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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 김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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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정민
댓글 0건 조회 6,198회 작성일 17-08-3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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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 김상근

 

“군주된 자는 …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 니콜라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잔인하고 과감한 힘으로부터 위대한 군주로 추앙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군주론만 보면 마키아벨리가 강경파적인 성향이 강한 지도자나 군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평생을 강자보다는 약자의 입장에 있었으며 고전을 섭렵한 인문학자였다. 그럼 어떻게 그는 군주론 같은 군주의 이상향을 제시한 것일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 약자로 시작 하였다. 그의 스승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피렌체의 외교관련 일을 하면서 국가의 전쟁과 분쟁 속에서 외교관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왕 루이 12세와 교황, 등 여러 지도자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고 그들의 면모 및 의사결정과정을 볼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지도자들을 관찰을 통해 비교 및 평가하면서 군주론의 바탕을 형성하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쓰게 된 가장 큰 배경은 역설적이게도 강자로부터의 억압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는 정권이 바뀌면서 공직에서 쫓겨나고 고문 및 감옥살이를 해야했다. 그를 뒷받침해줄 만한 집안이나 배경이 없었던 그는 정권 교체의 희생자로 떨어진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에서 그는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공직을 얻기 위한 희망으로 군주론을 집필한다.

 

마키아벨리는 인생의 나락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냉혹한 관찰을 통해 군주의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게 된다. 교황 알렉상드르 6세의 아들인 체사르는 군주론에서 이상적인 모델로 나온다. 체사르는 이탈리아의 국가들을 점령하면서 모호한 협력 세력의 오합지졸을 믿지 않고, 자신에게 완전히 충성할 군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 후에는 두 군대에게 충성 경쟁을 시켜서 세력을 확대했다. 동맹이었던 프랑스를 믿고 안주하기 보다는 독자적인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보고 마키아벨리는 어떤 국가나 개인도 남을 위해 순수한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며 높이 평가했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의 본성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자애심이 너무 깊어서 혼란 상태를 야기하고 시민을 죽거나 약탈당하게 하는 군주보다, 소수를 처벌하여 질서를 바로잡는 잔인한 군주가 실은 휠씬 인자한 군주”라고 말했다. 동양의 순자에 의한 성악설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한다면 서양에는 마키아벨리가 있다고 할 정도로 그는 인간의 본질을 변덕이 심하고 물욕에 눈이 어두운 위선자로 판단하고 있었다. 또한,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관대함보다는 인색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권력 뿐만 아니라 돈에도 인색해서 나누어서는 안될 정도로 인색해야 나쁜 평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통솔해 나 갈수 있다고 그는 판단하였다.

 

피렌체 공화정의 붕괴 이후 힘의 공백 상태에서 집권한 메디치에게 군주의 위엄을 보여주고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악한 군주의 인상을 주어도 좋다라는 권고로 이상적인 군주상을 군주론에서 보여주었다. 어찌 보면 인생의 나락에서 다시 한번 강자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었던 마키아벨리는 약자의 위치이지만 강자의 입장에서 본 군주란 무엇인가를 고심했던 게 아닌가 싶다. 마키아벨리의 구애라고 볼 수 있는 군주론에도 불구 하고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부름을 받지 못한다. 이후 마키아벨리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교육을 받고 이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군조론을 집필했던 입장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젊은이들에게 약자가 강자의 횡포로부터 살아남는 법을 가르쳤다. 인생의 후반에서 쓴 로마사논고에서 그는 작은 행운에 방심하지 말고 시련과 역경이 있더라도 좌절하지 말라는 내용을 전달했다.

 

당시에는 군주론이나 로마사논고는 큰 집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8세기 이후에는 냉혹한 군주의 이상향이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타개해보려는 애국자의 고심으로 해석되면서 많은 정치적 사상과 엮여서 군주의 악행을 풍자로 해석하는 등 지금도 여러 해석 및 재평가 되고 있다.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는 대중은 노예근성에 물들어 있는 나약한 존재이며 강자의 논리에 휘둘리는 존재로 서술되는 것을 보고 군주론에 대해 왜 많은 평가와 해석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군주론에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를 집필하게 된 배경과 그 이후의 자신의 입장을 변화시킨 것을 보면서 왜 그를 공화주의와 민주주의 선구자로 보는 해석이 많아지게 되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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