 편인 반면에 핀란드는 학교간의 격차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PISA 2000 (수학적 소양), 핀란드 교실혁명, 후쿠타 세이지 원작, 박재원, 윤지은 옮김 (2007)
몇 달 전, 식사자리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소위 '강남 8학군' 이라는 동네에 학교를 다니는 학생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학생은 전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우수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전교 2등인 학생과 그 무리가 전교 1등을 따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전교 1등인 그 학생은 괴롭힘을 참지 못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고, 전교 2등인 학생이 드디어 전교 1등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어이없으면서도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일을 할 때 주변 사람들을 많이 접하면 접할수록 도대체 내가 왜 중고등학교 때 한 단계 높은 등수, 몇 점 더 높은 점수에 집착했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시험성적 이라는 학창시절의 평가 잣대에 비교해 볼 때, 그것과 전혀 무관한 업무 능력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평균 1, 2점 차이나 1, 2등이 가지는 의미가 마치 그 사람의 가치를 서열화 해버리는 듯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는 조소를,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질투와 비난을 눈초리를 보내는 학생들을 만들어 내고 결국에는 위의 사례처럼 비이상적인 상황이 스스럼 없이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책을 읽으면서, 이번 여름 수련회에서 디자인 업계에서 크게 인정받다가 목사님이 되신 강사님께서 하신 말씀 중 예시 하나가 떠올랐다. ‘미술계에서 천재로 인정받는 사람들 중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명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피카소에요. 그는 10대에서부터 이미 대단한 작품들을 그려냈고, 결국에는 입체파의 거장이 되었죠. 또 다른 한명은 젊었을 적 그린 그림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활동 말기에 걸작들을 탄생시키며 위대한 화가로 여겨지는 렘브란트 입니다. 물론 젊은 시절의 작품들도 명작들이지만, 60대가 다 되어서야 진정한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었죠. 이렇듯, 사람이 재능이 꽃피는 시기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 학창 시절 공부에 대한 재능이 꽃피어 좋은 대학에, 그리고 좋은 직장에 다니시는 분들이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여러분들이 아셔야 될 것은, 단지 그런 사람들은 남들보다 조금 일찍 공부라는 특정 분야에 대한 재능이 발현된 것 뿐이지, 남들보다 우월하다거나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학생에게 가장 큰 도움을’. 책을 읽으면서 강하게 뇌리에 박힌 생각이다. 핀란드와 한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다른 환경에 있다. 그렇기에 교육 역시 완전히 동일할 수는 없다. 각 나라의 환경에 맞게 발전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교육 정책이며 현재 우리나라에는 적당한 수준별 교육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세계 어떤 나라든지 간에,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완벽하진 않겠지만 잘사는 집의 자녀이든, 혹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학생이던 간에 공평한 환경에서 경쟁이 아닌 협력과 상생으로 지혜를 축적해야 한다는 핀란드에 교육방식은 확실히 동의할 만한 근거가 충분히 존재하는 듯 하다. 학생의 개개인의 재능이 어린 나이에 발현되든 되지 않든 간에, 차별 받지 않으며 연약한 학생에게 교사와 친구가 일어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교육. 그것이 바로 올바른 교육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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