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질서 (World Order)
페이지 정보

본문
세계 질서 - 헨리 키신저
“세계의 원자로.”
세계의 화약고는 들어봤어도, 세계의 원자로는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20세기의 화약고는 발칸반도이고, 21세기의 화약고는 중동지역이라고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면서 발칸의 여러 나라들이 독립했다가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80년대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힘의 공백이 생기고, 민족주의 광풍이 몰아치면서 보스니아 내전이 발생하고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국제연합(UN)이 개입해서야 간신히 종료되었다. 중동지역은 걸프전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으로 후세인이 축출되고, 아랍의 봄으로 리비아와 이집트의 카다피와 무바라크가 몰락하고 힘의 공백이 생기면서 종교-종파-민족 별로 갈등을 일으키며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처럼 화약고는 조금만 자극을 가해도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는 위험한 지역이다. 이름만 보아도 화약고보다 더 위험한 지역이 “세계의 원자로”인데,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이 세계의 원자로라고 할 수 있다.
모두다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20세기 이후 국제적인 외교 질서 변화를 살펴보자. 세계대전 기간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대영제국과 프랑스 공화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여기에 도전하는 국가가 중부유럽의 삼국동맹체인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가 되겠다. 이 세 국가는 오스만 제국이 몰락하고 힘의 공백이 생긴 발칸 지역을 눈독들이고 있었다. 이를 견제한다고 영국, 프랑스는 똑같이 발칸에 눈독을 들이던 러시아를 끌어들여 삼국협상국을 만들어 대항하였다. 그 결과는 1,2차 세계대전을 유발하는 원인 중에 하나가 되었고, 유럽이 쑥대밭이 되고나서 얻은 결과는 미국과 소련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이었다. 그 이후에도 발칸지역은 20세기 내내 세계의 화약고라는 명칭을 달고 다녔고, 90년대 NATO와 EU의 가입을 하고 나서야 갈등이 마무리 되는 양상이었다.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다른 초강대국인 소련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신세계질서를 주장하면서 태평양과 대서양을 미국의 앞마당이라 여기고, 이를 수호하기 위하여 임의대로 자신들만의 동맹체를 만들어 국경선을 긋기 시작한 것이 철의장막 - 즉 냉전이었다. 철의장막은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그리스-터키에서 전선이 형성되었는데, 동아시아는 그보다 더 가혹한 조건에서 장막이 형성되었다. 세계대전 말기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의 저항이 생각보다 심각하자 미국은 소련의 태평양 전선 참전을 요구했고, 소련이 이를 받아들여 한반도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분단의 시작이다. 그리고 미-소 양국의 냉전체제에서 가장 격렬하게 대립하는 지역이 되었다.
냉전 기간이지만 동아시아 국가들은 공업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이루어 내면서 북미-유럽에 이은 세계 3대 경제권을 이루어냈다. 20세기말 동구권의 붕괴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가 싶더니, 9.11 테러와 2009년 금융위기 이후로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과 저성장에 허덕이면서 반대급부로 중국이 급성장하여 새로운 패권을 만들고 있다. 유럽 연합과 NATO는 몸집 부풀리기만 하다가 부작용에 빠져서, 부활한 러시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로 크림반도의 영유권을 러시아에 넘겨주면서 북대서양 이빨 빠진 조약 기구(North Atlantic Toothless Organization)라는 조롱이나 듣는 신세이다. 기존의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나 유럽이 비틀거리는 틈을 타서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신냉전을 만들고 있는데 가장 격렬하게 대립하는 지역이 한반도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격렬한 분쟁이 일어나는 지역은 우크라이나와 시리아 같은 지역이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대리전이 일어난다고 볼 수 있는 지역이다. 그렇다면 왜 한반도나 대만을 비롯한 중국과 미국이 대립하는 지역은 분쟁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명확한 답이라고 볼 수 없지만 헨리 키신저나 다른 학자들의 견해를 종합해 보면 “전쟁을 하지 않고 적당히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보면, 중국, 일본, 한국, 대만 같은 국가들은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과는 다르게 산업강국이며 다른 나라의 경제에 영향을 줄만한 위치에 있는 국가들이다. 북한을 제외한 동아시아 국가들 전부 도시화 비율이 높고 인구도 많다. 교육 수준이나 열의는 말할 필요도 없고 기술력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세계 2,3위의 경제대국인데 이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있으므로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세계화로 인하여 국가간 무역이 실타래처럼 엮여있는 상황에서 경제대국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 어떠한 혼란이 올지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지정학적으로 보면 (정확히 말해서 미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효과적인 지역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태평양으로 진출하는데 대만 다음으로 골치 아픈 지역이 한반도이다. 그래서 대만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명제로 살살 구슬려서 은근슬쩍 홍콩처럼 집어 삼키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는 그런 명분이 통하지 않는데 북한이라는 훌륭한(본인이 보기에는 버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이지만) 카드가 있다. 북한을 통해서 한반도의 영향력을 확대하면 바다로 진출하는 계획이 한결 쉬워지니, 중국 입장에서는 예의 주시 할 수 밖에 없는 지역이다. 물론 미국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좋아 할리 없으니 한국이라는 카드로 중국의 확대를 막으려하는 것이고, 최근 들어서 중국을 단독으로 막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므로 일본을 재무장시킨 다음 한국과 연합하여 중국과 맞서게 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양국의 의도와는 다르게 북한은 미사일을 쏘아대면서 중국의 입장을 곤란하게 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 문제로 으르렁 대면서 미국의 복장을 터지게하는 상황이다.
