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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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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상재
댓글 0건 조회 6,027회 작성일 17-10-0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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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 영 하 

 

최근 영화로 개봉되어 관객몰이를 하고 있는 원작이다. 제목의 으스스함 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지만 작가를 보고 선택해서 읽고 후회가 없었던 책이기도 하다. 지난 번 살인에 대한 아쉬움과 더 완벽한 쾌감을 위해 연쇄 살인하는 냉혈한의 이야기. 이런 소재라면 당연히 모골이 송연하게 섬뜩한 표현과 자극적인 상황이 난무할 것 같으나 그 모든 것들을 치밀한 전개와 반전, 간결한 어조로 커버하고 있다.  

70세 김병수는 25년 전 마지막 살인 이후 은퇴한 연쇄살인범이다. 열여섯 살에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를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마흔다섯 살에 자신의 아내를 마지막 재물로 살인을 멈추었다. 양심성찰, 죄책감 이런 인간적인 감정이 생겼기 때문은 아니었다. 아내를 묻고 돌아오다 자동차 전복사고로 뇌수술을 받은 후 살인에 대한 충동과 쾌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살고 있는 딸 은희는 농대를 나와 지역 연구소에서 식물 품종을 개량하는 일을 하고 있고 그는 치매에 걸려 하루가 다르게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그들 앞에 박주태가 등장한다. 그를 본 순간, 김병수는 그가 인근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믿게 된다. 딸 은희를 박주태가 노리고 있다고 느낀 김병수는 살인범으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그를 죽이기로 한다. 필요에 의한 살인이 자신이 마지막 할 일이라고 믿는다. 망가지고 꺼져가는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 애를 쓰며 살인범으로부터 딸을 구하려 하지만 은희는 죽임을 당하고 김병수는 범인을 신고한다.

그러나 은희의 시체가 자신의 집 마당에서 발견되고 범인이라 믿었던 박주태는 연쇄 살인범을 쫓아 김범수 주위를 맴돌던 경찰이었으며 은희는 딸이 아니라 김병수를 돌보던 요양보호사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최근 기억부터 사라져가는 치매 환자의 특성대로 김병수는 은희를 죽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은희가 딸이 아니라는 것도 인정할 수가 없다. 분명한 것은 오래 전 살인의 기억과 치매를 앓으면서 주변의 파편적 일들을 떠오르는 대로 짜맞춘, 그래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허구인지 모를 그가 만든 기억들뿐이다.

마지막 10여 페이지의 결말은 모든 사실, 엄밀히 얘기하자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읽은 앞부분의 모든 내용을 뒤엎어버리는 반전이었다. 정말 예상치 못한 결말에 허가 찔린 느낌이 들었다. 치매 환자의 기억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에 어떤 반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농대를 나와 연구소에서 식물 품종을 연구한다는 식으로 상세 묘사되면서 이야기의 한 축이었던 은희가 딸이 아니라는 데에 이르러서는 말을 잃었다. 막힘 없이 술술 읽히던 책이었는데 그렇게 읽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는 생각, 도중에 내가 어떤 복선을 놓치고 이렇게 당황하는가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대개의 원작과 시나리오가 그렇듯이 책과 많은 부분이 달랐다. 따라서 결론도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은희는 김병수의 딸이었고 박주태는 경찰이었지만 김병수의 예상대로 살인마였다. 전개는 스릴러답게 거칠고 잔혹했고 두 사람의 목숨 건 사투는 연쇄살인자들에게 어울리게 피비린내가 났다. 책에서 느껴지던 담담함, 자극적이지 않던 묘사를 영화에서 기대할 수는 없었다.

비록 공상 속이든 현실 속이든 딸 은희를 연쇄살인범으로부터 지키려는 아버지 김병수가 있었다는 점은 책과 영화가 같았다. 그런데 이 설정은 김병수의 아이덴티티를 책과 영화에서 극명하게 차이 나게 만드는 요소였다. 책에서는 공상 속의 딸 은희를 지키려 한다지만 실제 요양 보호사인 은희를 제 손으로 죽임으로써 김병수는 치매에 걸려서도 살인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극악한 살인자로 남는다. 영화에서는 또 다른 연쇄살인범과 사투를 벌여 결국 딸 은희를 지켜내는 인간성이 남아있는 존재로 그려졌다. 책에서 느꼈던 기억의 허구성 보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좀더 선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책과 영화를 모두 접하게 되니 작품에서 전해주는 의미나 등장인물의 성격이 혼란스럽게 되는 것 같다. 반전이 가져다 준 혼란이 가시고 다시 한 번 ‘살인자의 기억법’이 전해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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