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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공화국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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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희태
댓글 0건 조회 743회 작성일 25-12-2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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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일까, 우리는 일상에서 필요 이상의 도덕성을 강요받으며 사는 듯하다. 티끌 하나 없는 무결점의 인간이 되기를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요구하면서 말이다. 숨이 막힐 듯한 검열의 반작용일까, 서점에 가면 기이한 풍경이 펼쳐진다. 인기 상품 판매대에는 성취나 도전을 말하는 책 대신, 어떻게 하면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힘들면 그냥 주저앉아도 괜찮다고 속삭이는 위로의 책들이 위로 수북하게 쌓여 있다. 이 기묘한 결벽증은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으로도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회장의 이혼 소송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가 기업의 본질적 가치보다 더 거대한 변수가 되는 세상이다. 대중은 이제 기업이 가진 야성적 능력보다는 총수의 사생활 검증에만 병적으로 집착한다. 덕분에 거리는 깨끗해 보이고, 시스템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듯하며, 사람들은 모두 예의 바르고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없다. 마치 명인이 공들여 키운 분재 같다. 겉보기엔 우아하지만, 정해진 화분 크기 안에서만 간신히 잎을 틔우는 작은 나무. 하늘을 향해 거칠게 뻗어가는 아름드리나무가 아니라, 오직 보여주기 위한 껍데기로만 자신을 증명하는 관상용 생명들이다.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는 서구 사회가 정신의 공동화를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겉으로는 도덕과 정의를 외치지만 속은 텅 비어 자신을 지킬 의지조차 상실한 상태. 책의 중반부에서 이 비극을 엔지니어링의 죽음이라 정의된다. 무언가를 새로 만들고 부딪히는 야성과 혁신은 언젠가부터 도덕적, 윤리적 잣대에 막혀 사라졌다. 그리고 이 자리를 규정과 도덕이 새롭게 차지하였다.

 “공돌이”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자조의 언어로 번역 되는 것 처럼, 사회는 그들을 더 이상 존경하지 않는다. 대신 결과물을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고 비판하는, 검증하는 사람이 권력을 쥐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이것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 논의하기 전에, 이것이 윤리적으로 완벽한가를 먼저 묻는다. 자율 주행이 그렇고 의료 부문도 그렇다. 돌이켜보면 당연한 결과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필연적으로 소음과 먼지를 동반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는 그 소음을 견딜 인내심이 바닥났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선택, 즉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택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 전체의 자신감 결여에서 온다. 자신의 가치가 옳다는 확신이 없기에 힘을 사용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관료들은 AI 강국을 외치지만 정작 데이터 센터 하나를 짓는 데도 수년 간의 민원과 갈등 조정이 필요하다. 그 기술로 인한 변화를 감당하고 책임질 어른이 사회에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엔지니어링 마인드셋을 갖춰야 한다. 세상을 지켜야 할 규정이 아닌 고쳐야 할 시스템으로 바라보는 태도.

엔지니어에게 세상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아름답다. 고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책상 위에서 완벽한 지도를 그리는 대신 진흙탕에 들어가 일단 다리를 놓는다. 무너지면 다시 세우고 흔들리면 보강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다리만이 결국 강을 건너게 해 준다. 우리의 지난 60년은 바로 그 엔지니어링의 역사였다. 가진 것 하나 없는 폐허 위에서 도시를 세우고 산업을 일으켰다. 그때 우리는 거칠었지만 살아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은 무모함으로, 절차를 건너뛰는 효율은 불법으로 간주된다. 그 결과 우리는 실수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었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잘 가꿔진 분재 속에 머물며 서서히 시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숲으로 나아가 길을 낼 것인가.

책을 덮으며 창밖을 본다. 밤늦도록 불 켜진 학교 건물들이 보인다. 저 안 어딘가에서 여전히 말도 안되는 과제와 씨름하고 있을, 답답한 행정 처리에 녹초가 된 이름 모를 미래의 엔지니어들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결국 이 조용한 침체를 깨뜨릴 사람들은 기술을 만드는, 바로 우리들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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