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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신동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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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환
댓글 0건 조회 6,474회 작성일 17-09-1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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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헬리콥터 맘, 캥거루 족. 이 신조어들은 자녀를 아직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내려놓지 못하는 엄마나, 자립할 시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자녀를 일컫는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저자는 백설공주, 콩쥐팥쥐, 신데렐라, 장화홍련, 헨젤과 그레텔, 심청전 등의 이야기를 오롯이 주인공이 길을 떠났다는 측면에 주목한다. 놀라운 것은 집밖을 벗어난 주인공들의 삶의 결말이 행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래동화 콩쥐팥쥐와 장화홍련의 차이는 바로 오롯이 사회에 던져져 혼자서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낼 능력이 있었는지 여부에 있다. 콩쥐팥쥐에서 콩쥐는 엄마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계모와 살게 되면서 집이 아닌 밖에 나가 일을 하게 된다. 일단 사회에 던져지고 스스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터득한다. 밖에 나가 움직이니 금송아지를 만나게 되고 결국 멋진 남자와 결혼도 하게 된다. 가만히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어찌되었던 움직이고 도전하고 부딪히는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것이다. 팥쥐는 오히려 자기 엄마의 품안에서만 자라서, 남의 것만 빼앗으려고 하는 악하고 무능력한 사람이 되어버려 처참한 말로를 맞게 된다. 이를 보면 콩쥐의 계모가 아니라 팥쥐의 계모인 것 같다.


 반면, 장화홍련은 콩쥐와는 달라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에 이르게 되고, 귀신이 되어서야 비로소 적극적인 행동을 개시하게 된다. 계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끌어안고 서로 울기만 했으니, 장화가 친척의 집에 가야한다는 계모의 계략에 빠져서 집에 돌아오지 않자, 언니를 찾아나서려는 홍련은 집밖에 한 번도 나가 본적이 없어 두려워한다. 장성한 처자가 집밖에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다는 것은 사회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는 것이고, 이는 집에서 편안과 안정적인 삶만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장화홍련은 두 자매의 죽음을 통해 안정만을 추구하고 살다가는 사회에 도태되어 죽는다는 하나의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길을 떠나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살아가는 방식을, 지혜를 터득한다. 장화 신은 고양이에서 가진 것 없는 고양이의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두려워말고 도전해야 한다. 부모의 품 안에서 지낸다면 그것만큼 편하고 안정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부모가 죽고 난 후의 그 자녀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암담할 것이다. 어떤 동물은 일부러 자신의 새끼를 벼랑에서 밀기도 한다. 살아남는 자만 키우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누구도 부모 같은 안락함을 제공해 주지 않는다. 빨간모자 이야기에 나오는 늑대같은 예쁜 꽃같은,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집 같은, 각종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동료의 배반 같은 예상키도 어려운 상황들이 펼쳐진다. 우리는 부모의 품을 벗어나 스스로 살아가면서 이런 예측불가한 위험에 대한 대처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자신의 품안에서 자녀를 돌봐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다. 앞서 말한 헬리콥터맘이 그들일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자녀를 너무나 끔찍이도 사랑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들을 가르켜 맘충이라고 하는 단어까지도 생겨났다. 부모의 품안에서 이기적으로 자라는, 부모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아이들. 부모가 진정으로 자녀를 생각하고 사랑한다면 자식을 품안에서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저렇게 키운 아이들이 사회에 나와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며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심청의 아버지 심봉사는 처음에는 마누라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무능력한 인간이었지만, 마누라가 죽고 난 후 홀로 심청을 키우기 위해 집밖을 나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심청을 데리고 젖동냥을 다닌다. 장님이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집안에만 있던 사람도 막상 사회에 나와 보니 어떻게든 삶을 살아낸다. 부모가 끼고 사는 자식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성을 지닌다. 존엄하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가보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가보려고 하는 것은 두렵다. 그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좀 더 나은 자신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나서야 한다. 방안에만 갇혀 사는 삶은 엄밀히 말하면 산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집 밖은 위험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말만 믿고 집 안에서만 있으면 안 된다. 집 밖이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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