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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과정의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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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786회 작성일 25-12-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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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대학원 생활이 이제 끝을 향해 갑니다. 학위 논문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중 새벽에 연구실에서 잠시 쉬면서, 제가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의 설렘과 두려움을 떠올려 봅니다. 뒤를 돌아보니 여러분의 모습이 보입니다. 누군가는 이제 막 시작하는 설렘에 차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반복되는 실험과 불확실한 결과 속에서 깊은 슬럼프를 겪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디펜스를 마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생각에 설레는 분들도 있겠지요. 지도교수님의 입장에서는 이제 막 첫 길을 뗀 햇병아리일 뿐이고, 아직도 부족한 것만이 보이는 학생이겠지만, 그래도 이 길을 한 발자국 먼저 걸어본 동료로서 여러분에게 몇 가지 제가 학위 과정 중 느낀 바를 여기에 남겨두고 싶습니다.


먼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왜 우리는 대학원에 진학했는가?" 


대학원이라는 공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엄격한 시스템입니다. 예전에야 소수의 천재가 학계를 이끌어가던 모습이 흔했으나, 현대 과학과 공학의 연구는 더 이상 개인의 천재성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반도체 분야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당장 소자 하나를 만드는데 channel implant, well implant, S/D implant 등 이온 주입 공정을 여러 번 해야 하는데 한 번 하는 데에만 백 만원 단위가 깨집니다. 여기에, 개개인이 제작에만 수억 원에 달하는 실험 장비를 갖추고, 매 달 수 백, 수 천의 수리/유지비를 부담하고, 매달 쏟아지는 최신 논문들을 유료 구독하며, 연구에 필요한 고가의 약품, 시료, 그 밖의 각종 인프라들. 이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학원은 바로 이러한 '연구의 물리적 토대'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여기에, 설령 여러분에게 무한한 자본이 있어 혼자 연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연구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을 배우는 것은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선배/동료들의 비판을 견디고, 미팅 때 지도교수님의 날카로운 질문에 답하며, 최종적으로는 얼굴도 모르는 전 세계의 리뷰어들에게 내 연구의 가치를 증명해 내는 일련의 과정. 이 혹독한 트레이닝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석사', 혹은 '박사'라는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대학원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곳이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고 검증받는 시스템 속에 자신을 던져 넣는 훈련소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요? 지도교수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학생의 상은 무엇일까요? 아직 PI나 산업계 중역은 커녕 박사로서 첫 발도 내딛지 못한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금 조심스러우나, 그래도 제 생각을 말하면 결국 "전문가가 되려는 의지를 보이는 학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대부분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주말과 공휴일을 반납하며 공부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10대의 황금같은 시간을 공부에 바치는 것은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흔한 일이지요. 그런데 인류의 지식 체계를 단 1nm라도 확장하는 이 고통스럽고도 숭고한 작업에서, 주말을 고민하고 소위 '적당한 워라벨'을 찾는 것이 과연 자연스러운 일일까요?


인류의 지식 경계선을 넓힌다는 것은, 앞선 수만 명의 천재가 쌓아 올린 거대한 벽 끝에서 다시 한 줌의 흙을 얹는 일입니다. 이 작업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연구가 아니라 단순 반복 작업일 가능성이 큽니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그 분야의 누구보다도 많이 고민하고, 누구보다도 늦게까지 연구실의 불을 밝히며, 내 연구 결과에 대해 스스로 가장 엄격한 비평가가 되는 과정을 수반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연구의 가치를 설득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여기에, 현실적인 문제도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대학원생 한 명을 양성하기 위해 투입되는 비용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지급되는 인건비와 등록금, 그리고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소모되는 재료비와 장비 유지비 등을 합치면 연간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의 예산이 소요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연간 수 천 만원 이상을 사용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저 역시, 박사과정에 들어와 Monolithic 3D 과제를 맡으면서 연구실 살림에 크게 기여하게 되어서야 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 전에는 인건비 말고는 전혀 느끼는 것이 없었지요.


지도교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교수는 교육자이자, 연구 책임자로서 그 막대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명성을 걸고 과제를 수주해 옵니다. 그런데 만약 학생이 '전문가'가 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그 귀한 자원을 투입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대학원, 연구실은 단순히 복지를 제공하는 보호소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성장이 곧 연구실의 성과로 이어지고, 그 성과가 다시 후배들의 연구를 책임질 과제를 물어오고, 좀 더 크게 보면 다음 세대의 연구를 뒷받침하는 선순환의 구조 속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학생에게, 그래서 이 선순환을 끊으려는 불청객에게, 지도교수 입장에서는 힘들게 따온 과제비를 투자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제게 대학원 생활은 결코 장밋빛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실패한 실험 데이터와 씨름하고, 내 능력을 의심하며, 밤잠을 설치고, 내가 과연 이 길에 서 있어도 되는가에 대한 자괴감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마침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아는 진실을 발견했을 때, 그리고 그것을 논문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공표했을 때의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비록 과정은 험난하겠지만,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는 자각을 가지고 이 길을 걷는다면, 그 끝에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그러한 세상을 이제는 조금은 기대해 볼 수 있는 위치는 된다고 생각하여 작성을 시작한, 이 부족한 글을 마치려 합니다. 이 글을 읽는 후배님들이 언젠가 학계의 동료로서, 혹은 산업계의 파트너로서 더 멋진 모습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합니다. 아름다운 여러분 모두의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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