군사적으로 보면, 한국은 중국의 턱밑에 칼을 겨눌 수 있는 카드이다. 대만은 섬이라 중국에 영향을 주기도 어렵고 주요 도시에 타격을 줄 만한 수단이 없다. 베트남이나 인도 같은 국가는 중국 본토와 너무 멀어서 별 다른 영향이 없다. 한국의 경우 중국의 해안 주요도시가 전부 사정권 안이고, 유사시에 육군을 투입해서 진격 할 수 있는 훌륭한 교두보인 셈이다. 섣부르게 전쟁해서 유용하게 사용 할 수 있는 카드를 잃어버리기 보다는, 적당히 위협을 통하여 필요한 것을 (정확히 말하면 미국의 태평양 패권 및 무기 판매 사업) 지키는게 더 이득이다.
즉, 비유하면 원자로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원자로는 방사능이 누출될 경우 위험하지만, 관리만 잘 하면 나름 청정에너지를 제공한다. 다만, 문제가 생기면 뒷감당이 어려울 정도로 위험한게 원자로인데, 한반도가 원자로 같은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위험이 도사리지만 적당히 긴장을 유지하면 무기도 테러 단체에게 안흘러 들어가면서 안정적으로 팔아먹을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수준이 높아서 세계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지역이다. 다만 임계치를 넘어가서 전쟁이 일어나면 핵전쟁과 세계대전으로 이어져서 다 같이 공멸하는 시나리오가 되는 아주 무시무시한 지역이다. 오랫동안 살아온 우리들로서는 체감이 되지 않지만, 최근 주변국들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한반도는 21세기 최고의 위기라고 볼 수 있다.
위기의 핵심은 역시나 불량국가 북한이다. 미사일을 쏘면서 미국을 도발하는데 최근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실험까지 하면서 제대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중이다.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에 호들갑을 떨면서 자신들의 재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미사일 통제를 못한다는 핑계는 대면서 한국이 뭐만 하면 사사건건 간섭하려고 들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의 힘이 유럽으로 쏠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은근히 북한 편을 들면서 강건너 불구경하는 중이다. 이처럼 한국을 둘러싼 대국들이 전부 권위주의적, 패권주의적 국가들이 되어서 위기를 형성하고 있는데, 미국마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어디에나 갈등은 존재하지만 갈등이 우연히 겹치고 겹쳐서 한순간에 폭발 할 수 있기 때문에 갈등은 잘 관리해야하는데, 전혀 관리가 되고 있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한국은 자유주의 사상을 지닌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정권이 쌓아놓은 폐해를 치우고 새로운 기반을 다지는 것도 힘든 일인데, 주변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주변국이 우리 맘대로 어찌 해볼 수 없는 국가들이라는 점이 암울하기만 하다. 베를린에 가서 북한에 평화적인 대화를 하자고 제안을 했는데 북한으로 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미사일 발사였다. 중국은 사드 배치 문제로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으며, 일본은 위안부 재협상은 없다는 주장으로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거기에 미국이 중국-러시아랑 파워게임을 시작하면서 김정은을 제거하고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면서 중국에는 주한미군 철수라는 빅딜을 제안하는 시나리오까지 들먹이고 있다. 까딱 잘못했다간 전쟁이 일어나서 우리나라만 망하는 결과를 얻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상황이 이제는 우리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참으로 암울하기만 하다.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은 외교가 생명인데, 외교 정책을 기업이나 협박해서 딸한테 말이나 사주는 사람의 말에 따라 줏대 없이 했던 것이 치명적인 결과로 돌아 온 것이니 변명의 여지도 없다. 현 정권의 외교적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현 정권을 지지하던, 지지하지 않던 한국이 위기에 빠지는 것을 좋아할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이 위기를 잘 해쳐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짜내기를 바랄 뿐이다.
- 이전글특이점이 온다 17.08.01
- 다음글스시 장인: 지로의 꿈 17.08.01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