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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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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다희
댓글 0건 조회 710회 작성일 25-12-2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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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문

- 잉빌 H. 리스회이 -

 

연말은 왠지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보다는 가볍고 따듯한 이야기를 찾게 된다. 크리스마스를 앞 둔 이즈음이 되면, 유치원에 다니던 어느 날 아침, 그날 따라 이른 새벽 눈을 떠서 거실에 나갔을 때 알록달록한 포장지로 무언가를 열심히 포장하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호기심에 다가갔던 나를 보고 이상하게 화들짝 놀라시더니, 어느새 아무렇지 않게 선물 포장을 끝낸 엄마는, 나 몰래 선생님께 선물을 드릴라 했는데, 봤으니 어쩔 수 없다며, 이왕 들킨 거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께 잘 드리라 이야기하시며 나에게 선물이 담긴 쇼핑백을 건냈었다.

그 선물이 내 것임을 알게 된 건 유치원 크리스마스 행사 때, 산타가 건넨 선물로 돌아왔을 때였다. 그동안 산타는 어떻게 모든 어린이들의 선물을 준비하는 건지 궁금했는데, 부모님께 받아서 주는 거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 그 이후의 크리스마스에는 큰 감흥이 없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 이른 아침 엄마의 모습이 연말마다 떠오르는 건 그때의 기억이 ‘산타는 없다’는 동심의 와해로 남기보다는, 자녀의 눈을 피해 이른 새벽 몰래 선물을 포장하던 다정한 뒷모습이 더 인상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리스회이의 『별의 문』은 이런 따듯한 크리스마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열 살의 어린 소녀 로냐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노르웨이 한 빈민가의 크리스마스.

 

실업자인 아빠와, 6살 위 언니 멜리사와 함께 지내는 로냐. 로냐의 아버지는 딸들을 볼 때마다 사랑스럽다는 듯 달콤한 이야기를 건네고, 부드럽게 머리를 빗어주고, 돈을 벌면 냉장고를 가득 채워 주는 다정한 아버지이지만, 쉽게 술의 유혹에 빠져 사고를 치거나 무단결근으로 일자리를 자주 잃는 알코올 중독자이다.

 

로냐의 아버지가 일자리를 얻고, 잃기를 반복하기를 여러번. 매해 반복되는 연말의 빈곤 속에서, 로냐의 10번째 겨울이 달라진 건 아빠가 크리스마스 트리 판매원으로 취업을 하게 된 이후였다. 일주일을 못 가고 잘리던 그동안과 다르게 로냐의 아빠는 꽤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유지하게 된다. 매일 밤 퇴근하면 어떤 전나무가 트리에 적합한지, 전나무 종류가 얼마나 많은 지를 딸들에게 이야기하며 열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매일 가득 찬 냉장고와 아빠에게 듣는 다양한 종류의 크리스나무 트리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어린 로냐는 우리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구매하여 꾸밀 수 있지 않을까 기대에 찬다. 하지만 그런 로냐의 희망을 비웃듯, 로냐의 아버지는 결국 술의 유혹에 빠져 일자리를 잃게 된다.

 

미리 선금까지 끌어다 쓴 후,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 대신, 로냐의 언니 멜리사가 트리 가게에 취직하게 된다. 성인과 다르게 열악한 근무 환경과 적은 급여로 힘들어 하는 멜리사에게 동생을 이용하여 트리 장식을 팔고 커미션을 나누자는 제안이 들어온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착한 일을 하고 싶어하고, 비쩍 마른 귀여운 소녀가 판매하는 트리 장식 만큼 지갑을 열기 쉬운 게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로냐는 학교가 끝나면 트리 가게로 가, 가게 주인 몰래 언니와 토미와 함께 트리장식을 팔기 시작하고, 장사는 성행하지만, 결국 가게 주인에게 들키게 되고, 물건을 빼돌려 커미션을 받고 팔았다는 사실과, 아동 착취를 시켰다는 명목 하에 아동보호국에 신고가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난다.


언뜻 보면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같은, 돌봄에서 밀려난 아이가 노동의 자리에 내몰리고, 결국 부모와 분리되어 아동 보호소에 들어가게 되는 한 편의 슬픈 크리스마스 이야기. 그럼에도 글의 서두에 『별의 문』을 읽고, 안타까운 하나의 이야기를 보았다 한 것이 아닌, 따듯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라고 소개한 이유는 사회 어딘가에 있을 법한 가난과 실업, 알코올중독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 속 아이의 시선은 언제나 희망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아이의 시선을 핑계로 현실적인 불행을 숨기지 않는다. 아버지는 책임있는 어른이 되지 않았고, 아이들은 작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종래에는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떨어지게 된다. 

로냐는 희망 뒤에 오는 좌절과 파괴력을 알고 있는 아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뿐이다. 불행을 과장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현실적인 불행 속 작은 희망의 불씨를 찾으며 꿈을 꿀 뿐이다. 아버지가 크리스마스 판매원을 할 때는, 우리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서 꾸밀 수 있기를, 직접 노동의 현장에 내몰렸을 때는, 내가 판 크리스마스 리스가 적어도 새해까지 시들지 않고 버티기를, 아동보호소에 들어간 후에는, 이제는 보지 못하는 토미네 가정에 무사히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기를, 그리고 종종 말벗이 되어준 수위 아저씨가 잘 지내기를 바라며, 과거의 행복을 돌아보고 순간의 기쁨을 찾아낸다. 


이 이야기가 아름다운 이유는 이 점 때문인 것 같다. 누가 보아도 안타까운 상황에 계속해서 처해지는 아이가, 당장의 힘듦에 취해있기 보다는 언제나 작은 꿈을 쫒으며, 타인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고,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는 모습. 위로에서 오는 따듯함이 아닌, 험난한 세상 속 우리가 잃어버리기 쉬운 어떤 기준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점 말이다. 


타인과 비교하고, 조금만 뒤쳐져도 쉽게 좌절하게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더 많이 가지지 못하거나, 더 빨리 도달하지 못한 이유로 스스로를 책망하며 우울해지거나, 때로는 누군가를 탓하며 불행해지기 쉬운 세상이다. 불행을 이겨 내라거나, 헛 된 낙관을 가지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피할 수 없는 불행과 함께해야 하는 것이 삶이라면, 그 안에서도 무엇을 찾아 즐기며 살아갈 것인지는 끝내 각자에게 남겨진 질문일 것이다. 

적어도 힘듦에 취해 무너지지 않기를, 그리고 주변의 행복을 바라지 못할지언정, 개인의 불행을 이유로 타인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하지 않기를, 그리고 혹시 힘들어하는 이가 있다면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기를 바라며 감상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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