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 - 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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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 데이트 강간이 언제부터 발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 비해 이 불미스런 사건이 언론에 좀 더 노출되는 것은 맞다. 헤어지자고 하니 죽여버리고, 홧김에 폭행을 하기도 한다. 차라리 원한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거나, 묻지마 폭행으로 아무나 그 대상이 되었다면 황당함은 덜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황당하게도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는 ‘애인(愛人)’이다. 에리히 프롬의 견해대로 한다면 이들은 사랑하는 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극단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무지가 표출된 것일지도 모른다.
프롬이 말한 사랑은 크게 부성애, 모성애, 자기애, 형제애(동료애), 종교를 향한 사랑으로 구분된다. 인간이 가장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은 모성애일 것이다. 어머니의 신체로부터 분리되어 불안한 우리에게 모성애는 우리의 불안을 잠재워준다. 모성애는 말 그대로 누구나 느껴본, 가슴 속에 있는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리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모성애가 정말 사랑일지, 아니면 단순한 생물학적 성질인지 그에 대한 정확한 답을 나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면, 모성애는 사랑임에 틀림없다. 생물학적 성질이라면 어머니의 사랑은 일정 범주에서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헌신적인 마음과 행동을 본다면, 그것은 끝이 없다. 생물학적 성질에는 자신의 손익계산도 포함되어 있을 텐데, 그 본능을 거스른 헌신적인 사랑은 확실히 ‘사랑’이다. 부성애는 모성애와는 다르다. 헌신적인 어머니의 사랑이 아니라 부성애는 세상을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케 하는 것이다. 이 사랑은 사회에 나가기 위한 밑거름을 주기 때문에 무조건적이 아닌, 조건적인 사랑이다. 예를 들어, 시험에서 100점을 맞으면 새 운동화를 사주기로 하는 것이다. 동료애는 나와 비슷한, 동등한 대상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고, 종교를 향한 사랑은 보이지 않는 초월적 대상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프롬은 각기 다른 유형의 사랑일지라도 사랑에는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의 네 가지 요소가 기본적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으로는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 신앙의 실천 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의학 기술, 공학 기술처럼 사랑도 배워서 익혀야 하는 기술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프롬이 말하는 사랑을 세 글자로 말하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주는 것은 프롬의 정의에 부합하는 올바른 사랑이어야 할 것이다. 타인에게 사랑을 주려면 나부터가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받아봐야 한다. 잘못된 사랑을 진짜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잘못 그 사랑을 준다면 프롬의 경고대로 인간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협으로 나타나는 사례가 바로 요즘 주목 받고 있는 데이트 폭력이다. 가해자들은 자신이 사랑의 본성을 깨닫지 못하고, 사랑의 기술에 숙달되지 못했지만 본인의 그 모습을 알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사랑을 주려고 하니 이런 극단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연애의 기술과 동일시 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연애의 기술이 사랑의 기술과는 다르게 생각되는 것은 아마도 ‘연애의 기술=사람을 유혹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연애도 보호, 책임, 존경, 지식처럼 사랑의 본질에 필요한 네 가지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동등한 남녀가 사랑을 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연애이다. 그러나 연애과정이 반드시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프롬에 따르면 성숙한 사랑이란 다른 개성의 공서적 합일이라고 한다.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연애의 과정을 거치다가 성숙함을 넘어서게 되면 결혼에 이르게 된다. 다른 개성을 합일을 이룬다는 게 이론상으로 가능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관계는 이론 외에 표현할 수 없는 예외적인 것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한 쪽이 배려를 하여 자신의 개성을 양보하고 상대의 의견에 맞추어주는 등이 그 합일의 예시가 될 것이다.
사랑은 책임, 배려, 관심, 집중이며, 주는 것이자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집착을 한다던지 등의 마음가짐을 버리고 배려를 한다면, 사람들도 프롬의 진정한 사랑에 도달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사랑 자체를 배운다기 보다는 사랑하는 방법, 사랑을 주는 방법, 그 방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사랑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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