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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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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윤
댓글 0건 조회 5,955회 작성일 17-09-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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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지난해 말에 일어났던 국정농단 사건 이후 현재 한국인들의 정의에 대한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쉽게 끓었다 쉽게 식는 냄비근성으로 평가되는 한국인들 치고 꽤나 길었던 국내 정치에 대한 관심은 대선 이후 점차 제 자리를 찾아가며 완만한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 가장 뜨거웠던 그 당시, 우리는 ‘정의’라는 단어를 무수히 보았고 쉴 새 없이 외쳤다. 그렇게 흐드러지게 폈던 촛불민심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말을 하였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나는 위 어구가 좋아 자주 머릿속에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살기에 보다 필요한 것은 융통성보다는 법률과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준법, 공의, 정의를 우선시하는 나에게 꿈같은 구절이다. 그런데 도대체 정의란 무엇인가? 그리고 부정의는 무엇인가? 이것 참 어렵다. 어떤 사항에 대해 정의로운 결정이 있다면 그것은 만인에게 정의로운가?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 정의는 정의로운가? 옛 위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각자 자신의 것을 가져가는 것이 정의다. -플라톤
자격이 같은 사람은 같게 대우하고, 자격이 다른 사람은 다르게 대우하라. -아리스토텔레스

 
 우리는 SNS의 발달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의 홍수 속에 산다. 한 사람의 입장에서 나온 자극적인 이야기는 부지불식간에 수십, 수백만에게 읽히며 퍼진다. 이 과정 속에 내용은 왜곡과 확대재생산을 거치며 더욱 더 자극적으로 변해간다. 내용이 자극적으로 변해서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로 변모하면 언론이 투입된다. 이렇게 흥미롭게 자극적인 이야기를 차마 보지 못 한 사람에게 전달하려는 의도일까? 보도윤리를 직업정신으로 내세운 기자들마저 실제 당사자들의 인터뷰를 통한 사실 체크 없이 일반 네티즌과 같이 글을 퍼뜨린다. 최초 유포자로부터 이야기가 퍼지는 과정 속에서 확대재생산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정의로운 일반인들이다. 그들은 자극적인 이야기에 댓글의 형식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적는다. 얼굴을 대면하지 않은 인터넷 상이기에 실명임에도 불구하고 거친 단어와 표현들로 ‘정의롭지 않아 보이는 쪽’을 맹렬히 공격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군중심리가 그러하듯, 더욱 더 거칠어지며 마녀 사냥의 날카로움이 더해져 피해자는 사회적으로 매장 당한다.

 

 최근 위와 같은 논리에 들어맞는 사건이 있었다. 240번 버스 기사 사건이다. 최초 유포자에 의하면 위 사건의 전개과정은 다음과 같다.


아이를 둔 엄마가 240번 버스를 탔다. 한 정거장에서 실수로 아이만 내리고 엄마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잠시 후 이를 알게된 아이 엄마는 기사에게 아이가 전 정거장에서 내렸으니 내려달라고 울부짖었으나 기사는 이를 무시하고 다음 정거장까지 가서 아이 엄마를 내려주었다.


 이야기는 인터넷을 타고, 언론을 통해서 일파만파 커졌으며 중간과정에서 스스로의 정의에 심취한 많은 이들은 240번 버스 기사를 매장시켰다. 240번 버스기사의 딸과 CCTV 영상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사실 버스는 아이가 내린 정거장을 출발하였고, 2차선에 진입한 후 아이 엄마를 통해 위 사건을 알게 되었다. 버스기사는 약 300m 가량 가까운 거리에 다음 정거장이 있다는 점과 현재 아이 엄마를 내리게 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다음 정거장에 아이 엄마를 내려주었다.


 사건의 주요인물들의 행동을 자세히 보면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다. 아이는 혼잡한 버스 속에서 실수할 수 있으며 이를 뒤늦게 알게 된 엄마는 엄마의 마음으로 기사에게 하차 요구를 할 수 있고, 버스 기사는 안전과 빠른 상황 판단으로 다음 정거장에 엄마를 하차시켜 줄 수 있다. 잘못에 경중이 있겠지만 위 사건은 사실에 근거하기보다는 흥분 상태로 한 쪽 입장에서 글을 작성한 최초 유포자와 이를 확대재생산 시킨 치기어린 정의감에 압도된 네티즌들, 취재도 하지 않고 사실관계 확인도 되지 않은 내용을 널리 퍼뜨린 언론에게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치기어린 개인들에게 잘못을 전부 전가하고 싶지는 않다. 반복되는 사건을 통해 ‘글이 사실이 아닐 수 있으니 침착해보자’ 혹은 ‘내가 쓰는 짧은 글 토막이 한 사람에게 뼈아픈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조심하자’라는 생각을 하길 권한다. 사실 관계만 정확하다면 개인(네티즌)들의 불타는 정의감은 사회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오래된 사건의 범인을 잡는다거나 여중생 집단 폭행 사건 혹은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여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게 하는 것이 그 예다.


 정의란 개념은 자유주의를 따를지, 공리주의를 따를지, 약자 우선주의를 따를지에 따라 모두 달라질 수 있다. 그런 만큼 정의는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이다. 플라톤은 그의 시대 당시 이상적인 국가는 지도자(철인)는 지혜, 전사는 용기, 노동자는 절제를 지니고, 각 계급이 조화로울 때 이상적인 국가가 된다고 하였다. 영화 V for 벤테타를 보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응보주의가 정의라고 하였다. 공리주의 안에도 밀, 벤담과 같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적 사고의 결과론자도 있고 행위의 의도를 중시하는 칸트와 같은 의무론자도 있다. 아직 정의의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그리고 전체주의적 획일화 된 사회를 꿈꾸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정의의 정의를 내릴 수는 없을 것이지만 정의의 정의에 대한 아고라는 끊임없이 펼쳐져야 한다.


 나는 정의롭기 위해 노력하는 부정의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포지션을 계속해서 유지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또한 무지의 장막이 없는 상황에서 내려진 판단이라도 적어도 그 시대의 정의에 따라 절차가 공정했다면, 결과에 승복할 것이며 그러한 사회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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