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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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뷰티
죽음에 직면하면, 살아왔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한다. 물론 그것은, 일순간에 끝나는 장면들이 아니다. 영원의 시간처럼 오랫동안 눈앞에 머문다. 내겐 이런 것들이 스쳐갔다. 보이스카웃 때 잔디에 누워 바라보았던 별똥별, 집 앞 도로에 늘어서 노란 빛깔의 단풍잎, 메마른 종이 같던 할머니의 손과 살결, 사촌 토니의 신형 파이어버드를 처음 구경한 순간. 그리고 제인, 나의 공주. 그리고 캐롤린.
살다보면 화나는 일도 많지만 분노를 품어선 안 된다. 세상엔 아름다움이 넘치니까. 갑작스럽고 멋진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 가슴이 벅찰 때가 있다. 터질 듯이 부푼 풍선처럼.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걸 깨달으면 희열이 몸 안에 빗물처럼 흘러 오직 감사의 마음만이 생긴다. 소박하게 살아온 내 인생의 모든 순간들에 대하여
-영화 <아메리칸 뷰티>
이 영화는 1999년도에 상영된 영화로서 아카데미의 많은 분야에 노미네이트 된 ‘007 스카이폴’을 제작한 샘 맨데스 감독의 작품이다. 감독 특성상 드라마 적인 요소에 강점을 보이듯이 영화 ‘아메리칸 뷰티’ 또한 영화의 기저에는 잔잔한 내용이 있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는 비극적인 요소가 배치되어 있다.
영화는 나에게 생각할 소재를 던져주었다. ‘인생’이다. 인생에 대해 논하기 전에 먼저 영화의 스토리를 보자.
극 중 주인공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일상을 누린다. 회사를 다니고 결혼을 해서 별 다른 다툼 없이 살며 꽤 괜찮은 집에서 고등학생 딸을 키운다.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모든 것이 순탄치만은 않고, 주인공의 인생 또한 틀어지기 시작한다. 사실 주인공은 무능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아내와 딸에게 무시를 받아왔으며 그들의 관계에 사랑은커녕 서로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았다. 이렇게 참아온 스트레스가 쌓인 것 때문인지 주인공은 참는 것을 그만두기 시작한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고함치며 퇴직하고, 집에서도 부인과 딸의 무시를 참지 않는다. 갑작스럽게 변한 주인공의 태도에 부인과 딸은 더 가까이 하려하지 않는다. 부인은 무능한 남편을 뒤로하고 부동산 중개인으로서 물질만능의 길을 걷는다. 그러다 동종업계의 수완가와 바람을 피고 그 장면을 주인공에게 들키며 갈등의 정점을 찍는다. 딸과의 관계도 점차 멀어진다. 딸은 격정적인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중이며 아버지를 증오한다. 그나마 딸과 조금씩 가까워지려는 찰나에 주인공이 딸의 친구에게 욕정을 품게 되면서 딸은 아버지를 증오한다. 옆집에 이사 온 해병대 대령 출신의 남자는 주인공의 상황을 한층 더 복잡하게 한다. 옆집 사람의 아들은 주인공에게 마약을 밀매한다. 주인공과 마약 밀매를 하려 몰래 만나는 것을 오해한 옆집 해병대 출신의 남자는 자신의 아들이 게이인줄 오해한다. 군인문화에 길들여져 호모포비아를 주창하는 그는 화가 나 끝내 주인공을 총살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실 영화에서 그리는 가정의 모습은 일반적인 한국의 가정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극적인 요소를 가미했다고 해도 약간 과하다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리 특별하지 않다. 그 사람들의 인생을 이해해보도록 하자. 주인공은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가장이다. 그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주눅 들어있다. 첫인상을 바꾸기 어렵 듯, 한번 무능하다는 인식이 박힌 사람은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는 무엇을 하든지 그런 사람이다. 한 번쯤 일탈을 꿈꾸지만 참고 사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네 가장의 모습이다. 수입이 적은 남편과 사는 아내는 맞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가 직장을 구하는 동기가 말하듯이 그녀의 삶은 점차 물질만능의 길로 빠져든다. 일이 힘들고 돈을 벌 수록 그녀는 지치고 가정에 충실할 기운이 없어진다. 자연스레 짜증이 일상이 되며 자신을 일자리로 내몬 남편이 원망스럽다. 그러면서 주변의 돈 잘 버는 남자들이 멋있어 보이고 외도를 시작한다. 부모님이 생계를 위해 맞벌이를 하며 부부사이가 좋지 못한 것을 보고자란 아이는 가정이 싫어진다. 집에서 떠나고 싶어지며 부모에게 사랑은커녕 반항심만 길러진다.
극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보면 사실 평범한 인생들이며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어디서부터 그들의 인생은 꼬였을까? 돈을 못 버는 아버지가 잘못인가? 바깥일을 하며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어머니가 잘못인가? 아니면 부모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는 아이가 잘못인가? 누구 하나 그들의 인생에서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없다. 아버지는 스스로 무능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고 어머니도 갑작스럽게 내몰린 취업전선에서 정신적,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으면 가정에 충실했을 것이다. 안정적인 경제 상황에서 부모에게 사랑을 받으며 많은 시간을 함께한 아이라면 반항기 있는 아이로 컸을 가능성도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없는 것이 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의 부재이다. 스스로의 인생만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며 대화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의 문제를 탓하기 전에 자본주의 시대의 오랜 흐름으로 탄생한 견고한 물질만능의 사회 환경이 더 큰 문제일 것이다. 돈이 없는 사람의 불쾌지수는 항시 높으며 주변 사람과 쉽사리 불화를 야기한다. 가족 간의 유대관계 및 부(빚)의 상속이 만연한 대한민국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가 한층 복잡하다.
지랄한다, 지랄해
이기적인 새끼야
니 새끼도 니처럼 살게 놔둘래
적어도 니 새끼는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폼나게 살아야 할 거 아니가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는 사랑이 넘치는 가정에 대한 소망이 있다. 그 무엇보다 가장 우선적인 인생목표이며 이미 시작된 목표 달성 레이스에서 죽는 순간까지 한 번의 낙오 없이 안정적으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는 노력하고 노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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